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모든 논쟁의 본질부터 살펴보자. 논쟁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상대가 하나의 명제를 내놓았다고 하자. 우리가 내놓았어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반박하는 방식은 두 가지이고, 취할 수 있는 경로도 두 가지다.
첫째, 반박 방식은 사물 자체에 대한 반박(ad rem)과, 사람 또는 그가 인정한 전제에 대한 반박(ad hominem, ex concessis)으로 나뉜다.
앞의 방식은 그 명제가 사물의 본성, 곧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에 맞지 않는다고 보여준다. 뒤의 방식은 그 명제가 상대의 다른 말이나 그가 인정한 내용과 모순된다고 보여준다. 다시 말해 상대의 관점에서 성립하는 진리와 충돌한다는 것이다. 뒤의 방식은 상대적인 확신만 낳으며, 사안의 객관적 진리에는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
둘째, 반박의 경로는 직접 반박과 간접 반박으로 나뉜다. 직접 반박은 명제를 뒷받침하는 이유를 공격하고, 간접 반박은 명제가 낳는 결과를 공격한다. 직접 반박은 명제가 참이 아니라고 보여주며, 간접 반박은 명제가 참일 수 없다고 보여준다.
직접 경로에도 두 방법이 있다. 주장의 근거가 거짓임을 보일 수 있다. 이를 라틴어로 nego majorem, minorem, 곧 대전제나 소전제를 부정한다고 한다. 또는 근거나 전제를 받아들이되 그로부터 주장이 따라 나오지 않는다고 보일 수 있다. 이를 nego consequentiam, 곧 귀결을 부정한다고 한다. 삼단논법의 결론 또는 형식을 공격하는 것이다.
간접 반박은 귀류와 반례를 이용한다.
1. 귀류
상대의 명제를 참이라고 받아들인 뒤, 참이라고 인정되는 다른 명제와 연결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여준다. 두 명제를 삼단논법의 전제로 삼아 명백히 거짓인 결론을 끌어낸다. 그 결론은 사물의 본성과 모순되거나,[^1] 상대가 한 다른 말과 모순된다. 앞의 경우는 사물 자체에 대한 반박이고, 뒤의 경우는 사람에 대한 반박이다.[^2]
따라서 상대의 명제는 거짓이어야 한다. 참인 전제에서는 참인 결론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거짓인 전제가 언제나 거짓인 결론만 낳는 것은 아니다.
[^1]: 전혀 의심할 수 없는 진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면 상대의 입장을 부조리로 환원한 것이다.
[^2]: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의 《대 히피아스》 등에서 사용한 방식이다.
2. 반례
일반 명제에 포함되지만 실제로는 그 명제가 적용되지 않는 구체적 사례를 직접 제시한다. 단 하나의 반례라도 성립하면 일반 명제는 필연적으로 거짓임이 드러난다.
이것이 모든 논쟁 형식의 뼈대다. 모든 논쟁은 끝내 이 구조로 환원할 수 있다. 다만 실제 논쟁은 이 방식대로 진행될 수도 있고,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진짜 논증으로 뒷받침될 수도 있고 가짜 논증으로 뒷받침될 수도 있다. 무엇이 참인지 가리기 어렵기 때문에 토론은 그토록 길고 고집스럽게 이어진다.
논증을 배열할 때 실제 진실과 겉보기의 진실을 완전히 떼어놓을 수도 없다. 논쟁 당사자들조차 사전에 어느 쪽이 참인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부터 객관적으로 참인가 거짓인가를 따지지 않고 여러 속임수와 술책을 설명하겠다. 그 문제는 미리 확정할 수 없다.
더구나 어떤 주제로 논쟁하든 적어도 한 가지에는 합의해야 한다. 그것을 원칙으로 삼아 문제를 판단하겠다는 데 동의해야 한다. 첫 원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과는 논쟁할 수 없다. Contra negantem principia non est disputandum. 원리를 부정하는 자와는 토론이 성립하지 않는다.
스타트업 적용 노트 — 2026
상대의 말이 ‘현실과 맞지 않는가’와 ‘상대가 앞서 한 말과 모순되는가’는 다른 질문이다. 후자만 입증해놓고 전자까지 입증했다고 착각하면 논쟁에는 이겨도 의사결정에는 실패한다.
실무에서는 반박을 세 칸으로 기록해보라. 전제가 틀림 / 전제에서 결론이 나오지 않음 / 반례가 있음. “그냥 아닌 것 같다”는 반응을 이 셋 가운데 하나로 바꾸는 순간 토론의 질이 올라간다. 반대로 어느 칸에도 넣을 수 없는 공격이라면, 다음 장들에서 다룰 논점 이탈이나 청중 조작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