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은 책 앞에 놓이는 게 당연하지만, 이 머리말만큼은 책을 다 읽고 나서 읽는 편이 좋다.
이 작은 책을 두고 수많은 편지를 받았다. 책만큼 긴 서평도 여럿 나왔다. 그런데 반대 의견은 거의 없었다. 더러는 문체가 너무 가볍다고 지적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조금도 경박하지 않아서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다. 더 무거운 비판이 없었다면 이 책에는 흠이 전혀 없다고 믿을 뻔했다!
하지만 신문 서평이 아니라 진지한 독자들의 편지에서 더 중요한 비판이 나왔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본문 43쪽을 보면 나도 이런 반발을 예상하고 걱정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독자들이 문제 삼은 문장은 이렇다.
“대부분의 경우 평범한 직장인은 자기 일에 열정을 느끼지 않는다. 잘해야 싫어하지 않는 정도다. 마지못해, 할 수 있는 한 늦게 업무를 시작하고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한 일찍 끝낸다. 일하는 동안에도 그의 엔진은 좀처럼 최대 마력을 내지 않는다.”
편지를 보낸 이들은 진심을 다해 반박했다. 높은 지위에 있거나 앞날이 밝은 사람만이 아니라, 형편이 훨씬 나아질 희망도 없는 평범한 직원 가운데서도 자기 일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을 피하지 않고, 최대한 늦게 출근해서 최대한 일찍 퇴근하려 하지도 않는다. 하루 일에 온 힘을 쏟으며 저녁이면 정말로 지친다.
믿는다. 알고 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나 역시 런던과 지방에서 오랫동안 말단 직원으로 일했다. 동료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자기 일에 진실한 열정을 보였고, 일하는 동안 자신이 낼 수 있는 힘을 다해 정말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았다.
그래도 이 행복한 사람들(아마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이 다수라고는 믿지 않는다. 다수에 가깝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꿈과 이상을 지닌 성실하고 평범한 직장인 대다수는 저녁마다 정말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생계를 버는 일에는 양심이 허락하는 한 많은 힘이 아니라 적은 힘만 쏟는다. 직업은 그들에게 흥미보다 지루함을 준다.
그렇다고 열심히 일하는 소수를 완전히 외면한 것은 내 잘못이다. 그들도 충분히 중요하다. 한 독자가 이들이 겪는 문제를 일상적인 문장 하나로 정확히 짚었다.
“저도 누구 못지않게 ‘정해진 일과 너머의 일’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녁 6시 30분에 집에 도착하면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팔팔하지 않다는 말씀은 드려야겠습니다.”
매일의 업무에 열정과 활기를 다 쏟는 소수의 사정은 근무 시간을 건성으로 보내는 다수보다 훨씬 낫다. 그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조언이 덜 필요하다. 적어도 여덟 시간쯤 되는 근무 시간에는 제대로 살아 있다. 엔진이 최대 마력을 내고 있다. 나머지 여덟 시간을 서투르게 꾸리거나 흘려보낼 수는 있다. 그래도 하루 여덟 시간을 낭비하는 편이 열여섯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낫다. 조금이라도 산 삶이 한 번도 살지 않은 삶보다 낫다.
진짜 비극은 사무실 안에서도 밖에서도 어떤 노력에도 마음을 다잡지 않는 사람의 비극이다. 이 책은 주로 그 사람을 향해 썼다.
“하지만 제 일과는 그 사람보다 훨씬 빡빡해도 저 역시 그 너머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조금은 살고 있지만 더 살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정해진 근무를 마친 뒤에 하루치 일을 또 할 수는 없습니다.” 더 운 좋은 직장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미 삶에 관심을 품은 사람일수록 이 책에 더 강하게 끌리리라는 사실을 내가 미리 알았어야 했다. 삶을 맛본 사람이 늘 더 많은 삶을 원한다. 반대로 침대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사람을 깨우기가 가장 어렵다.
열심히 일하는 독자여, 당신의 생업이 너무 고되어 뒤의 제안을 모두 따르지는 못한다고 해보자. 그래도 몇 가지는 쓸 수 있다. 저녁 퇴근길을 활용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아침 출근길에 관한 제안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실천 가능하다.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이어지는 약 40시간도 다른 사람에게만큼 당신에게도 주어진다. 피로가 쌓여 그 시간 내내 최대 마력을 쓸 수는 없어도 말이다. 여기에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찾아오는 저녁의 중요한 부분이 남는다.
정해진 일과 밖에서 무엇이든 하기에는 밤이면 너무 지친다고 당신은 잘라 말한다. 나도 잘라 답하겠다. 평소의 하루 일과가 그렇게까지 사람을 소진시킨다면 삶의 균형이 잘못됐으며 바로잡아야 한다. 생업이 한 사람의 힘을 전부 독차지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가지 꾀를 내면 된다. 생업에 대한 열정이 힘을 다 가져가기 전에, 엔진을 일과 밖의 무언가에 먼저 쓰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라.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밤에 더 일찍 자면 집안 전체의 생활이 흔들린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꾸준히 일찍 일어났더니 잠이 부족해진다면 곧 더 일찍 잠드는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다만 내 생각에는 일찍 일어난다고 반드시 잠이 부족해지지는 않는다. 해가 갈수록 잠은 어느 정도 습관과 느슨함의 문제라는 확신이 강해진다. 많은 사람은 달리 할 일을 찾지 못해서 그만큼 오래 잔다고 생각한다. 매일 당신의 거리로 요란하게 달려오는 카터 패터슨 운송 마차를 모는 힘세고 건강한 남자는 몇 시간이나 잘 것 같은가?
이 문제를 의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런던의 크고 번창한 교외에서 당신과 나 같은 사람들을 상대로 24년 동안 진료한 의사였다.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고 답도 짧았다.
“대부분은 너무 많이 자서 멍청해집니다.”
그는 열 명 중 아홉 명은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면 더 건강하고 즐겁게 살 거라고 덧붙였다. 다른 의사들도 같은 판단에 동의했다. 물론 성장기의 청소년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한 시간, 한 시간 반, 필요하면 두 시간 일찍 일어나라. 꼭 그래야 한다면 가능한 날에는 더 일찍 잠자리에 들어라. 정해진 일과 밖의 일을 할 때는 아침 한 시간이 저녁 두 시간만큼 값질 것이다.
“하지만 뭔가 먹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고, 그 시간에는 하인도 없습니다.” 당신은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보게, 냄비까지 딸린 훌륭한 알코올램프를 1실링도 안 되는 값에 살 수 있는 시대다. 가장 중요한 행복을 다른 사람이 바로 도와줄지에 맡길 셈인가?
누구든 집안일을 돕는 사람에게 전날 밤 부탁하면 된다. 알맞은 곳에 쟁반을 놓고 그 위에 비스킷 두 개, 찻잔과 받침, 성냥, 알코올램프를 올려 달라고 하라. 램프 위에는 냄비를 놓고, 냄비 뚜껑은 뒤집어서 얹는다. 그 위에 찻잎을 조금 넣은 작은 찻주전자를 올리면 된다.
아침에는 성냥 하나만 켜면 된다. 3분 뒤 물이 끓는다. 이미 데워진 찻주전자에 물을 붓고 다시 3분을 기다리면 차가 우러난다. 차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이런 세부가 하찮아 보이겠지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평소와 다른 시간에 차 한 잔을 마련할 수 있느냐가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지혜롭게 조율하는 일을 좌우할지도 모른다.
아널드 베넷
2026년 스타트업에서 읽기
베넷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일을 얹으려는 것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생업이 하루의 힘을 모두 빼앗는다면 먼저 일의 경계와 회복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
수면을 습관이나 ‘느슨함’으로 보는 대목은 오늘의 건강 상식으로 그대로 따르지 말아야 한다. 일찍 일어나려면 먼저 충분히 잘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피로가 이어지면 계획보다 회복을 앞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