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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ATIONS 009 · 13

11장 어려운 책을 읽는 법

소설은 이 장에서 말하는 ‘진지한 독서’에서 제외하겠다.

자기계발을 결심하고 일주일에 세 번, 90분씩 들여 찰스 디킨스의 모든 작품을 공부하려던 사람이라면 계획을 바꾸는 편이 좋다.

소설이 진지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세계의 위대한 문학 가운데 상당수는 산문 소설이다. 나쁜 소설은 애초에 읽지 말아야 하고, 좋은 소설은 독자에게 상당한 정신적 노력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러디스의 소설에서도 어려운 것은 잘 쓰지 못한 대목뿐이다.

좋은 소설은 물살을 타고 내려가는 작은 배처럼 독자를 앞으로 밀어낸다. 끝에 닿으면 숨은 찰지 몰라도 지치지는 않는다. 가장 뛰어난 소설일수록 읽는 힘은 덜 든다.

그런데 정신을 기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힘이 든다는 감각이다. 어렵지만 해내고 싶은 한쪽 마음과 슬쩍 피하고 싶은 다른 쪽 마음이 맞서는 감각 말이다. 소설을 마주해서는 좀처럼 그런 긴장이 생기지 않는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려고 이를 악물지는 않는다.

그러니 소설을 읽기는 하되 앞에서 마련한 90분을 소설에 쓰지는 말라.

상상력을 요구하는 시는 소설보다 훨씬 큰 정신적 노력을 요구한다. 아마 모든 문학 형식 가운데 가장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시는 가장 높은 문학 형식이다. 가장 높은 즐거움을 주고 가장 높은 지혜를 가르친다. 한마디로 견줄 것이 없다.

대다수 사람이 시를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슬프게 의식하면서도 나는 이렇게 말한다.

훌륭한 사람 가운데도 밀턴의 《실낙원》을 읽는 일과 한낮의 트래펄가 광장을 거친 자루옷을 입고 무릎으로 도는 일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기꺼이 사람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쪽을 택할 이가 많다고 확신한다.

그래도 나는 친구와 적 모두에게 무엇보다 먼저 시를 읽으라고 권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시가 당신에게 ‘봉인된 책’이라면 윌리엄 해즐릿의 유명한 에세이 〈시 일반의 본질에 관하여〉부터 읽어보라. 영어로 쓰인 같은 종류의 글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

그 글을 읽고도 시가 중세의 고문 도구나 미친 코끼리, 혹은 저절로 발사되어 마흔 걸음 밖의 사람을 죽이는 총과 같은 것이라고 오해할 사람은 없다. 그 에세이를 다 읽은 뒤 다음 식사 전까지 시 한 편이라도 급히 읽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의 정신 상태는 상상하기 어렵다.

해즐릿의 글에 마음이 움직였다면 서사가 분명한 시부터 시작하기를 권한다.

조지 엘리엇, 브론테 자매, 심지어 제인 오스틴의 어느 작품보다도 더 훌륭한, 한 영국 여성이 쓴 소설이 있다. 아마 당신은 아직 읽지 않았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오로라 리》다.

마침 운문으로 쓰였고 진정으로 훌륭한 시가 상당히 들어 있다. 죽을 만큼 힘들더라도 그 책을 끝까지 읽겠다고 결심하라.

훌륭한 시라는 사실은 잊어라. 이야기와 사회적 사상을 따라가려고 읽으면 된다. 다 읽고 나서는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어보라. 그래도 여전히 시가 싫은가?

나는 《오로라 리》를 읽고서야 자신이 시를 싫어한다고 여긴 것이 완전한 착각이었음을 깨달은 사람을 여럿 보았다.

물론 해즐릿을 읽고, 그의 안내에 따라 이런 실험까지 해본 뒤에도 자신 안에 시를 거부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확신한다면 역사나 철학으로 만족해야 한다. 아쉽기는 해도 위로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를 《실낙원》과 같은 날에 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단히 아름다운 작품이다. 허버트 스펜서의 《제1원리》는 시가 내세우는 주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인간 정신이 낳은 가장 장엄한 성취가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되기를 거부한다.

정신을 쓰는 훈련을 막 시작한 사람에게 이 두 책이 알맞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보통의 지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1년 동안 꾸준히 읽은 뒤 역사나 철학의 최고 걸작에 도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걸작의 커다란 장점은 놀라울 만큼 명료하다는 데 있다.

처음 읽을 특정한 책을 여기서 추천하지는 않겠다. 주어진 지면으로는 헛된 시도가 될 것이다. 대신 어느 정도 중요한 일반 원칙 두 가지를 제안하겠다.

첫째, 노력의 방향과 범위를 정하라.

한정된 시대, 한정된 주제, 혹은 한 명의 저자를 고른다.

“나는 프랑스혁명에 관해, 철도의 발달에 관해, 혹은 존 키츠의 작품에 관해 얼마쯤은 알겠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게 하라. 미리 기간을 정하고 그동안에는 선택한 대상에만 집중한다. 한 분야를 깊이 아는 데서 오는 즐거움은 크다.

둘째, 읽기만 하지 말고 생각하라.

계속 읽기는 하지만 별다른 도움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을 나는 안다. 그 시간에 빵에 버터를 바르는 편이 나았을 정도다. 어떤 사람이 술에 빠지듯 그들은 독서에 빠진다.

문학이라는 여러 지방을 자동차로 질주하면서 오직 움직이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는다. 1년에 몇 권을 읽었는지 자랑스럽게 말해줄 것이다.

읽은 내용을 놓고 적어도 45분 동안 세심하고 고된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저녁의 90분은 거의 낭비다. 처음에는 생각하는 일이 지독하게 따분할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읽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뜻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목적지는 잊고 주변 풍경만 바라보라.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아마 가장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당신은 언덕 위의 아름다운 도시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2026년 스타트업에서 읽기

많이 읽었다는 기록은 지식의 증거가 아니다. 한 권에서 얻은 생각을 자기 언어로 설명하고 실제 결정 하나에 써먹을 수 있어야 비로소 읽은 것이다.

90분을 확보했다면 90분 내내 페이지를 넘기지 말라. 절반은 읽고 절반은 메모하거나 반박하고 적용해 보라. 주제를 좁혀 몇 주간 연속해서 파고들면 서로 떨어져 있던 지식이 연결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