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어디에 쓰는지 현실 그대로 살펴보려면 한 사람의 사례를 골라야 한다. 한 번에 하나밖에 다룰 수 없고, 그것이 ‘평균적인 사례’일 수는 없다. 평균적인 사람이 존재하지 않듯 평균적인 사례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도 사정도 저마다 다르다.
그래도 사실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평균에 가까운 사람을 고를 수는 있다.
런던에 살며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근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아침저녁으로 집 문에서 사무실 문까지 가는 데 각각 50분이 걸린다. 이보다 오래 일해야 생계를 꾸리는 사람도 있지만 덜 일하는 사람도 있다.
다행히 여기서는 돈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목적에서는 주급 1파운드를 받는 직원과 칼턴 하우스 테라스의 백만장자가 정확히 같은 형편이다.
이 평범한 직장인이 하루를 대하는 태도에는 크고 근본적인 실수가 있다. 그 실수 때문에 에너지와 관심의 3분의 2가 약해지고 망가진다.
대부분은 자기 일에 열정을 느끼지 않는다. 잘해야 싫어하지 않는 정도다. 마지못해, 할 수 있는 한 늦게 업무를 시작하고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한 일찍 끝낸다. 일하는 동안에도 엔진은 좀처럼 최대 마력을 내지 않는다.
이 문장 때문에 시내 직장인을 모욕했다며 화난 독자에게 공격받을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런던 금융가를 꽤 속속들이 알며, 한 말을 거두지 않겠다.
그런데도 그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를 ‘하루’라고 여긴다. 그전의 열 시간은 머리말, 그 뒤의 여섯 시간은 맺음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의식하지 못하는 태도일지라도, 이렇게 생각하면 나머지 열여섯 시간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죽는다. 그 시간을 완전히 낭비하지 않더라도 중요한 시간으로 세지 않는다. 그저 여백으로 본다.
이런 태도는 논리에도 맞지 않고 건강하지도 않다. 그는 그저 ‘견뎌내서’ ‘끝내고’ 싶은 시간과 활동을 삶의 중심에 놓는다.
그다지 뜨거운 열정을 품지도 않은 3분의 1을 위해 나머지 3분의 2를 종속시킨다면 어떻게 충만하게 살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온전하고 충만하게 살고 싶다면 마음속에 ‘하루 안의 하루’를 만들어야 한다. 큰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상자처럼, 이 안쪽 하루는 오후 6시에 시작해서 다음 날 오전 10시에 끝난다.
열여섯 시간짜리 하루다. 이 시간 동안 그가 할 일은 몸과 정신을 기르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뿐이다. 그는 자유롭다. 임금 노동자가 아니며 돈 걱정에 매여 있지도 않다. 개인 수입으로 사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이런 태도를 가져야 한다. 태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 사람이 삶에서 거두는 성공은 여기에 달렸다. 죽은 뒤 유산 관리인이 얼마의 상속세를 낼지보다 훨씬 중요한 성공 말이다.
뭐라고? 이 열여섯 시간에 힘을 온전히 쓰면 여덟 시간의 업무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그렇지 않다. 오히려 분명히 올라간다.
우리의 평범한 직장인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정신이 힘든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신은 팔이나 다리처럼 지치지 않는다. 잠을 잘 때를 빼면 휴식보다 변화를 원한다.
이제 그가 온전히 소유한 열여섯 시간을 실제로 어떻게 쓰는지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살펴보자.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행동부터 짚겠다. 숲을 개간한 이주민이 빈 땅에 씨를 뿌리듯, 그렇게 비운 시간을 채울 제안은 잠시 뒤로 미룬다.
공평하게 말하면 오전 9시 10분에 집을 나설 때까지는 시간을 거의 낭비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집에서 그는 9시에 일어나 9시 7분부터 9시 9분 30초까지 아침을 먹고 뛰쳐나간다.
하지만 현관문을 쾅 닫는 순간, 지칠 줄 모르는 정신은 놀기 시작한다.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로 역까지 걷는다. 도착하면 대개 열차를 기다려야 한다.
매일 아침 수백 곳의 교외 역에서 남자들이 승강장을 태연히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철도회사는 돈보다 귀한 시간을 부끄러움도 없이 빼앗는다. 날마다 수십만 시간이 그렇게 사라진다. 우리의 직장인은 시간을 너무 하찮게 여긴 나머지, 손실을 막을 아주 쉬운 준비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에게는 매일 쓸 수 있는 단단한 시간 동전 한 닢이 있다. 1파운드 금화라고 하자. 잔돈으로 바꿔야 하는데, 바꾸는 과정에서 큰 손해를 보고도 만족한다.
표를 팔면서 철도회사가 이렇게 말한다고 상상해 보자.
“1파운드를 잔돈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수수료는 1.5펜스입니다.”
우리 직장인은 뭐라고 외칠까? 그런데 철도회사가 하루 두 번씩 5분을 빼앗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너무 사소한 일을 다룬다고 말할 것이다. 맞다. 사소한 일을 다루고 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자, 이제 신문을 사서 열차에 타주시겠는가?
2026년 스타트업에서 읽기
퇴근 뒤 시간을 찌꺼기처럼 여기면 원하는 삶은 늘 다음 날로 밀린다. 일과 개인 생활을 경쟁시키기보다 둘 다 회복 가능한 리듬 안에 놓아야 한다.
베넷의 “정신은 지치지 않는다”는 단정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 인지 노동도 사람을 피로하게 한다. 여기서 건질 것은 휴식을 없애라는 명령이 아니라 무심코 흘리는 시간과 의식적으로 쉬는 시간을 구분하라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