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땅이 더 많은 미국에서는 건강한 사람이 돈을 벌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비교적 새로운 이 나라에는 성공으로 이어지는 길이 많고 아직 붐비지 않은 직업도 많다. 당분간이라도 눈앞에 놓인 떳떳한 일에 기꺼이 뛰어들 사람이라면 성별과 관계없이 돈이 되는 일을 찾을 수 있다.
경제적 독립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은 다른 목표를 이룰 때와 마찬가지로 마음을 정하고 알맞은 수단을 택하면 된다. 돈을 버는 일은 뜻밖에 쉬울 수 있다.
하지만 돈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데는 독자도 동의할 것이다.
프랭클린 박사의 말처럼 부자가 되는 길은 “방앗간 가는 길처럼 훤하다.” 버는 것보다 적게 쓰면 된다. 아주 간단해 보인다.
디킨스가 창조한 유쾌한 인물 미코버 씨는 이를 강렬하게 설명한다. 연소득이 20파운드인데 20파운드 6펜스를 쓰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된다. 연소득이 20파운드뿐이어도 19파운드 6펜스를 쓰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그 정도는 안다. 절약이 곧 재산 아닌가. 케이크를 먹고 나서도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랄 수는 없다는 말이지.”
이렇게 말할 독자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바로 이 대목을 잘못 이해해 실패하는 사람이 많다. 절약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사람들이다.
진짜 절약은 자주 오해받는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내 수입은 이만큼이다. 이웃도 똑같이 번다. 그런데 그는 해마다 돈이 남고 나는 모자란다. 왜 그럴까? 나는 절약이라면 다 아는데.”
그는 안다고 생각하지만 모른다.
치즈 귀퉁이와 다 타고 남은 초를 모으고, 세탁비에서 2펜스를 깎고, 사소하고 비열하고 지저분한 일을 하는 것이 절약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
절약은 인색함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절약을 한 방향에만 쓴다는 데 있다. 2펜스를 써야 할 곳에서 반 페니를 아꼈으니 다른 곳에서는 낭비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등유가 나오기 전의 일이다. 농촌의 웬만한 농가에서 하룻밤을 묵으면 아주 훌륭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저녁을 먹고 거실에서 책을 펴면 초 한 자루의 희미한 빛 때문에 읽을 수가 없었다.
난처해하는 손님을 본 안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에서는 밤에 책 읽기가 좀 어렵답니다. 초 두 자루를 한꺼번에 켜려면 바다에 배 한 척은 띄워둬야 한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특별한 날 말고는 초를 하나 더 켜지 않아요.”
그 특별한 날은 1년에 두 번쯤 찾아왔다. 안주인은 그런 식으로 5달러나 6달러, 어쩌면 10달러를 아꼈다. 그러나 초를 하나 더 밝히고 얻을 수 있었던 지식은 초 한 톤보다 훨씬 값졌을 것이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안주인은 양초를 이토록 알뜰하게 썼으니 마을에 자주 나가 리본과 장식에 20달러나 30달러를 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중 대부분은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이다.
사업가에게도 같은 착각이 나타난다. 이때 희생되는 것은 흔히 종이다.
오래된 봉투와 자투리 종이를 모두 모으고, 어떻게든 피할 수 있다면 새 종이 한 장도 찢지 않는 훌륭한 사업가가 있다. 나쁜 일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 1년에 5달러나 10달러를 아낄 수 있다.
하지만 종이를 이토록 아꼈으니 시간을 낭비하고 비싼 파티를 열고 마차를 몰아도 된다고 여긴다.
프랭클린이 말한 “수도꼭지에서는 아끼고 술통 마개에서는 쏟아버리는” 사람, 곧 푼돈에는 영리하고 큰돈에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잡지 《펀치》는 한 가지 생각에만 사로잡힌 이런 사람을 두고 “가족의 저녁거리로 1페니짜리 청어를 산 뒤 사두마차를 빌려 집으로 가져가는 사람”과 같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절약해서 성공한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진짜 절약은 언제나 수입이 지출보다 많게 만드는 일이다.
필요하다면 낡은 옷을 조금 더 입어라. 새 장갑을 포기하고 헌 옷을 기워라. 더 소박한 음식을 먹어라. 뜻밖의 사고가 생기지 않는 한 어떤 상황에서도 수입 쪽에 여백이 남게 하라.
여기서 1페니, 저기서 1달러를 남겨 이자를 받게 하면 돈은 계속 불어난다. 그렇게 바라던 결과에 닿는다.
처음에는 훈련이 좀 필요하다. 그러나 습관이 되면 이치에 맞지 않게 쓰는 즐거움보다 이치에 맞게 모으는 만족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낭비, 특히 엉뚱한 절약을 고치는 처방 하나를 권하겠다.
수입이 괜찮은데도 연말이면 남는 돈이 없다면 종이 몇 장을 묶어 장부를 만들고 모든 지출을 적어라. 매일 또는 매주 두 칸에 나누어 기록한다. 한 칸에는 ‘필수품’ 혹은 ‘생활의 편안함’, 다른 칸에는 ‘사치품’이라고 쓴다.
사치품 칸이 필수품 칸보다 두 배, 세 배, 흔히 열 배나 크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삶의 진짜 편안함에는 우리 대부분이 버는 돈의 일부만 필요하다.
프랭클린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망치는 것은 자기 눈이 아니라 남의 눈이다. 나를 빼고 온 세상이 장님이라면 좋은 옷이나 가구에는 마음을 쓰지 않을 것이다.
‘남들이 뭐라고 할까’ 하는 두려움이 점잖은 수많은 가족을 평생 숫돌에 코를 박고 일하게 한다.
미국 사람들은 “우리는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말을 즐겨 되풀이한다. 여러 의미에서 크게 잘못된 말이다.
어떤 뜻에서 우리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난 것은 영광스러운 진실이다. 그러나 똑같은 부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고 해보자.
“저 사람은 1년에 5만 달러를 벌고 나는 1천 달러밖에 못 번다. 그도 나처럼 가난했을 때부터 알았는데, 이제 부자가 됐다고 나보다 잘났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와 동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말과 마차를 사야지. 아니, 살 수는 없으니 오늘 오후에 빌려서 그가 다니는 길을 달려야겠다.”
친구여, 그럴 필요가 없다. 그만큼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훌륭하게 행동하면 쉽게 증명된다. 그러나 그만큼 부자라고 믿게 만들 수는 없다.
그런 허세를 부리느라 시간과 돈을 버리면 가엾은 아내는 집에서 손가락이 닳도록 문질러야 한다. 차를 한 번에 2온스씩 사고 다른 물건도 그만큼 쪼개 사면서 당신의 ‘체면’을 지켜야 한다. 그래도 속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대편에서는 스미스 부인이 옆집 여자가 돈을 보고 존슨과 결혼했으며 “다들 그렇게 말한다”고 할지 모른다. 옆집 여자는 1천 달러짜리 낙타털 숄을 가졌다. 스미스 부인은 자신도 동등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남편을 졸라 모조품을 사고 교회에서도 그 여자 바로 옆자리에 앉는다.
좋은 부인이여, 허영과 질투가 앞장서게 두면 세상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다수가 다스려야 한다고 믿는 나라에서 우리는 유독 유행에 관해서는 그 원칙을 버린다. 스스로 귀족이라 부르는 소수가 거짓 기준을 높이 세우도록 내버려두고, 그 기준에 닿으려 애쓰느라 계속 가난해진다. 오직 겉모습을 위해 일한다.
자기 삶의 기준을 스스로 세우는 편이 얼마나 현명한가.
“수입에 맞춰 지출을 정하고 비 오는 날을 위해 얼마라도 남겨두겠다.”
돈을 버는 문제에서도 다른 문제를 대할 때만큼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같은 원인은 같은 결과를 낳는다. 가난으로 가는 길을 걸어 재산을 모을 수는 없다.
형편이 뒤집힐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수입을 전부 써버리는 사람은 결코 경제적 독립을 얻지 못한다. 예언자가 아니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모든 변덕을 채우는 데 익숙한 사람은 처음에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기가 어렵다. 전에 살던 집보다 작은 집, 덜 비싼 가구, 적은 손님, 싼 옷, 적은 하인과 무도회와 파티와 연극과 마차 여행을 받아들이는 일을 큰 희생으로 느낀다. 유람과 시가와 술, 그 밖의 사치도 줄여야 한다.
그래도 작은 종잣돈을 떼어 이자를 받게 하거나 토지에 신중히 투자해 보라. 얼마 되지 않는 돈이 꾸준히 늘어나는 기쁨과 그 과정에서 생긴 절약 습관에 스스로 놀랄 것이다.
헌 양복과 헌 모자와 드레스도 한 철 더 쓸 수 있다. 크로턴 수돗물이나 샘물이 샴페인보다 맛있어진다. 찬물 목욕과 빠른 걸음은 가장 좋은 마차를 타는 것보다 상쾌하다.
저축의 즐거움을 알기 시작하면 이웃과 나누는 대화,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독서, 한 시간 동안 하는 ‘슬리퍼 찾기’와 술래잡기가 50달러나 500달러짜리 파티보다 훨씬 즐겁다. 쓴 돈의 차이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의 판을 지나치게 크게 벌이는 바람에 수천 명이 가난한 상태에 머문다. 평생 넉넉히 살 만한 돈을 번 뒤 다시 가난해지는 사람은 수만 명이다.
어떤 가족은 1년에 2만 달러, 어떤 가족은 그보다 훨씬 많이 쓰며 그 이하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 가족은 그 돈의 20분의 1만으로 더 단단한 즐거움을 얻는다.
번영은 역경보다 가혹한 시험이다. 특히 갑자기 찾아온 번영이 그렇다.
“쉽게 온 것은 쉽게 간다”는 오래되고도 참된 속담이다.
교만과 허영을 마음대로 자라게 두면 재산의 심장을 갉아먹는 죽지 않는 벌레가 된다. 가진 것이 몇백 달러든 몇백만 달러든 마찬가지다.
형편이 나아지자마자 씀씀이를 키우고 사치품을 사기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출이 수입을 삼킨다. 체면을 세우고 세상을 놀라게 하려는 우스꽝스러운 시도 끝에 파산한다.
내가 아는 한 부자는 처음 성공하기 시작했을 때 아내가 새롭고 우아한 소파를 갖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그 소파는 내게 3만 달러짜리였소.”
소파가 집에 도착하자 어울리는 의자가 필요했다. 이어서 찬장과 카펫과 탁자도 ‘어울리게’ 바꿨다. 모든 가구를 바꾼 끝에 집이 새 가구에 비해 너무 작고 낡았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새 물건에 맞는 새집을 지었다.
친구는 말을 이었다.
“그 소파 하나에서 시작된 지출을 모두 더하면 3만 달러요. 하인과 마차, 번듯한 살림을 유지하는 비용까지 합쳐 해마다 1만1천 달러가 빠듯하게 나갔지. 10년 전에는 몇백 달러로 훨씬 편안하게 살았소. 걱정이 훨씬 적었으니까.”
그는 평범한 수준의 성공만 거뒀다면 그 소파 때문에 틀림없이 파산했을 것이라고 했다. 번영이 예외적으로 계속됐고, 자신도 결국 남에게 과시하려는 욕망을 억눌렀기에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삶에서 성공의 토대는 건강이다. 건강은 가장 밑바닥에 놓인 재산이며 행복의 토대이기도 하다.
아픈 사람은 재산을 모으기 어렵다. 야망도 의욕도 힘도 생기지 않는다. 물론 어쩔 수 없이 건강이 나쁜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부를 쌓으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다만 건강이 나쁜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건강이 성공과 행복의 토대라면 건강의 법칙, 달리 말해 자연의 법칙을 공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자연의 법칙에 가까이 살수록 건강에도 가까워진다.
그런데 자기 몸의 자연스러운 느낌을 거스르면서까지 그 법칙을 일부러 어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자연의 법칙 앞에서는 “몰랐으니 괜찮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어기면 언제나 대가를 치른다. 불이 뜨거운 줄 모르고 손가락을 넣은 아이도 화상을 입는다. 뒤늦게 뉘우쳐도 쓰라림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 조상 가운데는 환기를 거의 모르는 이가 많았다. 산소는 몰랐어도 다른 종류의 ‘진’에는 익숙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들은 7피트에 9피트짜리 작은 침실을 지었다. 경건한 청교도들은 그 감방 같은 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기도한 뒤 잠들었다. 아침이면 밤새 “목숨을 지켜주신” 데 경건하게 감사했다. 실제로 감사할 만했다.
창이나 문에 난 큰 틈으로 신선한 공기가 조금 들어와 목숨을 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유행 때문에 자기 몸의 더 나은 신호를 알면서도 자연의 법칙을 어긴다.
살아 있는 것 가운데 본래 담배를 좋아하는 것은 해충밖에 없다. 그런데 일부러 부자연스러운 식욕을 훈련하고 타고난 거부감을 이겨내 마침내 담배를 사랑하게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이 해롭고 지저분한 잡초를 붙잡은 것이 아니라 그 잡초가 사람을 단단히 붙잡는다.
결혼한 남자들은 카펫과 바닥, 때로는 아내에게까지 담배 침을 뱉으며 돌아다닌다. 술 취한 사람처럼 아내를 집 밖으로 걷어차지는 않지만, 아내는 남편이 집 밖에 있기를 바랄 때가 많을 것이다.
더 위험한 점은 이런 인공적인 욕망도 질투처럼 먹을수록 커진다는 사실이다. 몸에 해로운 것을 사랑하게 되면 해롭지 않은 것을 향한 자연스러운 욕구보다 더 강한 갈망이 생긴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인공적인 습관은 천성보다 더 강해진다.
오랫동안 씹는담배를 입에 넣고 산 사람을 보라. 담배 덩어리를 향한 욕망은 어떤 음식에 대한 욕망보다 강하다. 쇠고기는 끊어도 담배는 못 끊는다.
어린 소년들은 자신이 아직 어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쉬워한다. 소년으로 잠들어 남자로 깨어나고 싶어서 어른의 나쁜 버릇을 따라 한다.
토미와 조니는 아버지나 삼촌이 파이프를 피우는 모습을 본다.
“나도 저걸 할 수 있으면 어른이 될 텐데. 존 삼촌이 파이프를 두고 나갔으니 한번 해보자.”
성냥을 켜고 연기를 빨아들인다.
“우리는 담배 피우는 법을 배울 거야. 조니, 맛있니?”
소년은 침울한 얼굴로 대답한다.
“별로. 쓰기만 해.”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창백해져도 소년은 유행의 제단에 계속 제물을 바친다. 끝까지 버틴 끝에 타고난 식욕을 굴복시키고 후천적인 취향의 희생자가 된다.
나는 책에서 읽은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에 시가를 열 개에서 열다섯 개까지 피워본 사람으로서 그 영향을 직접 겪었다. 지난 14년 동안 담배를 쓰지 않았고 앞으로도 쓰지 않을 것이다.
많이 피울수록 더 피우고 싶어진다. 마지막 시가 한 개비가 다음 시가를 향한 욕망을 일으키고 그 일이 끝없이 반복된다.
씹는담배를 쓰는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담배 덩어리를 입에 넣고 하루 종일 둔다. 새것으로 갈거나 밥을 먹을 때만 뺀다.
물론 낮과 저녁 사이사이 술을 마실 때도 손에 잠깐 쥐었다가 다시 입에 넣는다. 술을 향한 욕망이 담배보다도 강하다는 증거다.
그런 사람을 시골집에 초대해 포도 온실과 과수원과 아름다운 정원을 보여준다고 해보자.
“친구, 여기 정말 맛있는 사과와 배, 복숭아와 살구가 있네. 스페인과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들여왔지. 이 포도를 좀 보게. 잘 익은 과일만큼 맛있고 건강한 것도 없으니 마음껏 들게.”
그는 소중한 담배 덩어리를 혀 밑에서 굴리며 대답한다.
“고맙지만 됐네. 입에 담배가 있어서.”
해로운 담배에 미각이 마비되어 과일을 향한 섬세하고도 부러운 감각을 상당 부분 잃은 것이다.
사람은 이토록 비싸고 쓸모없고 해로운 습관에 빠질 수 있다.
나도 담배를 피우다 사시나무 잎처럼 떨었다. 피가 머리로 몰리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심장병에 걸린 줄 알고 겁에 질려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의사는 담배를 끊으라고 말했다. 건강을 해치고 큰돈을 쓸 뿐 아니라 나쁜 본보기까지 되고 있었다. 나는 의사의 말을 따랐다.
15센트짜리 시가나 해포석 파이프를 입에 문 젊은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멋져 보인 적은 세상에 한 번도 없다.
이 모든 말은 술에 열 배 더 강하게 적용된다.
돈을 벌려면 머리가 맑아야 한다. 둘과 둘을 더하면 넷이라는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계획을 세울 때는 생각하고 내다봐야 하며, 사업의 모든 세부와 안팎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사업 계획을 짤 두뇌와 실행을 이끌 이성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지능을 아무리 많이 타고났어도 술에 머리가 흐려지고 판단이 비뚤어지면 사업을 제대로 이끌 수 없다.
친구와 ‘사교적인 한 잔’을 기울이는 사이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가 얼마나 많이 지나갔는가.
마시는 동안만 자신을 부자로 느끼게 하는 ‘신경 안정제’의 영향 아래 얼마나 어리석은 거래가 맺어졌는가.
술이 몸을 늘어지게 만들어 사업에 꼭 필요한 힘을 없애는 바람에 중요한 기회를 내일로 미뤘다가 영원히 놓친 일이 얼마나 많은가.
참으로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자”다.
술을 음료로 마시는 일은 당시 중국인의 아편 흡연만큼이나 어리석은 집착이며, 사업가의 성공에도 똑같이 해롭다. 철학과 종교와 상식 어느 쪽에서도 변호할 수 없는 악이다.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다른 악의 부모이기도 하다.
2026년 스타트업에서 읽기
바넘의 첫 원칙은 소득보다 지출을 작게 유지하라는 단순한 말이다. 더 쓸모 있는 대목은 푼돈을 줄이는 동안 큰 비용을 놓치는 ‘가짜 절약’을 구분한 데 있다. 서버 비용 몇 천 원을 아끼느라 팀의 몇 시간을 잃는다면 절약이 아니다.
건강·담배·술에 관한 장문의 훈계에는 19세기 미국의 도덕주의와 당시의 의학 지식이 섞여 있다. 오늘의 건강 문제와 의존증은 의지의 결함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다만 맑은 판단과 지속할 수 있는 몸이 사업의 기반이라는 요지는 남는다. 회사의 현금흐름뿐 아니라 창업자와 팀의 회복 가능성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