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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ATIONS 006 · 04

2장 팔아 보고 나서 써라

아버지는 목재업으로 번창한 도시에서 신문사를 운영했다. 사람들에게 쓸 돈이 있었으므로 광고주가 몰려들었다. 지금 그 시절 광고를 떠올리면 웃음이 나지만, 당시의 후프스커트를 보아도 웃음이 나는 건 마찬가지다.

광고비는 대부분 현물로 받았다. 우리 집은 광고 상품 창고가 됐다. 한때 피아노 여섯 대와 재봉틀 여섯 대를 쌓아 둔 기억이 난다.

아버지가 광고한 제품 가운데 ‘비니거 비터스’가 있었다. 나중에 그 내력을 알게 됐다. 식초 제조업자가 발효를 잘못해 한 묶음을 망쳤고, 지독하게 역한 물건이 만들어졌다. 당시 사람들은 약은 끔찍해야 효험이 있다고 믿었다. 사람이나 짐승에게 쓴다는 기름과 연고는 어느 쪽이든 미쳐 날뛰게 할 만큼 독했다. ‘뱀 기름’과 ‘스컹크 기름’도 썼는데 아마 이름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치료제가 병보다 더 고약하지 않으면 누구도 약으로 존중하지 않았다.

그래서 온갖 비터스가 나왔다. 비니거 비터스는 그 가운데 최악이었고, 그만큼 가장 인기 있었다. 아버지는 광고비 대신 그 끔찍한 약을 수십 병 받았다. 피아노와 오르간, 재봉틀을 사러 오는 사람은 있었지만 약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비니거 비터스 재고는 계속 쌓였다.

스코틀랜드계인 어머니는 낭비를 참지 못했다. 그 약을 반드시 다 써야 했고, 집안에서 몸이 약했던 내가 희생자가 됐다. 아침과 점심과 저녁마다 비니거 비터스를 먹었다. 그 약을 만든 회사가 아직 존재한다면, 그 뒤로 내가 놀라울 만큼 건강했다고 증언해 줄 수 있다.

편집자 주 홉킨스가 농담처럼 회고하는 특허약은 효능과 안전성이 검증된 현대 의약품이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약 광고와 건강 주장을 의학 정보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아버지는 신문사에서 전단도 인쇄했다. 나는 전단을 유심히 보았고 가끔 활자를 직접 조판했다. 그러고는 광고주를 찾아가 배포 일을 달라고 했다. 우리 도시에는 집이 1천 채 있었다. 모든 집에 한 장씩 넣는 대가로 2달러를 받겠다고 제안했다. 약 35마일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다른 소년들은 1.50달러에 하겠다고 했지만 한 집에 전단 여러 장을 넣고 멀리 떨어진 집은 건너뛰었다. 나는 광고주에게 결과를 비교해 보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을 독점했다.

성과를 추적한 첫 경험이었다. 알고 비교할 수 있는 반응을 근거로 일해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 그 뒤로 줄곧 같은 방식을 주장했다. 실제 서비스의 우위를 드러낼 다른 길은 없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일하는 것은 어리석다.

내가 열 살 때 어머니는 남편을 잃었다. 그때부터 내 생활비를 벌고 집안 살림에도 보태야 했다. 여러 방법을 썼지만 여기서는 훗날 내 경력에 영향을 준 일만 이야기하겠다.

어머니는 은을 닦는 광택제를 만들었다. 나는 그것을 고형 비누처럼 빚어 예쁜 종이로 포장한 뒤 집집마다 다니며 팔았다. 문 앞에서 말로만 설명하면 여성 열 명 가운데 한 명꼴로 샀다. 하지만 식료품 저장실에 들어가 실제로 닦아 보일 수 있으면 거의 모두에게 팔았다.

평생 잊지 않은 또 하나의 교훈을 여기서 배웠다. 좋은 제품은 자기 자신이 가장 훌륭한 판매원이다. 견본 없이 인쇄물이나 말만으로 상품을 파는 일은 비탈길을 오르는 것처럼 힘들다.

광고주에게 견본의 가치를 가르치는 일은 내 평생 가장 어려운 싸움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시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견본 없이 영업사원을 보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소비자가 제품을 보거나 써 보지도 않은 채 사도록 설득하는 광고에는 큰돈을 쓴다. 견본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같은 사람이 여러 번 받아 갈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말로만 설득하는 비용은 훨씬 더 많이 든다.

믿지 않는 광고주라면 내가 은 광택제로 한 일을 직접 해 보기 바란다. 그 경험에서 배운 교훈은 광고주에게 수백만 달러를 아껴 주었다. 견본이 있을 때보다 없을 때 판매가 몇 배나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든 하루 만에 알게 될 것이다.

거리의 약장수에게도 같은 점을 배웠다. 횃불 아래서 그들의 말을 몇 시간씩 들었다. 돌아보면 그들의 방법과 이론을 그대로 빨아들였다. 그들은 시범 없이 물건을 팔려 하지 않았다. 상품이 무엇을 하는지 극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들보다 판매를 모르는 광고주가 놀랄 만큼 많다.

뒤에서 이 주제를 더 다루겠다. 내게는 무척 중요한 문제다. 여기서 꺼낸 까닭은 쿠폰의 기초를 어디서 배웠는지 보여 주기 위해서다. 그 뒤 나는 잡지와 신문에 쿠폰 수억 장을 내보냈다. 견본을 받는 쿠폰도 있었고 어느 상점에서든 정규 제품 한 개를 무료로 받는 쿠폰도 있었다. 내 이름은 이런 광고 방식과 연결됐다. 온갖 제품의 견본을 뿌렸다. 다른 어떤 방법도 내가 광고계에서 영향력을 얻는 데 이만큼 큰 몫을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단순하고 자연스럽다. 모든 영업사원과 방문 판매원, 거리 약장수가 반드시 하는 일을 했을 뿐이다. 광고를 마법이 통하는 꿈의 나라로 여기는 사람만 견본 없이 팔려고 한다.

돈을 벌려고 책도 팔았다. 이익률이 100퍼센트였고 시장도 좋아 보였다. 어느 날 위대한 탐정 앨런 핑커턴이 자서전을 썼다는 소식을 읽었다. 당시 소년에게 핑커턴이 영웅이었다는 말은 따로 할 필요도 없다. 나는 어머니를 설득해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책을 들여왔다.

책이 도착한 날을 기억한다. 바닥에 모두 펼쳐 놓았다. 세상 사람이 전부 이 책을 기다린다고 확신했다. 당장 뛰어나가 나눠 주듯 팔고 싶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먼저 지역의 지도자들에게 팔아라. 그들이 다른 사람을 데려올 거다.” 그래서 아침 일찍 시장인 레시그 씨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는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나는 과부의 아들이었다. 돈을 벌려고 애쓸 때 지역의 훌륭한 어른들이 모두 진심으로 도와주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성공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일해 본 사람은 다른 사람도 일하기를 바란다. 나도 그렇다. 지금은 젊은이가 수없이 우리 집을 찾아온다. 반가운 손님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스스로 일하는 사람이다. 아버지 돈으로 놀기만 하는 젊은 남자를 나는 늘 싫어했다. 젊은 여성도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다. 성별이 평등하려면 노력도 평등해야 한다. 누구든 자기 존재를 스스로 정당화해야 한다. 형편 때문에 생활비 전부를 벌지 못할 수는 있어도 그러려고 애써야 한다. 나는 무위도식을 몹시 싫어한다. 내 영향 때문에 더 행복한 방향으로 노력한 사람이 많다고 믿는다.

편집자 주 노동의 유무로 사람의 가치를 재단하고 성평등을 경제활동 참여로만 설명하는 것은 홉킨스 시대의 한계이자 개인적 신념이다. 질병·돌봄·실업처럼 노동 여부를 결정하는 조건은 이 판단에 거의 들어 있지 않다.

그날 아침 레시그 씨가 왜 그토록 예의 있게 맞아 주었는지 이제는 안다. 나는 성공하려고 애쓰는 마을 소년이었다. 나 역시 아무리 바쁠 때라도 그런 소년이나 소녀를 만나기를 거절한 적이 없다. 귀중한 시간을 여러 시간 내주고 자금을 대며 조언했다. 자기 힘으로 길을 내려는 정신보다 더 존경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날은 장애물에 부딪혔다. 레시그 씨는 신앙이 깊었고 매우 엄격한 이상을 품고 있었다. 범죄자를 상대하는 탐정은 점잖은 사회에 들어올 자리가 없다고 믿었다. 탐정을 영웅으로 보는 시기는 이미 지나간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책을 꺼낼 때까지 말을 들었다. 책을 한 번 보고는 내 무릎으로 던졌다.

“자네는 우리 집에 와도 좋지만 이 책은 안 되네. 둘 중 하나는 나가야 해. 자네는 원하는 만큼 있어도 좋지만 책은 거리로 내보내게. 앨런 핑커턴의 책은 내가 지키는 모든 가치에 모욕이야.”

뜻밖의 발견이었다. 그 뒤로 같은 일을 수십 번 보았다. 수백 명이 자기가 아끼는 사업 구상을 내게 설명했다. 이사회는 세계가 당연히 자기편일 것이라고 진지하게 결론 내렸다. 나는 시험을 해 보고 대중의 맥박을 짚으라고 권했다. 세상 사람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듣고 이익을 보았고 어떤 사람은 내 의견을 비웃었다. 자기를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한 사람이 성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섯 번 가운데 네 번은 실패했다. 백발의 이사들이 주부가 원하는 것을 회의실에서 결정하는 모습보다 우스운 것은 별로 없다.

지금 말한 책의 경우에는 확률이 내 편이었다. 시장 집을 나올 때는 낙담했다. 내가 사랑하던 탐정소설을 그렇게 보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격려했다. “사업가들에게 가 봐라. ‘빅 스토어’로 내려가서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라.” 그대로 했다. 지배인이 책을 한 권 샀다. 이어서 나를 사무실 직원에게 데려가 책 여섯 권을 더 팔아 주었다. 앨런 핑커턴의 책으로 큰돈을 벌었다.

또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절대로 자신을 기준으로 인간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은 소수에게만 통할 수 있다. 개인 취향을 믿고 광고에 돈을 걸어 생기는 손실만 모아도 국가 부채를 갚고 남을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산다. 법 하나에도 의견이 갈린다. 취향과 욕구도 모두 그렇다. 고집스럽고 어리석은 사람만 개인 의견에 큰돈을 건다. 광고도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대중이라는 법정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알겠지만 이것이 이 책의 주제다. 내게는 대양을 항해하는 요트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지도와 나침반 없이 바다를 건너겠는가. 기록이 없다면 가는 내내 수심을 재야 한다.

사람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부유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끼리 어울리고 취향과 성향이 비슷한 사람도 서로 모인다. 높이 올라갈수록 보통 사람에게서 더 멀어진다. 광고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성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시도를 수백 번, 사업 구상을 수천 개 보았다. 편협한 몇 사람이 소수를 기준으로 다수를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업상 피할 수 없어 나도 그런 일에 참여한 적이 있다. 아무리 설득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옳든 그르든 좁은 생각대로 밀고 나가려 했다. 나는 가능한 한 적은 비용으로 길 또는 암초를 보여 주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

여기서 잠깐 벗어나 한마디 하자. 성공으로 가는 길은 평범한 사람 사이에 있다. 그들이 압도적 다수다. 그들을 알고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인 이가 훨씬 유리하다.

내가 본 광고계의 가장 큰 성공 가운데는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사람이 이룬 것도 있다. 그중 두 명은 지금 광고대행사를 이끈다. 한 사람은 자기 이름도 겨우 쓸 만큼 배움이 짧았지만 광고로 큰돈을 벌었다. 평범한 사람을 알았고, 평범한 사람은 그가 파는 물건을 샀다.

또 한 사람은 농부가 헛간을 저당 잡아서라도 응답하게 만들 광고 문안을 썼다. 다만 문법을 바로잡으려면 문장마다 교정을 받아야 했다.

요즘은 대졸자가 수백 명씩 찾아와 “교육을 받았고 문학적 문체가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둘 다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답한다. 대다수 남녀는 문학적 문체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알아보더라도 경계한다. 돈을 쓸 때 지나치게 영향을 받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독특한 문체는 의심을 일으킨다. 팔려는 노력이 눈에 보이면 그만큼 저항이 생긴다. 위 계층에서 내려오는 듯한 호소는 반감을 부른다. 누구든 지시받기를 싫어한다.

광고계가 늘 찾는 사람은 다수와 같은 충동을 지닌 사람이다. 학력이나 문학적 자격부터 묻지 않는다. 부족하면 쉽게 보충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두 팔 벌려 맞는다.

사례를 몇 가지 들겠다. 어느 날 전혀 모르는 사람이 무작정 보낸 듯한 편지를 받았다.

“미리 만들어 둔 미트파이에 큰 수요가 있고 나는 그것을 만듭니다. 사람들은 가정식을 좋아하므로 ‘브라운 부인의 미트파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미 적지 않은 수요를 만들었고 훨씬 큰 수요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사업을 넓힐 자본이 필요합니다.”

그에게서 본능적인 감각을 보았다. 미트파이에는 끌리지 않았지만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드문 눈은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람을 보내 조사했다. 편지를 쓴 이는 허름한 식당에서 주급 8달러를 받는 야간 요리사였다. 사무실로 불러 광고를 배우는 조건으로 주급 25달러를 제안했다. 그는 내게 왔고 지금은 미국을 대표하는 광고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됐다.

다른 사람은 위스콘신주 매니터웍에서 시카고로 왔다. 톰프슨 식당에서 아침을 먹다가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구운 사과를 발견했다. 그는 생각했다.

“나처럼 시골에서 시카고로 온 사람이 수천 명이다. 도시 인구의 3분의 2가 그런 사람이다. 이 구운 사과를 알려야 한다.”

구운 사과를 다룬 전면 광고를 써서 존 R. 톰프슨에게 보여 주었다. 톰프슨이 광고를 실었고 식당 손님은 즉시 늘었다. 톰프슨 간이식당의 손님을 몇 배로 키워 소유주를 여러 차례 백만장자로 만든 캠페인의 시작이었다.

초보자와 젊은이 대부분은 선배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내 경험으로는 사업가는 능력 있는 사람을 계속 찾는다. 가장 심각하게 부족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많이 알수록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는다. 어느 분야든 유능한 일꾼은 드물고, 누구나 부담을 나눌 도움을 찾는다. 현실을 보는 사람은 같은 현실을 볼 다른 사람을 간절히 원한다.

톰프슨의 첫 광고는 일요일 아침에 나왔다. 당시 나는 큰 광고대행사의 문안부를 이끌며 새 인재를 찾고 있었다. 그날 아침 광고를 쓴 사람을 찾아 호텔로 데려왔다. 위스콘신 작은 도시 출신으로 그때까지 그 돈의 5분의 1도 벌어 보지 못한 사람에게 연봉 7,500달러를 제안했다. 나처럼 사람을 아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고 보았다.

그는 거절했다. 첫 광고에서 독립해 성공할 기회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대로 나아가 성공했다. 도시로 온 시골 청년에게 고향에서 먹던 음식을 보여 주었다. 도넛과 파이, 진짜 시골 달걀과 버터였다. 그렇게 위대한 광고 경력의 토대를 놓았다.

필립 레넌도 비슷했다. 시러큐스에서 와서 얼마 동안 경험을 쌓은 뒤 로열 테일러스에서 일했다. 로열 테일러스는 작은 도시와 시골의 젊은 남성에게 맞춤옷을 팔았다. 레넌은 시카고에도 시골 출신이 많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몇 년 전 자기 환경을 기억했다. 사람들은 ‘미스핏 팔러’라는 이름이 맞춤옷을 떠올리게 해서 그 가게에 갔다. 그는 시카고 남성에게 자기 상점으로 오라고 했고 수만 명을 불러들였다.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으므로 당시 수입의 두 배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윈턴 자동차를 광고한 찰스 미어스도 그랬다. 내가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인물이었다. 광고대행사로 오면 연봉 2만5천 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당신은 광고계에서 자연스러운 충동에 자연스럽게 호소하는 몇 안 되는 사람입니다. 진짜 인간다움을 찾느라 애쓰는 우리에게 당신이 필요합니다.”

좋은 광고가 얼마나 평범하고 서민적인지, 평범한 인간을 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주려는 이야기다. 이 분야의 신입 대부분은 말솜씨와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에 기대를 건다. 어떤 사람은 눈길을 끄는 기묘한 장치에 기댄다. 모두 자기 능력을 뽐내려 하고, 그것은 늘 반감을 부른다. 내가 아는 진짜 광고인은 모두 겸손하다. 평범한 사람 사이에서 나왔고 그들을 안다.

평범한 사람은 영리하고 돈을 아끼며 검소하고 의심이 많다. 일상적인 구매에서 쉽게 속지 않는다. 교육을 많이 받고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오늘날 큰 기업의 책임자를 보면 밑바닥에서 올라온 이가 많다. 올라오는 내내 동료와 부하, 영향을 미칠 사람을 알게 됐다. 그런데 이런 지식이 광고만큼 중요한 분야는 없다. 내가 말한 낮은 자리의 경험은 광고와 사업,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자격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2026년 스타트업에서 읽기

이 장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의견을 묻지 말고 행동을 비교하라”다. 홉킨스는 전단을 정확히 1천 가구에 돌렸고 광고주는 다른 배포 방식과 결과를 비교했다. 은 광택제는 설명할 때와 직접 써 보게 할 때의 구매율을 비교했다. 어린 시절부터 작은 실험을 설계한 셈이다.

오늘의 제품에서는 견본이 무료 체험, 샌드박스, 데모 데이터, 첫 작업 자동 완성으로 바뀐다. 랜딩페이지에서 장점을 열거하는 것과 사용자가 3분 안에 첫 결과를 얻는 것은 다르다. ‘제품이 자기 자신을 팔게 하라’는 말은 온보딩에서 실제 효용을 가능한 한 빨리 보여 주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다만 ‘평범한 사람’을 안다는 자신감은 경계해야 한다. 팀원의 취향도, 유명 고객 한 명의 반응도 시장 전체가 아니다. 소규모 테스트의 목적은 자기 확신을 강화하는 데 있지 않다. 틀렸다는 사실을 싸게 알아내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