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열기

FOUNDATIONS 009 · 10

8장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마음을 한곳에 두는 연습에는 날마다 적어도 30분을 써야 한다. 그래도 이것은 피아노의 음계 연습 같은 준비에 불과하다.

복잡한 몸과 마음 가운데 가장 제멋대로인 부분을 다룰 힘을 얻었다면 이제 그 힘을 일에 써야 한다. 복종하는 마음을 가졌는데도 그 복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끝까지 얻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길고 기초적인 공부 과정이 필요하다.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처음부터 그랬다. 어느 시대의 분별 있는 사람에게 물어도 같은 답을 한다.

문학도, 다른 예술도, 역사도, 과학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공부해야 한다.

사람아, 너 자신을 알라.

너무 낡은 문장이라 쓰면서 얼굴이 붉어진다. 그래도 써야 한다. 여전히 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아니, 부끄러워한 일을 부끄러워하며 방금 말을 거두겠다.

사람아, 너 자신을 알라. 큰 소리로 말하겠다.

누구나 아는 문장이고 누구나 그 가치를 인정하지만 가장 지혜로운 소수만 실천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오늘날 선의를 지닌 평범한 사람의 삶에 무엇보다 부족한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로 중요한 일을 돌아보지 않는다. 자신의 행복,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삶이 무엇을 주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이성이 행동을 결정하는 데 얼마나 관여하는지, 혹은 관여하지 않는지 살피지 않는다. 원칙과 행동이 어떤 관계인지도 보지 않는다.

당신은 행복을 찾고 있지 않은가?

찾았는가?

아마 아직 찾지 못했을 것이다. 행복은 얻을 수 없다고 이미 믿게 됐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행복에 이른 사람들은 있다. 그들은 육체나 정신의 쾌락을 얻는 데서 행복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성을 기르고 행동을 원칙에 맞추는 데서 행복을 찾았다.

감히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인정하면서 하루 가운데 단 한 부분도 자기 이성과 원칙과 행동을 의식적으로 살피는 데 쓰지 않는다면, 원하는 것을 얻는 데 꼭 필요한 한 가지 행동을 줄곧 하지 않는다고 인정하는 셈이다.

이제 얼굴을 붉혀야 할 사람은 나인가, 당신인가?

내 원칙을 당신에게 억지로 밀어붙일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서는 당신이 무슨 원칙을 지녔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도둑질이 옳다고 믿게 하는 원칙일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주장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행동이 원칙과 제대로 맞지 않는 삶은 어리석다. 행동을 원칙에 맞추려면 날마다 살펴보고 생각하며 결심해야 한다.

도둑이 늘 슬픈 이유는 자신의 원칙이 도둑질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도둑질이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감옥에서의 강제노동도 행복한 몇 해에 불과할 것이다. 순교자가 행복한 까닭도 행동과 원칙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행동을 만들고 원칙을 세우는 데도 관여하는 이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삶에서 훨씬 작은 몫을 맡는다. 우리는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이성보다 본능에 훨씬 더 많이 움직인다.

돌아보지 않을수록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도 어려워진다.

다음에 스테이크가 너무 익었다는 이유로 종업원에게 화가 날 때, 이성을 마음의 회의실로 불러 상의해 보라.

이성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종업원이 스테이크를 구운 게 아니고 조리 상태를 통제할 수도 없었다. 설령 그에게만 잘못이 있어도 화를 내서 좋아질 것은 없다. 품위를 잃고 분별 있는 사람의 눈에 바보처럼 보이며 종업원의 기분만 상하게 할 뿐이다. 스테이크에는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

무료로 열리는 이성 회의의 결과는 분명하다.

다음에 스테이크가 또 지나치게 익어 나오면 종업원을 같은 사람으로 대한다. 친절한 마음으로 침착함을 지키면서 새 스테이크를 정중히 요구한다.

얻는 것은 분명하고 단단하다.

원칙을 만들거나 고치고 행동으로 옮길 때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 권에 6펜스 이상이면 살 수 있다.

앞 장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에픽테토스를 말했다. 더 널리 알려진 책도 바로 떠오를 것이다. 파스칼, 라브뤼예르, 에머슨도 권할 수 있다. 나는 여행할 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두고 다니지 않는다.

책은 값지다.

그래도 최근에 한 일과 곧 하려는 일을 날마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살피는 일을 독서가 대신할 수는 없다. 보기 불편하더라도 자기 얼굴을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이 중요한 일은 언제 해야 할까?

저녁 퇴근길의 고독이 알맞아 보인다. 하루치 생계를 번 수고 뒤에는 자연스럽게 돌아보는 마음이 따라온다.

물론 이렇게 기초적이고 중요한 의무를 돌보기보다 신문을 읽고 싶다면(저녁 식사를 기다리며 읽어도 아무 차이가 없지만) 더는 할 말이 없다.

다만 하루 중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한다.

이제 저녁 시간으로 들어가자.


2026년 스타트업에서 읽기

회고는 자책이 아니다. 어떤 결정이 좋았고 무엇이 반복해서 시간을 빼앗았는지 보는 일이다. 주간 회고에는 평가보다 다음 주에 바꿀 행동 하나를 남겨라.

원칙과 행동의 불일치를 볼 때 개인의 결함만 찾지 말자. 목표가 서로 충돌하거나 권한이 없는 구조라면 시스템도 함께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