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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ATIONS 018 · 02

1부 자선이 원인을 가릴 때

모피 장식 옷을 입고 턱을 손에 괸 젊은 오스카 와일드의 1882년 초상
1882년 나폴레옹 사로니가 촬영한 오스카 와일드. 와일드는 사회주의를 개인을 통제하는 체제가 아니라 개성을 해방할 물질적 조건으로 보았다.Napoleon Sarony · Library of Congress · 1882 · No known restrictions

사회주의가 세워졌을 때 얻을 가장 큰 이점은 분명하다. 지금 거의 모든 사람을 무겁게 짓누르는,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비루한 의무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실제로 그 의무를 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세기에 몇 번쯤은 다윈 같은 위대한 과학자, 키츠 같은 위대한 시인, 르낭 같은 날카로운 비평가, 플로베르 같은 최고의 예술가가 자신을 고립하는 데 성공한다. 타인의 요란한 요구가 닿지 않는 곳으로 물러나, 플라톤의 표현대로 ‘담벼락 아래 몸을 피한’ 채 자기 안에 있는 가능성을 완성한다. 그것은 본인에게 비할 데 없는 이익이고, 온 세계에도 오래 남을 비할 데 없는 이익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예외다. 대다수는 병적이고 지나친 이타주의 때문에 삶을 망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망치도록 내몰린다. 끔찍한 빈곤과 추함과 굶주림이 사방에 있으니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감정은 지성보다 먼저 움직인다. 내가 예전에 비평의 기능을 다룬 글에서 지적했듯, 고통에 공감하기는 생각에 공감하기보다 훨씬 쉽다.

그래서 사람들은 훌륭하지만 방향을 잘못 잡은 의도로, 눈앞의 악을 고치겠다는 일에 대단히 진지하고 감상적으로 뛰어든다. 하지만 그들이 내놓는 처방은 병을 고치지 않는다. 병을 연장할 뿐이다. 사실 그 처방 자체가 병의 일부다.

가령 사람들은 가난한 이를 죽지 않게 부양하는 것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조금 더 진보했다는 사람들은 가난한 이에게 오락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일이다. 올바른 목표는 빈곤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사회의 토대를 다시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타주의의 미덕이 오히려 그 목표의 실행을 막아 왔다.

가장 나쁜 노예 소유주는 노예에게 친절한 자들이었다. 친절 덕분에 노예로 사는 사람은 제도의 공포를 온전히 깨닫지 못했고,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날 영국에서도 가장 큰 해를 끼치는 사람은 가장 많은 선을 행하려 애쓰는 사람들이다. 마침내 문제를 실제로 연구하고 그 삶을 아는 사람들, 런던 이스트엔드에 사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나서서 사회에 호소하는 광경까지 나타났다. 자선과 박애 같은 이타적 충동을 제발 자제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 자선이 사람을 비하하고 타락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이 옳다. 자선은 수많은 죄를 낳는다.

한 가지를 더 말해야 한다. 사유재산 제도가 만든 끔찍한 폐해를 덜겠다며 사유재산을 쓰는 것은 부도덕하다. 부도덕할 뿐 아니라 불공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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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처방과 좋은 시스템은 같은 말이 아니다

와일드의 첫 공격은 자선을 조롱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증상을 누그러뜨리는 행동이 원인을 고치는 일처럼 행세하는 순간을 겨냥한다. 무료 쿠폰으로 낮은 임금을 보상하고, 소진된 팀에 복지 이벤트를 얹고, 접근하기 어려운 제품에 사용법 교육만 늘리는 조직은 이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그렇다고 당장 필요한 지원을 끊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굶는 사람 앞에서 제도 개혁만 말하는 태도 역시 잔인하다. 응급 처치와 구조 개선을 함께 운영하되 서로를 대신한다고 속이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팀이 물어야 할 질문은 세 가지다. “이 조치는 피해를 지금 줄이는가?”, “같은 피해가 되풀이되는 원인을 바꾸는가?”, “혜택을 주는 쪽의 선의가 아니라 받는 사람의 선택권을 늘리는가?” 선행의 양보다 구조가 바뀌는 방향을 측정할 때, 좋은 의도가 제품과 조직의 변명으로 굳는 일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