이제 더는 찬성하지 않는 광고 분야를 이야기하겠다. 30년 전 의약품 광고는 광고문안가에게 가장 큰 기회였다. 능력을 가리는 최고의 시험장이었다. 수요를 만들기 전에는 약에 상품 가치가 없었다. 약국 선반에 한 병당 1센트로 재고를 잡아도 팔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광고에 달렸다.
의약품 광고가 문안가를 시험하는 정도는 오늘날 우편 주문 광고만큼 가혹했다. 손익계산서가 능력을 금방 드러냈다. 이익을 내며 팔거나 그러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영업사원과 도매상, 점원이 도울 수 없었다. 밀가루와 오트밀, 비누는 상점에 물량을 밀어 넣거나 조건을 붙여 팔 수 있다. 생활필수품 판매에는 여러 요소가 작용하므로 광고의 몫만 재기 어려울 때가 있다. 약은 달랐다. 광고가 전부 해야 했다.
그래서 내 시대의 뛰어난 광고인 대부분은 의약품 분야에서 훈련받았다. 지금은 모두 졸업했지만 약 광고가 사람을 끝까지 몰아붙였다는 사실을 안다. 다른 분야에서는 보기 어려울 만큼 무능한 사람을 솎아 내고 살아남은 사람에게 활동 범위와 명성을 주었다. 오늘날 그만큼 불로 시험하는 분야는 몇몇 우편 주문 광고뿐이다.
그 시절에는 의약품이 광고 시장을 지배했다. 가장 좋은 잡지도 광고를 받았다. 정당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가 육류 가공회사에서 일할 때 철도회사가 리베이트를 주거나 직원에게 무료 승차권을 주는 일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 의약품 광고를 돌아볼 때는 경험과 교육이 생각과 원칙을 어떻게 바꾸는지 기억해야 한다.
과거의 악습에도 당시에는 논리적인 변호가 있었다. 약 제조업자 가운데 품성이 높은 사람도 많았다. 흔한 증상에 쓸 괜찮은 치료제를 아주 싼값에 제공해 인류를 돕는다고 생각했다. 의사를 부를 돈이 없는 사람을 돕는다는 주장이었다. 일리가 꽤 있었다. 제조업자는 감사 편지를 수천 통씩 받았다. 나는 지금도 그들이 해보다 득을 훨씬 많이 주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결과의 상당 부분이 마음의 작용에서 나왔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의학은 발전했다. 의사도 약물에만 기대던 방식에서 크게 돌아섰다. 아픈 사람에게는 진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증상을 억누르기보다 실제 원인을 찾아야 했다. 많은 경우 자가 치료를 권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았다.
나도 오래전에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단순한 증상용 제품을 제외하면 17년 넘게 약을 광고하지 않았다. 어떤 조건에서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의약품 광고비 90만 달러를 거절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공익에 어긋나는 것은 무엇이든 광고하는 데 누구보다 강하게 반대한다.
그러니 아래 이야기가 아주 오래전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당시의 원칙과 관행에는 맞는 일이었다. 그 사업에 종사한 사람 가운데 누구보다 고결한 인물도 알았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조건에서도 적용되는 광고의 원리다. 공익을 위해 무엇을 광고해야 하는지는 전혀 다른 질문이다.
편집자 주 홉킨스는 업계에서 물러난 뒤 과거 약 광고를 비판했지만 당시 제품이 실제로 끼친 위해를 충분히 다루지는 않는다. 소비자의 느낌과 판매량은 의학적 효능의 증거가 아니다. 현대의 건강·의약품 광고는 임상 근거와 법규, 환자 안전을 먼저 따라야 한다.
스위프트 앤드 컴퍼니에서 일할 때 특허약 광고에 관한 글을 썼다. 위스콘신주 러신의 슙 박사가 그 글을 보았다. 그는 대리점에만 약을 팔고 있었고 약국에는 제품이 전혀 없었다. 대리점 방식이 사라지고 있어 제품을 약국 선반에 올릴 길을 찾았다. 만나자고 편지를 보냈다.
육류 가공회사의 제약 안에서 식품을 광고하는 일에 지쳐 있었다. 의약품이 광고인에게 가장 큰 기회를 준다는 사실도 알았다. 러신으로 가서 슙 박사와 이야기한 끝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제품은 대리점으로만 팔렸다. 약국에는 한 병도 없었다. 보통 대리점은 살아남을 수 없었고 사업은 빠르게 죽어 갔다. 내 임무는 약국으로 판매가 들어오도록 수요를 만드는 일이었다. 소매 판매 경험이 없었다면 백만 명 가운데 한 명도 이 시험을 통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밤마다 슙 박사와 상황을 논했다. 제품과 직접 상관없는 아이디어를 이야기해 내가 해낸 일을 설명했다. 그렇게 약사가 서명하는 보증이라는 생각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약 자체가 아니라 결과를 샀다. 1천 마일 밖의 광고주도 결과를 보증했지만 소비자에게는 낯선 사람이었다. 돈을 직접 받는 동네 약사가 보증서에 서명하도록 하자는 생각이었다.
먼저 기침약으로 시험했다. 반응이 엄청났다. 위험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기침약이 등장한 것이다. 약속한 결과가 나오면 가격의 몇 배 가치가 있었고 실패하면 공짜였다. 당시 시장의 다른 기침약은 경쟁할 수 없었다.
나중에는 슙 박사의 강장제와 류머티즘 치료제에 같은 방법을 썼다. 마법처럼 통했다. 다른 회사는 주장을 내놓았지만 우리는 확실성을 내놓았다. 시장 대부분을 얻었다.
보증 조건은 5달러에 여섯 병을 사는 것이었다. 그만큼 사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래도 보증은 한 병을 살 때도 신뢰를 주었다. 우리 분야의 누구도 경쟁하기 어려웠다.
그 시절에는 매우 조심했다. 신문 광고에 바로 뛰어들지 않았다. 인구 1,500명 넘는 도시에서는 책자를 집집마다 돌렸다. 그보다 작은 마을에서는 각 가구의 가장 명단을 구해 우편으로 보냈다. 농촌 우편배달이 생기기 전이었다. 미국과 캐나다 우체국 약 8만6천 곳의 관할 가구주 명단을 모두 갖고 있었다.
그때 쓴 방법은 이제 별로 흥미롭지 않다. 환경이 바뀌었다. 어떤 제안이든 신문이 가장 싸게 널리 퍼뜨린다는 사실을 배웠다. 하지만 여러 해 동안 하루 약 40만 부의 책자를 우편으로 보내거나 직접 배포했다.
나중에는 신문으로 옮겼다. 이전 비용의 3분의 1로 같은 반응을 얻었다. 해마다 신문 광고에 40만 달러를 썼고, 당시 성과 덕분에 특허약 광고의 선두 주자가 됐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내 제안이 늘 이타적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언제나 서비스를 내놓았다. 누구든 위험 없이 제품을 시험할 수 있었다. 약속보다 큰 결과가 나오거나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구조였다. 당시 시장에는 그런 제안과 맞설 것이 없었다.
광고와 유통에서는 늘 이 점을 생각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제안보다 나아야 한다. 품질과 서비스, 조건에서 이점을 주거나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않은 사실을 밝혀 이점이 있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이름이나 상표만 외쳐서는 부족하다. 다른 곳 말고 우리에게 사 달라고 재촉하면 본능적인 반감을 부른다.
경쟁자를 알고 그들이 무엇을 제안하며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점이 확실히 내 편이라고 느끼기 전에는 싸움에 돈을 거는 것이 어리석다. 돈을 조심해서 쓰는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없다. 고객을 지킬 방법이 분명히 보이지 않는다면 데려오는 비용을 치르지 말라. 동전을 세어 쓰는 사람의 지성과 정보를 얕보아서는 안 된다.
러신에서 6년 반을 보냈다. 사무실은 아침 7시에 문을 열었다. 더 오래 일하면 우위도 더 생긴다고 믿었다. 광고 역사에서도 가장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내 하루는 사무실에서 끝나지 않았다. 집에도 타자기가 있었다. 의약품은 광고 능력을 가리는 최고의 시험이지만 여러 제품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깨어 있는 나머지 시간을 다른 사업에 썼다.
J. L. 스택 광고대행사가 슙 박사의 광고를 맡았다. 나는 그 대행사의 모든 광고문안을 써 주기로 했다. 러신은 제조업 도시였다. 퇴근 뒤에는 지역에서 새 광고 사업을 키웠다. 하나하나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J. L. 스택의 고객 가운데 몽고메리 워드가 있었다. 광고를 쓰고 지휘했다. 새로운 판매 계획을 여러 개 시작했다. 내가 끊임없이 한 주장은 사람을 덩어리로 다루지 말자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이 재봉틀을 문의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재봉틀만 있었다. 당시의 보통 방식은 문의 내용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종합 카탈로그를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매장에 직접 찾아온 잠재 고객처럼 각 문의자를 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모델과 가격을 담은 재봉틀 전용 카탈로그를 만들었다. 문의자 근처에서 우리 재봉틀을 산 사람의 이름도 모두 보냈다. 실제 기계를 보고 소유자와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여기서 광고의 또 다른 원칙을 배웠다. 넓은 캠페인을 하면 사람을 한 덩어리로 보기 쉽다. 씨를 마구 뿌리고 일부가 뿌리내리기를 바란다. 너무 낭비가 커서 이익을 내기 어렵다. 개인까지 내려가야 한다. 광고에서도 직접 만났을 때처럼 사람을 대해야 한다. 그 사람이 밝힌 욕망에 집중하라. 구체적인 욕구를 품고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을 생각하라. 사업이 아무리 커도 단위까지 내려가야 한다. 규모는 그 단위가 모여서 만들어진다.
J. L. 스택을 위해 맡은 다른 캠페인은 슐리츠 맥주였다. 당시 슐리츠는 업계 5위였다. 모든 맥주회사가 “순수함”을 외쳤다. 큰 글자로 쓰고, 더 크게 쓰려고 양면 광고를 샀다. 물이 오리 등에 떨어지는 것만큼이나 사람에게 아무 인상도 주지 못했다.
양조 과학을 배우려고 전문학교에 갔지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양조장을 직접 돌았다. 맥주가 관 위로 흘러내리는 유리벽 방을 보고 이유를 물었다. 맥주를 깨끗하게 식히려고 여과한 공기로 방을 채운다고 했다. 흰 목재 펄프를 가득 채운 큰 필터도 보았다. 그것으로 맥주를 거르는 방법을 설명했다.
오염을 막으려고 펌프와 관을 날마다 두 번씩 씻었다. 병마다 기계로 네 번 세척했다. 양조장은 미시간호 옆에 있었지만 순수한 물을 얻으려고 4천 피트 깊이의 지하수를 팠다. 완성한 맥주를 소비자에게 보내기 전에 6개월 숙성하는 통도 보여 주었다.
실험실에서는 최초의 모효모 세포를 보여 주었다. 최고의 풍미를 찾으려고 1,200번 시험해 만든 것이었다. 슐리츠 맥주에 쓰는 모든 효모를 그 하나의 세포에서 길렀다.
놀란 채 사무실로 돌아왔다.
“왜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지 않습니까? 다른 회사보다 더 크게 ‘순수하다’고 외치기만 합니까? 이유를 말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답했다. “우리가 쓰는 공정은 다른 회사도 똑같이 씁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좋은 맥주를 만들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회사는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양조장을 둘러본 사람은 모두 놀랍니다. 인쇄물로 보아도 놀랄 겁니다.”
나는 유리벽 방과 순도를 지키는 모든 요소를 지면에 그려 냈다. 좋은 맥주회사라면 모두 하는 일을 이야기했지만 한 번도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였다. ‘순수함’에 의미를 주었다. 몇 달 만에 슐리츠는 5위에서 공동 1위에 가깝게 뛰었다.
그 캠페인은 지금도 내가 이룬 가장 큰 성과 가운데 하나다. 동시에 이후 여러 캠페인의 토대가 됐다. 한 업종의 제조사라면 누구나 하는 단순한 사실을 거듭 이야기했다. 너무 당연해서 누구도 말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처음 자기 제품과 연결한 회사에는 독점적이고 오래가는 명성을 주었다.
이런 상황은 수많은 업종에서 생긴다. 제조사는 제품에 너무 가까이 있다. 자기 방식이 평범하게만 보인다. 세상 사람은 그 방식을 놀랍게 볼 수 있고, 제조사에게 흔한 사실이 큰 차별점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광고 문제 대부분이 그렇다. 제품이 독특하지 않고 커다란 장점도 없을 수 있다. 비슷한 제품을 만들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더 잘하려고 들이는 수고를 이야기하라. 다른 사람이 너무 평범해 주장할 가치가 없다고 여긴 요소와 특징을 말하라. 제품은 그 뛰어난 점을 대표하게 된다. 경쟁자가 나중에 같은 사실을 말하면 오히려 처음 말한 회사를 다시 광고해 주는 효과가 난다.
모방할 수 없는 광고 제품은 거의 없다. 시장을 지배하는 회사도 독점적 장점이 없는 경우가 많다. 설득력 있는 사실을 먼저 말했을 뿐이다.
커티스 출판사의 사이러스 W. 커티스가 슐리츠 캠페인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을 들려주었다. 그는 평생 맥주를 마시지 않았고 《레이디스 홈 저널》에 맥주나 와인이라는 단어조차 싣지 않았다. 그런데 기차 식당칸에 슐리츠 광고가 실린 《라이프》를 가져갔다. 광고에 깊은 인상을 받아 슐리츠 한 병을 주문했다. 그런 순도 기준으로 만든 제품을 맛보고 싶었던 것이다.
러신의 친구 가운데 짐 로언이 있었다. 적은 급여를 받는 사무원이었다. 교사인 여성과 사랑에 빠졌지만 급여가 적어 결혼하지 못했다. 부화기에 관한 아이디어가 있었고 사업으로 키우면 결혼할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이디어를 시장에 내놓겠다고 했고 그대로 했다. 부화기 카탈로그와 광고 약 75개를 읽었다. 모두 비슷했다. 제조사는 저마다 구매자의 비위를 맞추며 자기 제품을 골라 달라고 했다. 상황을 분석해 독특하게 접근할 길을 찾았다.
실제로 닭을 키우는 사람을 찾아 그의 이름으로 책을 써도 되는지 물었다. 그는 독립심이 강하고 단순한 의견에는 관심이 없었다. 책에도 그 성격을 담았다. 그가 알려 준 사실을 바탕으로 그의 목소리로 쓰면서 러신 부화기를 사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는 온갖 부화기를 시험했고 허황한 주장을 꿰뚫어 보았다. 결국 실제로 돈을 버는 방식에 정착했다. 자기를 따르려는 사람은 돕고 격려하지만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환상마다 쫓는 사람에게는 동정하지 않았다.
그 호소는 통했다. 부화기를 찾는 사람은 보통 카탈로그를 대여섯 개 신청했다. 우리 것만 빼고 모두 비슷했다. 우리 책에는 판매보다 도움에 관심이 많은 거칠고 실용적인 사람이 있었다. 이익을 찾는 실용적인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를 따랐다.
하지만 러신 부화기는 비쌌다. 마음이 기운 사람도 더 싼 가격과 비교하고 멈췄다. 그래서 로언 씨에게 ‘벨 시티 부화기 회사’를 따로 세워 다른 조건과 훨씬 낮은 가격으로 팔자고 했다.
러신 제품 문의에는 열흘 동안 후속 연락을 했다. 저항이 너무 크다고 보이면 벨 시티 제품을 제안했다. 부화기 구매자 한 명에게 두 번의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최선을 다해도 이익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까지 상당한 규모로 이어지는 사업을 만들었다. 당시 경쟁자 가운데 살아남은 회사는 내가 알기로 없다.
러신에서는 다른 제품도 여럿 조직해 광고했다. 러신 목욕 캐비닛과 러신 냉장고가 있었다. 불확실성이나 반복 구매가 없는 제품이어서 훌륭한 광고 경험을 주었다.
러신 제화회사는 좋은 신발을 만들었다. 시카고와 밀워키 사이 가죽 산업의 중심지에 있었다. 당시 도매가격은 한 켤레 평균 2.15달러였다. 나는 ‘러신 클럽’을 만들었다. 회원에게만 유리한 가격으로 신발을 팔았다. 여섯 가지 디자인 중 하나를 골라 배송비 포함 3달러에 살 수 있었다. 신발 원가는 평균 2.15달러, 평균 특송료는 35센트였으므로 순이익은 켤레당 50센트였다.
회원권은 25센트였고 회원이 아니면 살 수 없었다. 회원권 수입으로 광고비를 충당했다. 신발 한 켤레를 보낼 때 카탈로그와 함께 회원권 열두 장을 넣었다. 그 열두 장을 팔면 신발을 25센트에 얻을 수 있었다. 회원은 3달러에 신발을 사고 다시 25센트짜리 증서 열두 장을 받았다.
상점에서는 3.50~5달러인 신발을 3달러에 내놓았지만 아무에게나 팔지는 않았다. 회원만 살 수 있었다. 구매자는 원한다면 회원권을 한 장에 25센트씩 팔 수 있었다. 모두 팔면 신발값은 사실상 25센트가 됐다. 광고로 몇 명을 고객으로 만들면 그들이 내 영업사원이 됐다. 작은 광고로 압도적인 거래가 생겼다. 곧 러신 제화회사의 생산 능력을 넘어 주문이 크게 밀렸다.
문제는 신발이 늘 맞지는 않았고 나는 맞는 사이즈를 보장했다는 점이다. 반품 비용이 이익 대부분을 먹었다. 그래도 판매에 관한 새 관점을 배웠다. 직접 판매든 다른 방식이든 기존 고객이 미래의 주문에 영향을 미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동안 전국 소매점의 할인 행사 광고도 계속했다. 지역에서 온갖 판매 방식을 시험했다. 큰 반응을 얻은 계획을 발견하면 다른 상인에게 알려 주었다. 전부 밤에 한 일이었다. 잠은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을 구매로 이끄는 방법을 찾는 것이 내 야망의 전부였고 그런 방법을 많이 찾아냈다. 그때 발견한 것들이 훗날 내가 얻은 모든 성공의 토대가 됐다.
2026년 스타트업에서 읽기
슐리츠 사례가 유명한 까닭은 ‘평범한 공정을 독점하라’는 얄팍한 기술 때문이 아니다. 고객에게는 추상적인 품질 주장이 아니라 품질이 만들어지는 인과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안전한 서비스”보다 어떤 검사를 몇 번 하고 장애가 나면 누가 어떤 순서로 대응하는지 말하는 편이 믿을 만하다.
다른 회사도 같은 일을 한다면 거짓 차별화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업계 공통 공정임을 숨긴 채 자기만 하는 것처럼 쓰면 기만이다. 사실을 먼저 설명하되 범위를 정확히 밝히고, 우리 팀이 더 엄격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면 수치와 증거로 구분해야 한다.
몽고메리 워드 사례는 현대의 개인화와 같다. 문의한 사람에게 종합 카탈로그를 던지는 대신 그가 찾는 재봉틀 정보와 가까운 구매자의 경험을 보냈다. 모든 사용자에게 같은 온보딩을 밀어 넣기보다 지금 하려는 일과 숙련도, 막힌 지점을 기준으로 다음 행동을 좁혀 주는 것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