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으로 보면 영국의 예술가는 공격을 받아 얻는 것이 있다. 개성이 강해지고 더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된다. 물론 공격은 몹시 저속하고 무례하고 경멸스럽다. 그러나 어떤 예술가도 저속한 정신에서 우아함을, 교외의 지성에서 문체를 기대하지 않는다.
저속함과 어리석음은 현대 생활의 아주 생생한 두 가지 사실이다. 당연히 유감스럽지만 엄연히 존재한다. 다른 모든 것처럼 연구할 대상이다. 현대 언론인을 위해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공개적으로 나를 공격하는 글을 쓴 뒤 사석에서는 늘 사과한다.
최근 몇 해 사이 대중이 예술을 욕할 때 쓰는 빈약한 어휘 목록에 두 형용사가 더해졌다. 하나는 ‘불건전하다’이고 다른 하나는 ‘이국적이다’이다.
뒤의 말은 한철 살고 사라지는 버섯이 불멸하고 황홀하며 더없이 아름다운 난초를 보며 터뜨리는 분노를 나타낼 뿐이다. 찬사이기는 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찬사다.
반면 ‘불건전하다’는 말은 분석해 볼 수 있다. 제법 흥미로운 말이다. 너무 흥미로운 나머지 그것을 쓰는 사람들은 뜻을 모른다.
무엇을 뜻하는가? 건강한 예술 작품과 불건전한 예술 작품이란 무엇인가?
예술 작품에 합리적으로 적용하는 모든 용어는 작품의 양식이나 소재, 또는 둘 모두를 가리킨다.
양식의 관점에서 건강한 작품은 말, 청동, 색채, 상아 등 자기가 다루는 재료의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그 아름다움을 미적 효과를 만드는 요소로 쓰는 작품이다.
소재의 관점에서 건강한 작품은 예술가의 기질이 소재 선택을 결정하고, 그 기질에서 곧바로 나온 작품이다.
한마디로 건강한 작품에는 완성도와 개성이 함께 있다. 물론 작품에서 형식과 내용은 나눌 수 없다. 언제나 하나다. 다만 분석을 위해 미적 인상의 전체성을 잠시 제쳐 두면 지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반대로 불건전한 작품은 양식이 뻔하고 낡고 흔하며, 예술가가 즐거움을 느껴서가 아니라 대중이 돈을 낼 것 같아서 일부러 소재를 고른 작품이다.
사실 대중이 건강하다고 부르는 인기 소설은 언제나 철저히 불건전한 생산물이다. 대중이 불건전하다고 부르는 소설은 언제나 아름답고 건강한 예술 작품이다.
대중과 언론이 이 말을 오용한다고 불평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제대로 쓰겠는가. 나는 오용을 지적할 뿐이다.
그 오용의 기원과 밑에 깔린 뜻은 아주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야만적인 권위 관념에서 나온다. 권위에 타락한 공동체가 개인주의를 이해하거나 감상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무능에서 나온다.
한마디로 ‘여론’이라 불리는 괴물 같고 무지한 것에서 나온다. 행동을 통제하려 할 때의 여론은 의도는 좋더라도 나쁘다. 생각이나 예술을 통제하려 들 때는 악명 높고 사악하다.
사실 대중의 의견보다 대중의 물리력에 유리한 말을 훨씬 많이 할 수 있다. 물리력은 훌륭할 수 있지만 의견은 반드시 어리석다.
힘은 논증이 아니라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무엇을 증명하려느냐에 따라 전적으로 달라진다. 영국에서 군주의 전제적 통치를 존속시킬 것인가, 프랑스에서 봉건제를 존속시킬 것인가 같은 지난 몇 세기의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상당수는 오직 물리력으로 해결됐다.
혁명의 폭력은 한순간 대중을 웅장하고 찬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중이 펜이 포석보다 강하고 벽돌만큼 공격적으로 쓰일 수 있음을 발견한 날은 운명적인 날이었다. 그들은 즉시 언론인을 찾아냈고, 키워 냈으며, 부지런하고 보수도 좋은 하인으로 만들었다. 양쪽 모두를 위해 몹시 유감스러운 일이다.
바리케이드 뒤에는 고귀하고 영웅적인 것이 많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설 뒤에는 편견과 어리석음과 위선적인 상투어와 허튼소리 말고 무엇이 있는가? 이 네 가지가 합쳐지면 무서운 힘이 되어 새로운 권위를 이룬다.
옛날 사람들에게는 고문대가 있었다. 지금은 언론이 있다. 물론 개선이기는 하다. 그래도 여전히 몹시 나쁘고 잘못됐으며 사람을 타락시킨다.
누군가, 버크였던가, 언론을 제4부라 불렀다. 당시에는 분명 맞는 말이었을 것이다. 지금 언론은 사실 유일한 부다. 나머지 셋을 집어삼켰다. 세속 귀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성직 귀족은 할 말이 없으며, 하원은 할 말이 없다는 말을 한다. 우리는 언론의 지배를 받는다.
미국 대통령은 4년 동안 통치하지만 언론은 영원히 통치한다.
다행히 미국의 언론은 권위를 가장 조악하고 잔인한 극단까지 밀어붙였다. 자연스러운 결과로 반항의 정신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기질에 따라 언론을 재미있어하거나 혐오한다. 그러나 언론은 더는 예전처럼 실제적인 힘이 아니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영국 언론은 몇몇 잘 알려진 사례를 제외하면 그렇게 잔인한 극단까지 가지 않았고, 그래서 여전히 중요한 요소이자 참으로 놀라운 권력이다. 언론이 사람의 사생활에 행사하려는 폭정은 대단히 기이해 보인다.
대중은 알 가치가 있는 것을 빼고는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끝없는 호기심을 가졌다. 언론은 그 사실을 알고 상인처럼 수요를 채운다.
우리보다 앞선 세기에 대중은 언론인의 귀를 펌프에 못 박았다. 대단히 끔찍한 일이었다. 이번 세기에 언론인은 자기 귀를 열쇠 구멍에 못 박았다. 훨씬 더 나쁘다.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르는 이들이 이른바 사교계 신문에 재미있는 글을 쓰는 언론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해를 끼치는 사람은 진지하고 사려 깊고 열성적인 언론인이다. 그들은 지금도 위대한 정치가, 정치적 사상의 지도자이자 정치적 힘의 창조자인 사람의 사생활에서 한 사건을 끌어내 대중의 눈앞에 엄숙하게 펼친다.
대중에게 그 사건을 논하고 권위를 행사하며 의견을 내라고 청한다. 의견을 말하는 데 그치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고, 그 사람에게 다른 모든 문제에서도 지시하고, 정당과 국가에도 지시하라고 한다. 결국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고 모욕적이며 해로운 존재로 만들라고 한다.
남녀의 사생활은 대중에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 대중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프랑스는 이런 일을 더 잘 다룬다. 이혼 법정에서 진행된 재판의 세부 사항을 대중의 오락이나 비평거리로 보도하지 못하게 한다. 대중이 알 수 있는 것은 이혼이 이루어졌고 부부 가운데 한쪽 또는 양쪽의 신청으로 허가됐다는 사실뿐이다.
프랑스는 언론인을 제한하고 예술가에게 거의 완전한 자유를 준다. 영국은 언론인에게 절대적 자유를 주고 예술가를 철저히 제한한다.
다시 말해 영국의 여론은 결과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사람을 억누르고 가로막고 뒤틀려 한다. 그러면서 언론인에게 실제로 추하거나 혐오스럽거나 역겨운 것을 소매하라고 강요한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진지한 언론인과 가장 외설적인 신문을 함께 갖게 됐다.
‘강요’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끔찍한 일을 보도하는 데 진정한 즐거움을 느끼는 언론인이 있을 수 있다. 가난하기 때문에 추문을 꾸준한 수입원으로 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과 교양을 갖추고 그런 보도를 진심으로 싫어하며, 잘못임을 알면서도 하는 언론인이 또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직업이 놓인 불건전한 조건이 대중이 원하는 것을 공급하게 하고, 다른 언론인과 경쟁하면서 저속한 대중의 식욕을 최대한 충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교육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어느 집단이든 이런 비천한 처지에 놓이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들 대부분도 그 고통을 날카롭게 느끼고 있으리라 믿는다.
스타트업 적용 노트 — 2026
관심을 측정하는 시스템은 관심을 제조한다
와일드는 언론이 대중의 호기심을 채우면서 동시에 키운다고 본다. 오늘의 플랫폼에서는 조회수, 체류 시간, 공유율이 그 순환을 실시간으로 자동화한다. 사람들이 클릭한 것을 더 보여 주고, 더 많이 보여 준 것이 다시 선호 데이터가 된다.
그래서 “사용자가 원한다”는 말만으로 추천과 콘텐츠 정책을 정당화할 수 없다. 어떤 선택지를 배치했고 무엇을 숨겼는지, 어떤 감정을 보상했는지까지 제품이 공동 책임을 진다. 사생활과 분노가 가장 싼 성장 연료가 되면 참여 지표가 좋아져도 신뢰와 판단 능력은 닳는다.
해법은 모든 대중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사적 정보의 수집과 노출을 최소화하고, 추천 이유와 끄기 기능을 제공하며, 장기 만족과 후회·신고·정정 비용을 함께 측정해야 한다. 작성자에게도 클릭 목표만 주지 말고 정확성, 공익성, 당사자 피해를 평가할 여지를 줘야 한다. 수요를 기록하는 장치는 언제나 수요를 빚는 장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