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세상에 나서는 젊은이에게 가장 안전하고 성공 가능성이 큰 길은 자기 취향에 가장 잘 맞는 일을 고르는 것이다.
부모와 보호자는 이 문제를 지나치게 소홀히 할 때가 많다.
아버지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모습을 흔히 본다.
“내게는 아들이 다섯 있다. 빌리는 목사, 존은 변호사, 톰은 의사, 딕은 농부로 만들겠다.”
그런 다음 새미에게 시킬 일을 찾으러 마을에 나갔다가 돌아와 말한다.
“새미, 시계 만드는 일은 품위 있고 괜찮아 보이더구나. 너를 금세공인으로 만들어야겠다.”
새미의 타고난 성향과 재능은 전혀 살피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알맞은 목적을 지니고 태어났을 것이다. 얼굴이 서로 다른 만큼 두뇌도 다양하다.
기계를 본능적으로 다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계라면 질색하는 사람도 있다.
열 살짜리 소년 열두 명을 한자리에 모아보라. 둘이나 셋은 곧 나무를 깎아 기발한 장치를 만들거나 자물쇠와 복잡한 기계를 만지작거릴 것이다. 다섯 살 때부터 어떤 장난감보다 퍼즐을 좋아했을 아이들이다. 타고난 기술자다.
나머지 여덟아홉 명에게는 다른 소질이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기계를 좋아한 적이 조금도 없다. 오히려 복잡한 기계를 싫어한다.
새지 않는 사과주 통 마개 하나 깎을 재주가 없었다. 글씨가 제대로 써지는 펜도 만들지 못했고 증기기관의 원리도 이해하지 못했다.
나 같은 소년을 데려다 시계공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5년이나 7년의 견습 끝에 시계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정도는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오르막길에서 일하듯 괴로울 것이다. 핑계만 생기면 일을 놓고 시간을 허비할 것이다. 시계 만드는 일 자체가 싫기 때문이다.
타고난 성향과 고유한 재능에 맞는 일을 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다행히 대다수는 자기 일을 제대로 찾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대장장이에서 목사에 이르기까지 직업을 잘못 고른 사람도 많이 보인다.
이를테면 뛰어난 언어학자로 이름난 ‘박식한 대장장이’는 언어 교사가 됐어야 한다. 반대로 변호사와 의사와 목사 가운데는 법정이나 진료실이나 설교단보다 모루나 구두골 앞에 더 잘 어울렸을 사람도 있다.
2026년 스타트업에서 읽기
적성은 타고난 재능 하나를 찾아 평생 고정하라는 말이 아니다. 어떤 문제를 오래 붙들 수 있는지, 무엇을 배울 때 에너지가 생기는지를 관찰하라는 뜻에 가깝다.
채용에서도 직함보다 실제 일을 보여주고 작은 과제를 함께 해보는 편이 낫다. 사람을 역할에 억지로 맞추는 비용은 채용 순간보다 입사 뒤에 더 크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