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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ATIONS 009 · 07

5장 테니스와 불멸의 영혼

아침 열차에 신문을 들고 탄다. 그리고 차분하고 위엄 있게 신문에 자신을 맡긴다.

서두르지 않는다. 적어도 30분 동안은 방해받지 않을 것을 안다. 바깥쪽 지면의 선박과 노래 광고 위로 시선이 한가롭게 머문다. 꼭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124시간인 행성에서 온 사람 같다. 시간 부자의 태도다.

나는 열정적인 신문 독자다. 영국 일간지 다섯 종과 프랑스 일간지 두 종을 읽는다. 몇 종인지 신문 판매상만 알 만큼 많은 주간지도 꼬박꼬박 읽는다.

이 사실을 밝히는 이유가 있다. 아침 열차에서 신문 읽는 일을 반대한다고 했을 때 신문에 편견을 품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다.

신문은 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읽는 매체다. 내 하루 계획에는 신문을 위해 따로 떼어놓은 시간이 없다. 틈이 날 때 읽는다. 그래도 읽기는 한다.

하지만 경이로운 고독의 시간 30분이나 40분을 통째로 신문에 내주는 일은 참을 수 없다. 말없이 자기 안으로 들어가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로 가득한 객차만큼 완벽하게 혼자가 될 수 있는 곳도 드물다.

그 귀한 시간의 진주를 동양의 군주처럼 흥청망청 흩뿌리게 둘 수는 없다. 당신은 시간의 샤가 아니다. 당신에게도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삼가 알려드린다.

열차에서는 신문을 읽지 마라!

이렇게 해서 나는 이미 약 45분을 ‘저축’했다.

이제 사무실에 도착했다. 오후 6시까지는 당신을 내버려두겠다. 한낮에 명목상 한 시간, 실제로는 한 시간 반쯤 되는 휴식이 있고 그 절반도 식사에 쓰지 않는다는 사실은 안다. 그 시간은 전부 원하는 대로 쓰시라. 그때 신문을 읽어도 된다.

사무실에서 나오는 순간 다시 만나자.

당신은 창백하고 지쳤다. 적어도 아내는 얼굴이 창백하다고 말하고, 당신은 피곤하다는 사실을 넌지시 이해시킨다. 집으로 가는 동안 피곤한 기분을 차근차근 끌어올렸다. 특히 겨울이면 그 피로감은 도덕적이고 우울한 구름처럼 런던의 거대한 교외 위에 무겁게 걸린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먹지는 않는다. 한 시간쯤 지나면 몸을 일으켜 영양분을 조금 섭취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온다. 그래서 먹는다.

그다음에는 진지하게 담배를 피운다. 친구를 만나고, 이것저것 만지작거리고, 카드놀이를 한다. 책과 살짝 시시덕거리다가 노년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린다. 산책하고 피아노를 어루만진다….

세상에! 벌써 11시 15분이다.

이제 잠자리에 들어갈 생각을 하는 데 꼬박 40분을 쓴다. 정말 좋은 위스키와 아는 사이일 수도 있다.

마침내 하루의 일에 완전히 지쳐 침대로 간다. 사무실을 나온 뒤 여섯 시간, 어쩌면 그 이상이 흘렀다. 꿈처럼 사라지고 마술처럼 사라졌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설명할 수 없게 사라졌다.

꽤 흔한 사례다.

하지만 당신은 이렇게 말한다.

“말이야 쉽죠. 사람은 실제로 피곤합니다. 친구도 만나야 하고요. 늘 긴장한 채 살 수는 없습니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극장에 가기로 한 날, 특히 아름다운 여성과 함께 가기로 한 날에는 어떻게 되는가?

교외로 급히 돌아와 온 힘을 다해 멋진 옷을 차려입고, 다시 열차를 타고 시내로 달려간다. 네 시간, 아니 다섯 시간 동안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상대를 집에 데려다주고 자신도 집으로 돌아온다.

잠자리에 들 ‘생각’을 하느라 45분을 보내지 않는다. 바로 잔다. 친구도 피로도 똑같이 잊었다. 그날 저녁은 놀라울 만큼 길게, 어쩌면 너무 짧게 느껴졌다.

아마추어 오페라 협회의 합창단에서 노래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석 달 동안 격일로 두 시간씩 맹연습했던 때도 기억하는가?

저녁에 기다리는 뚜렷한 일이 있고, 그 일에 에너지를 모두 쓸 예정이면 그 생각만으로 하루 전체가 빛나고 생기가 더해진다. 부정할 수 있는가?

내 제안은 이렇다.

오후 6시에 사실을 똑바로 보고, 자신이 피곤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사실 피곤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식사가 저녁 한가운데를 가르지 않도록 시간을 꾸려라. 그러면 적어도 세 시간이 끊기지 않고 남는다.

날마다 저녁 세 시간을 정신 에너지를 쓰는 데 바치라는 말은 아니다. 처음에는 이틀에 한 번씩 90분만 중요하고 이어지는 정신 훈련에 써도 된다.

그래도 사흘 저녁이 남는다. 친구와 브리지, 테니스, 집안의 소소한 일, 가벼운 독서, 파이프, 정원일, 빈둥거리기와 경품 응모에 쓸 수 있다.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월요일 오전 10시까지 무려 44시간도 남아 있다.

꾸준히 한다면 머지않아 나흘, 어쩌면 닷새 저녁을 진짜로 살아 있기 위한 한 가지 노력에 계속 쓰고 싶어질 것이다.

밤 11시 15분마다 “이제 잠자리에 들 생각을 해야겠군”이라고 중얼거리는 버릇도 사라진다. 침실 문을 열기 40분 전부터 잠자리에 들기 시작하는 사람은 지루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살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다만 처음에는 일주일에 세 번, 밤의 90분을 일주일 1만 80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간으로 대해야 한다. 연극 연습이나 테니스 경기만큼 신성하게 지켜야 한다.

“미안해, 친구. 테니스 클럽에 가야 해서 못 만나겠어”가 아니라 이렇게 말해야 한다.

“미안해. 해야 할 공부가 있어.”

이 말이 몹시 어렵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테니스가 불멸의 영혼보다 훨씬 급해 보이니까.


2026년 스타트업에서 읽기

휴식과 취미는 하찮지 않다. 베넷이 묻는 것은 선택하지 않은 채 습관대로 시간을 흘려보내는가이다. 쉬기로 했다면 죄책감 없이 쉬고, 배우기로 했다면 작게라도 집중하자.

피곤하지 않다고 단정하는 대목 역시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 진짜 피로와 막연한 관성을 구분하되, 몸이 보내는 신호를 계획의 적으로 취급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