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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ATIONS 006 · 07

5장 더 큰 시장으로

이제 내 삶에서 비극적이었던 시기로 들어간다. 그랜드래피즈에서는 거의 한계까지 올라갔다. 로드 앤드 토머스의 제안 덕분에 더 넓은 곳에서 인정받았다. 어머니에게 받은 야망이 치솟았고 더 높이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랜드래피즈에 새집을 지은 참이었다. 아는 친구가 모두 곁에 있었고 도시에서 명성도 누렸다. 더 큰 무대로 가려면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희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내 욕망이 옳았을 것이다. 야망은 어디서나 칭찬받는다. 하지만 그랜드래피즈로 돌아올 때마다 옛 동료를 부러워했다. 그들은 조용하고 안전한 분야에 머물렀다. 과도한 요구를 받지 않았다. 성공과 돈은 적당히 찾아왔다. 격랑 같던 내 삶을 돌아보면 그들이 놓치고 내가 누린 기쁨은 하나도 찾지 못하겠다.

명성을 얻었지만 즐기지 못했다. 돈도 어느 정도 벌었지만 즐겁게 쓰지 못했다. 내 진짜 성향은 늘 조용한 길을 향했다. 지금 이 이야기도 귀소본능이 나를 데려온 그랜드래피즈 근처의 정원에서 쓰고 있다. 옛 친구들과 이곳에 모이면 누가 더 현명한 길을 택했는지 결정하기 어렵다.

시카고의 육류 가공회사 스위프트 앤드 컴퍼니가 광고 책임자를 구했다. 조사해 보니 당시 자본금이 1천5백만 달러였다. 연간 광고비로 30만 달러를 쓸 계획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 시절 미국에서 손꼽히는 광고주가 되는 규모였다. 비셀에서는 그 기회의 10분의 1도 볼 수 없었다. 시카고 자리를 반드시 얻기로 했다. 내 능력으로 충분하다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미시간에서는 왕이었으므로 다른 왕이 나를 노예처럼 대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시카고의 가축 시장으로 찾아가 버터린 부문 책임자 I. H. 리치를 만났다. 광고를 하자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리치 씨, 그 자리를 얻으러 왔습니다.”

그는 너그럽게 웃으며 이름과 주소를 물었다. 그런 다음 이미 이름이 빼곡한 종이에 내 이름을 적었다.

“이 이름은 모두 뭡니까?”

“다른 지원자들이지요. 105명이 있습니다. 당신은 106번째입니다.”

깜짝 놀랐다. 106명이 자기가 그 높은 자리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뻔뻔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리치 씨에게 말했다.

“여기 온 주된 이유는 광고계에서 내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이 자리를 원한 것은 아닙니다. 내 마음은 그랜드래피즈에 있고 행복도 그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 도전이 됐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겠습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해 보십시오. 신의 가호가 있기를. 우리는 설득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짧게 이야기를 나눈 뒤 나를 돌려보냈다.

시카고의 주요 광고대행사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다. 내 사업을 따내려고 찾아오던 사람들이었다. 그날 오후 한 명씩 방문해 말했다.

“오늘 I. H. 리치 앞으로 편지를 보내 주십시오. 주소는 시카고 유니언 스톡야드의 스위프트 앤드 컴퍼니입니다. 클로드 홉킨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어 주십시오.”

모두 약속했다. 몇 사람은 아주 듣기 좋은 말을 써 줄 것이라고 알았다.

그날 밤 그랜드래피즈로 돌아왔다. 마침 얼마 전 상공회의소의 의뢰를 받아 그랜드래피즈의 역사를 쓴 참이었다. 회원들은 책을 몹시 좋아했다. 책을 쓰며 지역의 유력 사업가를 모두 만났다. 다음 날 아침부터 그들을 찾아갔다. 은행가부터 시작해 가구 제조업자, 도매상, 다른 사업가를 차례로 만났다. 며칠이 걸렸다. 모두에게 같은 부탁을 했다.

“시카고 유니언 스톡야드의 스위프트 앤드 컴퍼니 I. H. 리치 앞으로 편지를 보내 주십시오. 글쓴이이자 광고인인 클로드 홉킨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어 주십시오.”

편지가 홍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랜드래피즈 헤럴드》를 찾아갔다.

“광고에 관한 두 칼럼짜리 글을 날마다 써 드리겠습니다.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신문의 광고주에게도 교육이 될 겁니다. 조건은 내 이름으로 싣고 사진을 함께 내는 것뿐입니다.”

신문사는 받아들였다. 매일 저녁 사무실 일을 마치면 두 칼럼을 썼다. 자전거를 타고 신문사까지 달려 자정 전에 원고를 넘겼다. 실제로는 모든 글을 스위프트 앤드 컴퍼니와 리치 씨에게 보내는 마음으로 썼다. 내가 광고를 얼마나 아는지 보여 주려는 글이었다. 기사가 나올 때마다 리치 씨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3주 동안 날마다 이렇게 공세를 편 뒤 시카고로 오라는 전보를 받았다. 그 자리를 받아들일 생각은 거의 없었다. 그랜드래피즈를 떠나면 얼마나 외로울지 전보다 더 뚜렷이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시작한 정복은 끝내야 했으므로 갔다.

급여는 한 번도 논의하지 않았다. 가능성이 너무 멀게 보였기 때문이다. 빠져나올 방법으로 그들이 주지 못할 만큼 높은 액수를 요구하기로 했다. 그렇게 했고 지금 회사 사장인 L. F. 스위프트는 검토할 가치도 없다고 했다. 그는 내 편지와 글을 하나도 읽지 않았다. 그에게 나는 아무 인상도 남기지 못했고 급여 요구액만 보였다.

리치 씨는 오후에 다시 만나자고 하고 점심을 사 주었다. 식탁에서 아버지처럼 이야기했다. 지금 있는 곳의 활동 범위가 좁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짚었다. 스위프트 앤드 컴퍼니는 광고 분야에서 가장 큰 자리 가운데 하나를 내놓고 있었다. 광고할 제품군이 스무 개나 돼 활동 범위에 한계가 없었다. 그런 기회를 거절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설명했다. 결국 설득됐다. 점심을 먹고 돌아가 제시한 급여를 받아들였고 3주 뒤 출근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음 날 아침 그랜드래피즈의 집으로 올라가 현관에 있는 가족을 보았다. 앞에는 그늘을 드리운 나무가 있었고 정원에는 꽃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가축과 돼지를 가둔 더러운 우리밖에 보이지 않는 도살장 주변과 견주었다. 사무실로 가려면 진흙길 반 마일을 지나야 했다. 결정을 후회했다. 치러야 할 값이 너무 크게 보였다. 약속만 하지 않았다면 그날 아침 조용하고 이름 없는 삶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아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돌아서고 싶다.

3주 뒤 시카고로 갔다. 가축 시장으로 가는 전차가 다니는 43번가에 방을 구했다. 어둡고 칙칙한 작은 방이었다. 침대로 가려면 여행 가방을 넘어야 했다. 서랍장 위에 그랜드래피즈 집 사진을 놓았지만 잠들려면 벽 쪽으로 돌려놓아야 했다.

다음 날 아침 가축 시장으로 출근했다. 리치 씨가 자리를 비워 L. F. 스위프트에게 갔다.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3주 전에 저를 광고 책임자로 채용하셨습니다.”

“그랬나요? 완전히 잊었군요. 정말 우리 회사에 채용됐다면 밖으로 나가 하우스와 이야기하세요.”

이미 절반쯤 낙담한 외로운 사람에게 그런 환영이 어땠을지 생각해 보라. 자기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믿는 자존심 센 남자였다. 작은 도시에서는 모두가 나와 내 중요성과 내 자리를 알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채용될 때 회사의 수장 G. F. 스위프트는 유럽에 있었다. 첫 휴가였지만 견디지 못하고 서둘러 돌아왔다. 자기 사무실에서 내가 무엇을 하는지 즉시 물었다. 그의 돈을 쓰려고 왔다는 말을 듣자 나를 몹시 싫어하게 됐고 그 감정은 끝내 바뀌지 않았다.

그는 당장 내가 버틸 수 없게 만들려 했다. 인쇄 광고 없이 사업을 일군 사람이었다. 누구의 비위를 맞추지도 후원을 부탁하지도 않았다.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었다. 장군이 시인을 깔보듯 광고인을 깔보았다.

내 길은 몹시 험해졌다. 나는 부드러운 환경과 친구로 가득한 사무실에서 왔다. 그곳에서는 전쟁의 공기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팎에서 사업의 모든 개념이 충돌이었다. 30년 전 육류 가공업만큼 거칠었던 큰 사업은 오늘날 찾아보기 어렵다.

G. F. 스위프트는 신앙심이 깊었다.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는 옳은 일을 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사업이 전쟁과 비슷하던 시대의 독재자였다. 누구도 자비를 베풀거나 바라지 않았다. 훗날 대기업이 나쁜 평판을 얻게 된 태도였다.

그는 싸우는 사람이었고 나는 표적 가운데 하나가 됐다. 나는 어리석은 지출을 상징했다.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어렵게 번 돈을 낭비하도록 앉혀 놓은 사람이었다. 그 결과를 고스란히 겪었다. 그의 한마디에 떨던 많은 사람 가운데 내가 가장 많이 떨었다.

스위프트가 생각하는 광고는 냉장 화차 옆면의 글씨였다. 화차는 어디든 다녔다. 글자를 밝은 색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좋은 광고였다. 내가 아무리 밝게 만들어도 그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다.

다음은 해마다 만드는 달력이었다. 그는 아주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었고 내 생각과는 늘 달랐다. 그의 생각대로 해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어느 날 그는 육류 판매장에 걸 쇠고기 반쪽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결정적인 시험임을 알아차리고 사진사 여섯 명을 불렀다. 저장고에서 가장 좋은 쇠고기 반쪽을 꺼내 촬영했다. 다음 날 사진 수십 장을 보내고 고르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위프트가 성난 황소처럼 사진을 한 아름 들고 사무실에서 돌진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내 책상으로 오다가 20피트쯤 앞에서 멈추더니 사진을 집어던졌다.

“이게 쇠고기 반쪽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나? 색은 어디 있지? 검은 쇠고기를 걸어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나?”

사진으로 색을 보여 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쇠고기를 색칠할 줄 아는 여성을 알고 있어. 그 사람에게 맡기겠네”라고 했다. 그 뒤 그 여성은 우리 사무실에서 나보다 훨씬 나은 자리를 차지했다.

그 시절 스위프트 앤드 컴퍼니의 주력 광고 제품은 코토수엣이었다. N. K. 페어뱅크가 코톨린을 광고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내 가장 큰 과제는 경쟁 제품을 막는 일이었다.

코톨린과 코토수엣은 둘 다 혼합 라드 상표였다. 면실유와 쇠기름을 섞어 만들었다. 라드와 요리용 버터보다 훨씬 싼 대체재로 내놓았다.

먼저 나온 코톨린이 크게 앞서 있었다. 하지만 광고인인 내가 금방 따라잡아 꺾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늘날 아이보리 비누에 다른 흰 비누로 맞서는 것과 비슷했다.

보스턴에 영업소를 열고 뉴잉글랜드에서 광고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L. F. 스위프트가 내 책상으로 왔다.

“아버지가 광고비 때문에 몹시 불안해하십니다. 전부 낭비라고 생각하세요. 지금까지 결과도 신통치 않습니다. 당신이 온 지 거의 6주가 됐지만 코토수엣 판매는 거의 늘지 않았습니다.”

광고가 겨우 시작됐다는 사실은 그도 알았으므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빠르게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내서 그를 도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거리를 걸었다. 나 자신을 분석해 보았다. 그랜드래피즈에서는 크게 성공했는데 여기서는 실패하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옛 무대에서 했던 일 가운데 스위프트의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정 무렵 인디애나 애비뉴에서 생각이 떠올랐다. 그랜드래피즈에서는 화제를 만들고 끌리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다른 회사 것 말고 내 상표를 사십시오”라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구매하게 할 이유를 제공했다.

그 원리를 코토수엣에 적용하면 어떨까. 로스차일드 앤드 컴퍼니가 새 상점 완공을 앞두고 있었다. 2주 뒤 개점할 예정이었다. 광고 책임자 찰스 존스를 알고 있었다. 그를 찾아가 개점 행사를 위한 큰 화제를 제안하기로 했다.

다음 날 찾아갔다. 식료품 매장은 5층에 있었고 큰 돌출 창이 있었다. 독특한 전시에 그 창을 쓰게 해 달라고 했다.

“그곳에 세계에서 가장 큰 케이크를 만들겠습니다. 신문에 대대적으로 광고하겠습니다. 개점 행사에서 가장 큰 볼거리로 만들겠습니다.”

버터 대신 코토수엣으로 케이크를 만들 생각이었다. 버터보다 낫다면 라드보다 나은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존스 씨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옆에 있던 제과점 H. H. 콜사트 앤드 컴퍼니로 가서 케이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필요한 특수 틀을 만들고 화려하게 장식해 방 높이만큼 쌓으라고 했다. 그대로 해 주었다.

개점 때 신문 반면 광고로 세계에서 가장 큰 케이크를 알렸다. 토요일이었고 그날 밤 가게가 문을 열 예정이었다. 저녁을 먹은 뒤 직접 보러 갔지만 전차는 가게에 닿기 훨씬 전 스테이트가에서 멈췄다. 내려 보니 사람의 바다가 펼쳐졌다. 오래 몸싸움을 한 끝에 입구에 도착했다. 문마다 경찰관이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당국이 출입문을 닫아 버렸다.

그 뒤 일주일 동안 10만5천 명이 케이크를 보려고 계단 네 층을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로는 다 나를 수 없었다. 시식 요원이 케이크 조각을 나눠 주었다. 무게를 가장 가깝게 맞힌 사람에게 주는 상도 마련했다. 다만 응모하려면 코토수엣 한 통을 사야 했다.

그 한 주의 결과로 코토수엣은 시카고에서 이익을 내는 제품이 됐다. 새로운 사용자 수천 명을 얻었다.

이어서 동부 여러 주에서 같은 계획을 실행할 팀을 꾸렸다. 제빵사 겸 장식가 한 명, 시식 요원 세 명과 나였다. 보스턴으로 가서 코브, 베이츠 앤드 이어자 상점에 전시했지만 첫날 오전에 쫓겨났다. 사람이 너무 몰려 가게가 다른 영업을 전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뉴욕 센트럴 철도 노선을 따라 이동하며 도시마다 성과를 더 높이는 방법을 배웠다. 지역의 대표 제빵사를 찾아가 다른 곳에서 한 일을 보도한 기사 스크랩을 보여 주었다. 코토수엣 한 화차분, 때로는 두 화차분을 사는 조건으로 케이크를 만들고 제작자로 광고에 이름을 내게 했다.

대표 식료품점에는 케이크 전시의 성과를 증명했다. 통조림 코토수엣 한 화차분을 주문하면 매장에 케이크를 설치하겠다고 제안했다.

어느 도시에 가든 행사를 시작하기 전에 이익을 보장할 만큼 코토수엣을 팔았다. 메인 스트리트에서는 소년에게 신문을 들고 “이브닝 뉴스! 거대한 케이크의 모든 이야기!”라고 외치게 했다. 케이크를 전시한 상점은 사람에게 포위됐다. 도시마다 정기 구매자 수천 명을 만들었다.

마침내 공설시장이 있는 클리블랜드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한 식료품점에 화차 한 대분을 팔 수 없었다. 대신 시장과 협의해 일주일 동안 악단과 신문 광고 지면을 제공받았다. 그 결과 클리블랜드 경찰의 절반이 사람을 계속 움직이게 하려고 시장으로 불려왔다. 시장 안에는 줄을 치고 동선을 만들었다. 그 주에 다른 가게가 물건을 많이 팔았는지는 의문이지만 우리는 코토수엣을 확실히 팔았다.

시카고로 돌아오자 L. F. 스위프트가 말했다.

“내가 본 가장 훌륭한 광고 행사입니다. 아버지에게도 내게도 능력을 증명했습니다.”

그렇게 스위프트 앤드 컴퍼니에서 자리를 잡았다.

많은 사람은 그것을 광고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들에게 광고는 품위 있는 문구를 인쇄물에 싣는 일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품위만으로는 멀리 가지 못한다. 물건 파는 법을 알려면 영업사원과 방문 판매원, 거리 상인을 연구하라. 세상의 어떤 주장도 극적인 시연 한 번과 맞설 수 없다.

고운 말이 제품을 이익 나게 팔아 줄 거라고 믿는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는다. 그들의 주장을 몇 시간씩 들었다. 정장이 훌륭한 잠수복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취미 삼아 일하는 사람은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낼 수 없다.

상품을 파는 길은 실제로 파는 것이다. 그러려면 맛보게 하고 보여 줘야 한다. 시연을 매력적으로 만들수록 좋다. 광고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교양을 뽐내는 사람도, 튀지 않게 예의를 지키는 데 몰두하는 사람도 아니다. 보통 사람을 무엇이 들뜨게 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찰리 채플린과 로버트 맨텔의 차이, 대중가요 〈무도회가 끝난 뒤〉와 〈월광 소나타〉의 차이다. 팔고 싶다면 실제로 사는 수백만 명에게 맞춰야 한다.


2026년 스타트업에서 읽기

홉킨스는 이직할 회사를 설득할 때 추천서, 공개 글, 직접 발표를 한꺼번에 썼다. 오늘의 채용으로 옮기면 평판, 작업물, 문제 해결 시연을 동시에 보여 준 셈이다. 이력서 한 장보다 실제로 회사 문제를 어떻게 볼지 공개 문서로 써 보는 편이 강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케이크’는 단순한 화제 만들기가 아니었다. 시식으로 제품을 경험하게 했고 무게 맞히기 응모를 구매와 연결했으며, 지역 제빵사와 매장이 행사 전에 재고를 주문하게 했다. 주목에서 체험, 구매, 유통 확보까지 한 흐름으로 설계했다.

여기에는 위험도 있다. 군중이 너무 몰려 상점이 문을 닫고 다른 상인이 영업을 못 했다. 오늘의 바이럴 캠페인도 서비스 장애, 고객 지원 폭주, 파트너 피해까지 포함해 성공을 계산해야 한다. 노출 수만 커지고 실제 운영이 무너지면 성공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