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우리가 사회주의를 통해 도달해야 할 것은 개인주의다. 자연스럽게 국가는 통치한다는 생각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그리스도보다 수 세기 앞선 어느 현자가 말했듯, 인류를 내버려 두는 방법은 있어도 인류를 다스리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통치 형태는 실패한다. 전제정은 전제군주를 포함해 모두에게 부당하다. 그 군주도 아마 더 나은 일을 하도록 태어났을 것이다. 과두정은 다수에게 부당하고, 폭민정은 소수에게 부당하다.
한때 민주주의에 큰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인민이, 인민을 위해, 인민을 몽둥이질하는 것일 뿐이다. 이제 그 사실이 드러났다. 진작 알았어야 할 일이었다. 모든 권위는 사람을 타락시키기 때문이다.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도, 그 대상이 되는 사람도 타락시킨다.
권위가 폭력적이고 조악하고 잔인하게 행사되면 한 가지 좋은 효과가 생긴다. 그것을 파괴할 반항과 개인주의의 정신을 만들어 내거나, 적어도 밖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어느 정도 친절하게 행사되고 상과 보상까지 곁들이면 끔찍하게 사람을 망친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무서운 압력을 잘 의식하지 못한다. 귀여움받는 동물처럼 투박한 안락함 속에서 평생을 보낸다. 자기가 남의 생각을 생각하고, 남의 기준으로 살고, 사실상 남이 입던 헌옷을 걸치고 있으며, 단 한 순간도 자기 자신이 된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한 훌륭한 사상가는 “자유로워지려는 사람은 순응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권위는 사람에게 뇌물을 주어 순응시키고, 우리 가운데 지나치게 잘 먹인 야만 상태를 만들어 낸다.
권위가 사라지면 처벌도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이득, 사실 가치를 계산할 수조차 없는 이득이다.
학생과 시험 응시자를 위해 내용을 덜어 낸 판본이 아니라 각 시대의 원사료로 역사를 읽어 보면, 악인이 저지른 범죄보다 선인이 가한 처벌에 더 큰 구역질을 느끼게 된다. 공동체는 범죄가 발생해서보다 처벌을 습관적으로 사용해서 훨씬 더 잔혹해진다.
처벌을 많이 가할수록 범죄도 늘어난다는 결론은 명백하다. 현대의 입법은 대체로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가능하다고 여기는 만큼 처벌을 줄이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실제로 줄인 곳에서는 언제나 대단히 좋은 결과가 나왔다. 처벌이 적을수록 범죄도 적다.
처벌이 완전히 사라지면 범죄도 없어질 것이다. 그래도 발생한다면 의사가 돌봄과 친절로 치료해야 할, 몹시 고통스러운 정신 질환으로 다룰 것이다.
오늘날 범죄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사실 범죄자가 아니다. 현대 범죄를 낳는 것은 죄가 아니라 굶주림이다. 그래서 우리 범죄자들은 하나의 계층으로 볼 때 심리학적으로 전혀 흥미롭지 않다. 그들은 경이로운 맥베스도, 무시무시한 보트랭도 아니다.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았더라면 평범하고 존경할 만한 보통 사람도 되었을 바로 그런 모습일 뿐이다.
사유재산이 폐지되면 범죄의 필요도 수요도 없어져 범죄는 사라질 것이다. 물론 모든 범죄가 재산을 노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국 법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보다 무엇을 가졌는가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 재산 범죄를 가장 가혹하고 끔찍하게 처벌한다. 살인을 예외로 하고, 사형이 종신형보다 더 나쁘다고 본다면 말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우리 범죄자들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나는 알고 있다.
재산을 직접 노리지 않은 범죄라도 잘못된 소유 제도가 낳은 비참함과 분노, 억압에서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제도가 폐지되면 함께 사라질 것이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필요를 충족할 만큼 가지고 이웃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간섭할 이유도 흥미도 없어질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범죄의 엄청난 원인이 되는 질투는 재산 관념과 밀접하게 묶인 감정이다. 사회주의와 개인주의 아래에서는 사라질 것이다. 공동 소유를 실천하는 부족에서는 질투를 전혀 모른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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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도 통제 수단이 될 수 있다
권위가 채찍보다 상으로 작동할 때 더 알아보기 어렵다는 와일드의 지적은 조직 설계에 곧장 이어진다. 실적 보너스, 배지, 공개 순위, ‘이달의 영웅’은 강요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원하는 행동을 과도하게 좁히면 구성원은 고객이나 문제보다 보상 체계가 시키는 일을 생각한다.
처벌과 범죄가 함께 사라진다는 그의 주장은 경험적으로 입증된 일반 법칙이 아니다. 모든 해악을 빈곤이나 재산 탓으로 돌리면 폭력, 권력욕, 차별, 개인적 책임을 놓친다. 오늘의 조직은 처벌을 없애는 것과 책임을 없애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실수와 악의, 학습 가능한 실패와 반복적 해악을 분리하고, 공개 망신보다 복구와 재발 방지에 초점을 두는 것이 출발점이다. 보상도 같은 기준으로 살핀다. “이 제도가 판단을 돕는가, 판단을 대신하는가?”, “누가 기준을 만들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가?”, “점수를 얻지 않아도 옳은 일을 할 여지가 있는가?” 사람을 움직이는 장치가 많아질수록 자율성은 저절로 커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