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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ATIONS 019 · 11

10부 기술 30–32: 권위와 낙인을 빌려라

기술 30. 이성 대신 권위에 호소하라

권위에 대한 논증이다. 이유를 제시하는 대신 권위에 호소하고, 상대의 지식 수준에 맞는 권위를 골라 쓴다.

세네카의 말처럼 사람은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믿는 쪽을 선호한다. 상대가 존중하는 권위가 우리 편이라면 일은 쉬워진다. 상대의 능력과 지식이 제한될수록 그에게 먹히는 권위의 수는 많아진다. 능력과 지식이 뛰어나면 인정하는 권위는 아주 적고, 거의 없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도 자기가 거의 모르는 과학·예술·기술 분야의 전문가 권위는 받아들일지 모른다. 그마저 의심스럽게 볼 것이다. 반대로 평범한 사람은 온갖 전문가를 깊이 존경한다. 직업인이 그 일 자체보다 그 일로 버는 돈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가르치는 사람이 자기 분야를 철저히 아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도 모른다. 제대로 연구하다 보면 가르칠 시간이 거의 남지 않는다는 것이 쇼펜하우어의 독설이다.

대중에게 먹히는 권위는 아주 많다. 꼭 맞는 권위가 없다면 맞는 것처럼 보이는 권위를 고르면 된다. 다른 의미나 다른 상황에서 누군가 한 말을 인용할 수 있다.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권위일수록 오히려 높이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배우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어나 라틴어 한 구절에 유난한 경외심을 품는다.

필요하다면 권위자의 말을 비틀 뿐 아니라 거짓으로 만들거나, 아예 자기가 지어낸 말을 인용할 수도 있다. 상대에게는 대개 확인할 책이 없고, 책이 있어도 활용하지 못한다.

가장 훌륭한 사례는 어느 프랑스인 사제의 이야기다. 다른 시민들처럼 자기 집 앞길을 포장하라는 의무를 피하려고 성서의 말이라며 라틴어를 인용했다.

Paveant illi, ego non pavebo.
저들이 포장하게 하라. 나는 포장하지 않겠다.

말장난으로 지어낸 구절이었지만 시 당국자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널리 퍼진 편견도 권위로 쓸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믿는 것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했듯, 대다수 사람은 널리 믿는 견해를 사실처럼 받아들인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견해라도 그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믿게 만들면 사람들은 곧 껴안는다.

행동이 그렇듯 생각도 본보기를 따른다. 사람들은 앞선 양을 따라가는 양 떼와 같다. 생각하느니 차라리 죽으려 한다. 보편적 의견이 사람들에게 그토록 큰 무게를 지닌다는 것은 이상하다. 자기 경험만 살펴도 그 의견이 아무 생각 없이 남을 흉내 내는 과정에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하므로 그런 경험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플라톤의 말처럼 “대중은 온갖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하나 찾아내려면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진지하게 말하면 어떤 의견이 널리 퍼졌다는 사실은 그것이 옳다는 증거도, 옳을 가능성이 높다는 근거도 아니다. 보편성을 증거로 삼는 사람은 두 가지를 가정해야 한다.

첫째, 시간이 흐르면 보편적 의견의 증명력이 사라진다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때 모두가 참이라고 여긴 옛 오류를 되살려야 한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복원하고, 모든 개신교 국가에 가톨릭을 다시 세워야 할 것이다.

둘째, 공간적 거리도 같은 효과를 낸다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교·기독교·이슬람교 신자들이 각각 자기 종교를 보편적으로 믿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다룰지 곤란해진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른바 보편적 의견은 두세 사람의 의견에 불과하다.

처음에 두세 사람이 어떤 견해를 받아들이거나 제시하고 지켰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철저히 검토했으리라고 호의적으로 믿었다. 처음 사람들이 충분한 능력을 갖췄다고 미리 믿은 몇 사람이 그 견해를 받아들였다. 다시 많은 사람이 그 몇 사람을 신뢰했다. 직접 검토하는 수고보다 바로 믿는 편이 낫다는 게으름 때문이었다.

게으르고 잘 믿는 추종자의 수는 날마다 늘었다. 견해가 상당한 지지를 얻자 뒤따르는 사람들은 그처럼 널리 퍼진 이유가 논증의 강제력에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남은 사람들도 모두가 받아들인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거스르는 사람, 남들보다 자기가 영리하다고 뽐내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면 동의는 의무가 된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소수는 입을 다문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자기 의견이나 판단을 만들 능력 없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되풀이하는 이들뿐이다. 그런데도 더 큰 열정과 편협함으로 그 견해를 지킨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미워하는 것은 다른 견해 자체라기보다 스스로 판단하겠다는 건방짐이다. 자기들은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요컨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지만 누구나 의견은 갖고 싶어 한다. 스스로 만들지 않는다면 남이 만들어놓은 것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1억 명의 의견이라고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서로 베껴 썼음이 밝혀진 연대기 작가 100명이 전한 역사적 사실과 다르지 않다. 끝내 한 사람의 말로 거슬러 올라갈 뿐이다.[^1]

[^1]: 피에르 벨, 《혜성에 관한 여러 생각》 제1권 10쪽 참조.

내가 말하고, 네가 말하고, 마침내 그 사람도 말했다.
수없이 되풀이된 뒤 남은 것은 그저 말뿐이다.

그럼에도 평범한 사람과 논쟁할 때는 보편적 의견을 권위로 쓸 수 있다. 그런 두 사람이 싸울 때는 대개 양쪽 모두 이 무기를 고른다. 더 나은 사람이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면, 상대의 약한 지점에 먹히는 권위를 골라 같은 무기를 쓰는 편이 유리하다고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재판에서는 권위끼리 다툰다. 법률 전문가가 정한 권위 있는 문장이 무기다. 여기서 판단력은 어떤 법이나 판례가 해당 사건에 적용되는지 찾는 데 쓰인다. 변증술이 끼어들 여지는 충분하다. 사건과 법이 실제로 들어맞지 않아도 필요하면 들어맞는 것처럼 비틀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술 31.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로 상대를 깎아내려라

상대 논증에 답할 말이 없다면 세련된 반어를 쓸 수 있다.

“지금 하신 말씀은 제 보잘것없는 이해력을 넘어섭니다. 아주 참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으니 의견을 보류하겠습니다.”

평소 청중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면, 이 말로 상대의 이야기가 무의미하다는 인상을 심을 수 있다.

칸트의 《비판》이 세상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을 때 구 절충학파의 여러 교수는 이해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로 일이 끝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새 학파의 지지자들이 “당신 말이 맞다. 실제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입증하자 그 교수들은 몹시 불쾌해했다.

이 기술은 청중이 상대보다 우리를 훨씬 높게 평가한다고 확신할 때만 쓸 수 있다. 교수가 학생에게 쓰는 경우가 그렇다. 엄밀히 말하면 앞 기술의 변형이다. 이유 대신 자기 권위를 악의적으로 내세운다.

맞대응은 이렇게 한다.

“송구합니다. 선생님의 예리한 지성이라면 어떤 것이든 쉽게 이해하실 텐데, 제가 서툴게 설명한 탓이겠군요.”

그런 다음 상대가 싫어도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 실제로는 이해하지 못한 사람의 잘못이었음을 보여준다. 상대는 극도의 예의를 차려 우리가 헛소리한다고 암시했다. 우리도 같은 예의로 그가 어리석음을 입증한다.

기술 32. 불쾌한 딱지를 붙여라

상대의 주장을 빠르게 제거하거나 의심받게 하는 방법이 있다. 그 주장을 사람들이 싫어하는 어떤 범주에 집어넣는 것이다. 실제 관련이 겉보기에만 있거나 느슨해도 괜찮다.

“그건 마니교입니다”, “아리우스주의입니다”, “펠라기우스주의입니다”, “관념론입니다”, “스피노자주의입니다”, “범신론입니다”, “자연주의입니다”, “무신론입니다”, “합리주의입니다”, “강신술입니다”, “신비주의입니다” 같은 식이다.

이런 반론에는 두 가정을 몰래 집어넣는다.

첫째, 지금의 주장이 그 범주와 같거나 그 안에 포함된다고 가정한다. “아, 그 얘기는 전에도 들었어”라고 외치는 셈이다.

둘째, 그 사상 체계는 이미 완전히 논박되었고 그 안에는 단 한마디의 진실도 없다고 가정한다.

스타트업 적용 노트 — 2026

2026년의 권위 호소는 라틴어 대신 로고, 팔로어 수, “업계에서는 다 안다”, 출처 없는 AI 요약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출처가 유명한지와 그 출처가 실제로 이 주장을 했는지, 말한 맥락이 지금도 맞는지는 별개다.

확인은 네 칸이면 된다. 누가 / 어디서 / 정확히 무엇을 / 어떤 근거로. 널리 퍼졌다는 사실은 채택률에 관한 데이터이지 진실성에 관한 데이터가 아니다. 주장에 ‘좌파적’, ‘반시장적’, ‘사이비’, ‘러다이트’ 같은 딱지가 붙는 순간 그 범주의 정의와 현재 주장 사이의 연결부터 요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