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례는 선철을 나르는 일이다. 인간이 하는 노동 가운데 가장 거칠고 단순한 형태를 대표하기 때문에 골랐다. 노동자는 손 외에는 아무 도구도 쓰지 않는다. 몸을 굽혀 약 92파운드짜리 선철 덩어리 하나를 집고 몇 피트 또는 몇 야드를 걸어간 뒤 땅이나 더미 위에 떨어뜨린다.
이 일은 아주 거칠고 단순해서 지능 있는 고릴라를 훈련하면 어떤 사람보다 효율적으로 선철을 나르게 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그런데 선철 운반의 과학은 매우 방대하다. 이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도 자신보다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의 도움 없이는 그 과학의 원리를 이해할 수 없고, 그 원리에 따라 일할 수도 없다는 점을 보일 것이다.
편집자 주 이 장에서 테일러는 노동자를 고릴라나 소에 빗대고 지적 능력이 낮다고 거듭 단정한다. 당시의 계급적 편견과 관리자의 시선이 드러나는 표현이므로 삭제하지 않았다. 뒤의 수치와 함께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뒤의 사례를 보면 거의 모든 기계 기술에서 노동자의 동작 하나하나를 뒷받침하는 과학이 매우 방대하다는 점이 분명해질 것이다. 실제 작업에 가장 잘 맞는 노동자도 교육이나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 그 과학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앞으로 사례를 하나씩 들며 진실임을 보일 일반 원리다.
선철 운반에서 네 요소를 보인 다음에는 여러 기계 기술에 적용한 사례를 다룬다. 가장 단순한 노동에서 시작해 점점 복잡한 노동으로 올라갈 것이다.
베들레헴 제철소의 8만 톤
내가 베들레헴 제철회사에 과학적 관리를 도입하며 가장 먼저 맡은 일 가운데 하나는 과업 방식으로 선철을 나르는 것이었다. 미국·스페인 전쟁이 시작될 무렵 공장 옆 야외에는 작은 더미로 쌓인 선철 약 8만 톤이 있었다. 선철 가격이 너무 낮아 이익을 남기고 팔 수 없어서 저장해 둔 물량이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가격이 올라 이 막대한 재고가 팔렸다. 아주 단순한 작업에서 낡은 일급제와 성과급제보다 과업 방식이 어떤 장점이 있는지 노동자와 공장 소유주와 관리자 모두에게 상당한 규모로 보여줄 좋은 기회였다.

베들레헴 제철회사에는 용광로가 다섯 기 있었고, 여기서 나온 선철은 오랫동안 전담 작업반이 운반했다. 당시 작업반은 약 75명이었다. 평균적으로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었고, 자신도 선철 운반 노동자였던 훌륭한 감독이 이끌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당시 어느 곳과 비교해도 비슷하게 빠르고 저렴하게 일했다.
철도 분기선을 선철 더미 가장자리를 따라 야적장 안으로 놓았다. 화차 옆에는 경사 널빤지를 걸쳤다. 노동자는 각자 더미에서 약 92파운드짜리 선철 하나를 집어 경사로를 올라가 화차 끝에 떨어뜨렸다.
작업반은 한 사람당 하루 평균 약 12.5롱톤을 실었다. 조사 뒤 일류 선철 운반 노동자라면 12.5톤이 아니라 하루 47~48롱톤을 나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도 놀랐다. 과업량이 너무 커 보여 맞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몇 차례나 계산을 다시 했다.
일류 노동자의 적정 하루치 일이 47톤임을 확신한 뒤 현대 과학적 관리 아래 관리자로서 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다. 당시 12.5톤이던 하루 운반량을 한 사람당 47톤으로 높여 선철 8만 톤을 화차에 실어야 했다. 노동자의 파업이나 다툼 없이 해내고, 47톤을 나를 때가 12.5톤을 나를 때보다 더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해야 할 의무도 있었다.
첫 단계는 노동자를 과학적으로 선발하는 일이었다. 이 관리 방식에서는 언제나 한 번에 한 사람하고만 이야기하고 상대한다. 개인마다 특별한 능력과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집단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최고의 효율과 번영에 이르도록 성장시키려 한다.
먼저 시작할 알맞은 사람을 찾아야 했다. 75명을 사흘이나 나흘 동안 세심히 관찰하고 연구한 뒤 하루 47톤을 나를 체력이 있어 보이는 네 사람을 골랐다. 각자를 다시 면밀히 조사했다. 가능한 한 오래전까지 이력을 알아보고 성격, 습관, 야심을 철저히 물었다. 마지막으로 네 명 가운데 가장 적합해 보이는 한 명을 택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에 사는 체구가 작은 독일계 노동자였다. 저녁 일을 마친 뒤에도 아침에 뛰어 출근할 때처럼 생생한 모습으로 1마일 남짓을 뛰어 집에 가곤 했다. 하루 1.15달러의 임금으로 작은 땅을 샀고, 출근 전 아침과 퇴근 뒤 밤에 자기 집의 벽을 쌓고 있었다. 돈을 몹시 아낀다는 평판도 있었다. 1달러의 가치를 대단히 높게 두는 사람이었다. 그에 관해 물어본 한 사람은 “저 친구 눈에는 1페니가 수레바퀴만 해 보일 겁니다”라고 했다. 여기서는 이 사람을 슈미트라고 부르겠다.
이제 과제는 슈미트가 날마다 선철 47톤을 기쁘게 나르게 하는 일로 좁혀졌다. 다음과 같이 했다. 작업반에서 슈미트를 불러내 대략 이런 대화를 나눴다.
“슈미트, 자네는 비싼 값을 받는 사람인가?”
“글쎄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알면서 그래. 자네가 비싼 값을 받는 사람인지 아닌지 묻는 거야.”
“글쎄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자, 내 질문에 답해. 자네가 비싼 값을 받는 사람인지 여기 있는 싼 사람 중 하나인지 알고 싶다는 거야. 하루 1.85달러를 벌고 싶은지, 저 싼 사람들이 받는 것과 똑같이 1.15달러를 받으면 만족하는지 알고 싶어.”
“하루에 1.85달러를 받고 싶냐고요? 그게 비싼 사람인가요? 그럼요. 난 비싼 사람이죠.”
“정말 답답하게 구는군. 당연히 1.85달러를 받고 싶겠지. 누구나 원해! 그건 자네가 비싼 사람인지 아닌지와 거의 관계없다는 걸 잘 알잖아. 제발 내 질문에 답하고 시간 낭비하지 말게. 이리 와 봐. 저 선철 더미 보이지?”
“네.”
“저 화차도 보이지?”
“네.”
“비싼 값을 받는 사람이라면 내일 1.85달러를 받고 저 선철을 저 화차에 싣는 거야. 이제 정신 차리고 내 질문에 답해. 자네가 비싼 사람인가, 아닌가?”
“글쎄, 내일 저 선철을 화차에 실으면 1.85달러를 받는 건가요?”
“물론이지. 1년 내내 날마다 저만한 더미를 실으면 1.85달러를 받아. 비싼 사람은 그렇게 일한다는 걸 자네도 나만큼 잘 알잖아.”
“좋아요. 내일 1.85달러를 받고 저 선철을 화차에 실을 수 있어요. 날마다 그 돈을 받는 거죠?”
“물론이지. 물론이고말고.”
“그럼 난 비싼 사람이네요.”
“잠깐, 아직이야. 비싼 값을 받는 사람은 아침부터 밤까지 시키는 대로 정확히 해야 한다는 걸 자네도 잘 알 거야. 여기 이 사람, 전에 봤나?”
“아뇨, 처음 봅니다.”
“자네가 비싼 사람이라면 내일 아침부터 밤까지 이 사람이 시키는 대로 정확히 하게. 선철을 들고 걸으라고 하면 들고 걷고, 앉아서 쉬라고 하면 앉게. 하루 종일 그대로 해. 말대꾸도 하지 말고. 비싼 사람은 시키는 일을 그대로 하고 말대꾸하지 않는 법이야. 알겠나? 이 사람이 걸으라고 하면 걷고, 앉으라고 하면 앉아. 말대꾸하지 말고. 내일 아침 일하러 나오게. 밤이 되기 전에 자네가 정말 비싼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거야.”
상당히 거친 말처럼 보인다. 교육받은 기능공이나 영리한 노동자에게 했다면 실제로 거친 말이다. 하지만 슈미트처럼 정신 활동이 굼뜬 유형에게는 알맞고 불친절하지 않다. 그가 원하는 높은 임금에 관심을 붙들어 두고, 주의를 기울였다면 불가능할 만큼 힘든 일로 여겼을 부분에서는 관심을 돌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주도성과 유인의 관리’에서 흔히 쓰는 방식으로 이야기했다면 슈미트가 무엇이라고 답했을까?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하자.
“슈미트, 자네는 일류 선철 운반 노동자이고 일을 잘 알고 있네. 지금까지 하루 12.5톤씩 날랐지. 내가 선철 운반을 상당히 연구해 봤는데 자네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하루치 일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네. 정말 노력한다면 12.5톤 대신 하루 47톤을 나를 수 있지 않겠나?”
슈미트가 뭐라고 답했을 것 같은가?
슈미트는 일을 시작했다. 초시계를 들고 지켜보는 사람이 일정한 간격으로 온종일 지시했다. “이제 선철을 들고 걸으세요. 이제 앉아서 쉬세요. 이제 걸으세요. 이제 쉬세요.” 그는 일하라는 때 일하고 쉬라는 때 쉬었다. 오후 5시 30분이 되자 화차에 47.5톤을 실었다.
내가 베들레헴에 있던 3년 동안 그는 사실상 한 번도 이 속도와 과업을 놓치지 않았다. 그동안 하루 평균 1.85달러를 조금 넘게 받았다. 전에는 당시 베들레헴의 통상 임금인 1.15달러보다 많이 받은 적이 없었다. 과업 방식으로 일하지 않는 주변 노동자보다 60퍼센트 높은 임금을 받은 것이다. 사람을 한 명씩 선발해 하루 47.5톤을 나르도록 훈련했다. 결국 모든 선철이 이 속도로 운반됐고 노동자는 주변보다 60퍼센트 높은 임금을 받았다.
앞에서 과학적 관리의 본질을 이루는 네 요소 가운데 세 가지를 간단히 설명했다. 첫째는 노동자의 세심한 선발, 둘째와 셋째는 과학적 방법으로 일하도록 먼저 유도한 뒤 훈련하고 돕는 방법이다. 선철 운반의 과학 자체는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례를 마치기 전에 독자가 선철 운반에도 과학이 있음을 완전히 납득하기 바란다. 이 과학은 아주 방대해서 선철 나르기에 적합한 노동자도 윗사람의 도움 없이는 이해할 수 없고 그 법칙대로 일할 수도 없다.
성과급 전쟁에서 시작된 연구
나는 주형 제작공과 기계공 견습을 마친 뒤 1878년 미드베일 제철회사 기계공장에 들어갔다. 1873년 공황 뒤에 이어진 긴 불황이 거의 끝날 때였다. 경기가 너무 나빠 많은 기능공이 자기 직종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나도 기능공 대신 일용 노동자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공장에 들어간 직후 사무원이 절도하다 발각됐다. 대신할 사람이 없었고, 나는 대학 진학 준비를 했기 때문에 다른 노동자보다 교육을 더 받았다. 그래서 사무원 자리를 맡게 됐다. 얼마 뒤에는 선반 한 대를 맡아 기계공으로 일했다. 비슷한 선반의 다른 기계공보다 생산량이 꽤 많았으므로 몇 달 뒤 선반 작업반장이 됐다.
이 공장의 작업은 거의 전부 수년 동안 성과급제로 해 왔다. 당시에도 흔했고 지금도 미국 공장 대부분에서 흔하듯, 공장은 감독이 아니라 사실상 노동자가 운영했다. 노동자들은 작업마다 얼마의 속도로 해야 할지 함께 세심하게 정했다. 공장 안 모든 기계의 속도는 제대로 된 하루치 일의 약 3분의 1로 제한했다. 새 노동자가 오면 다른 사람들이 작업별로 정확히 얼마를 해야 하는지 곧바로 알려줬다.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머지않아 동료에게 쫓겨날 것이 확실했다.
내가 작업반장이 되자 사람들이 한 명씩 찾아와 대략 이렇게 말했다.
“프레드, 작업반장이 돼서 정말 반갑네. 자네는 돌아가는 걸 잘 알고 성과급이나 탐내는 돼지는 아닐 거라 믿어. 우리와 함께 가면 다 잘될 거야. 하지만 이 단가를 하나라도 깨려고 하면 우리가 자네를 담장 밖으로 던져 버릴 수 있다는 걸 알아 두라고.”
나는 이제 경영진 편에서 일하며 선반에서 공정한 하루치 일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하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곧바로 전쟁이 시작됐다. 부하 노동자는 개인적인 친구였으므로 대부분 우호적인 전쟁이었지만 그래도 전쟁이었고 시간이 갈수록 더 격해졌다.
나는 공정한 하루치 일을 시키려고 온갖 수단을 썼다. 개선을 거부하며 완강하게 버티는 사람을 해고하거나 임금을 낮췄다. 성과급 단가를 낮추기도 했다. 경험 없는 사람을 고용해 내가 직접 일을 가르치고, 배우고 나면 공정한 하루치 일을 하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생산량을 높이기 시작한 사람에게 공장 안팎에서 계속 압력을 가했다. 결국 나머지와 비슷하게 일하거나 그만두게 만들었다.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싸움에서 서서히 생기는 쓰라림을 상상하기 어렵다. 이 전쟁에서 노동자에게는 대개 효과적인 수단이 하나 있다. 창의력을 발휘해 자기가 맡은 기계를 망가뜨리는 여러 방법을 고안한다. 겉으로는 사고나 정상적인 작업 중에 생긴 고장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고 기계를 너무 심하게 돌리도록 강요해 과부하가 걸리고 망가졌으므로 감독 책임이라고 돌린다. 공장 노동자 모두가 함께 가하는 압력을 견딜 감독은 거의 없다. 이 공장은 주야간 모두 돌아가서 문제가 더 복잡했다.
하지만 내게는 보통 감독에게 없는 두 가지 이점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둘 다 내가 노동자의 아들이 아니어서 생겼다.
첫째, 회사 소유주는 내가 노동자 집안 출신이 아니므로 다른 노동자보다 공장의 이익을 더 생각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 부하 기계공의 말보다 내 말을 신뢰했다. 기계공들이 무능한 감독이 기계를 혹사해 망가진다고 공장장에게 보고했을 때, 공장장은 성과급 전쟁의 일부로 노동자들이 일부러 기계를 부순다는 내 말을 받아들였다. 이런 파괴 행위에 대응할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법도 허용했다.
“이 공장 기계에는 더 이상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 기계 부품이 망가지면 담당자가 수리비의 적어도 일부를 부담한다. 이렇게 걷은 벌금은 모두 상조회에 넘겨 아픈 노동자를 돌보는 데 쓴다.”
고의적인 기계 파손은 곧 멈췄다.
둘째, 내가 노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그들이 사는 곳에 함께 살았다면 버텨 낼 수 없을 만큼 강한 사회적 압력을 받았을 것이다. 거리에 나설 때마다 ‘배신자’와 그보다 더 심한 욕설을 들었을 것이고, 아내는 모욕당하고 아이들은 돌에 맞았을 것이다.
한두 번은 친구인 노동자 몇 사람이 철길 옆 외딴 길을 따라 2.5마일쯤 걸어 집에 가지 말라고 간청했다. 계속 다니면 목숨이 위험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겁을 보이면 위험이 줄기보다 커지기 쉽다. 나는 매일 밤 철길을 따라 걸어서 집에 갈 생각이며, 어떤 무기도 가진 적이 없고 앞으로도 가지지 않을 테니 쏘고 싶으면 쏘고 저주나 받으라고 다른 노동자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이렇게 약 3년을 싸운 끝에 기계 생산량이 크게 늘었고 많은 경우 두 배가 됐다. 그 결과 나는 작업반장을 차례로 맡다가 공장 감독이 됐다. 하지만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성공을 주변 모두와 쓰라린 관계를 유지한 대가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과 계속 싸우는 삶은 살 가치가 거의 없다.
친구인 노동자들은 계속 나를 찾아와 자기 이익을 위해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좋을지 개인적으로 다정하게 물었다. 진실을 말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들 처지라면 지금처럼 더 많이 생산하지 않으려고 싸우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성과급제 아래에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임금을 벌지 못하면서 더 힘들게 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감독이 된 직후 나는 노동자와 경영진의 이해가 충돌하지 않고 같아지도록 관리 체계를 어떻게든 바꾸겠다고 결심했다. 약 3년 뒤 미국기계학회에 〈성과급 제도〉와 〈공장 관리〉라는 글로 소개한 관리 방식이 시작됐다.
이 체계를 준비하며 노동자와 경영진이 조화롭게 협력하는 데 가장 큰 장애는 적절한 하루치 일이 무엇인지 경영진이 모른다는 점을 깨달았다. 내가 공장 감독이어도 부하 노동자의 지식과 기량을 합치면 내 것보다 적어도 열 배는 많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당시 미드베일 제철회사 사장이던 윌리엄 셀러스에게 여러 작업에 필요한 시간을 세심하고 과학적으로 연구할 비용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셀러스는 이런 과학 연구가 별로 가치 있는 결과를 내리라고 믿어서라기보다, 내가 감독으로 노동자에게 더 많은 일을 얻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인 데 대한 보상으로 허락했다.
피로의 법칙을 찾다
당시 시작한 여러 조사 가운데 하나는 적합한 사람이 하루에 해야 할 무거운 노동량을 감독이 미리 알 수 있게 해 줄 규칙이나 법칙을 찾는 일이었다. 곧 일류 노동자에게 무거운 노동이 미치는 피로 효과를 연구했다.
먼저 젊은 대졸자를 고용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이 주제에 관해 쓰인 글을 모두 찾게 했다. 두 부류의 실험이 있었다. 생리학자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지구력을 연구했고, 엔지니어는 사람의 힘이 마력의 얼마인지 알아내려 했다. 실험은 주로 추가 달린 권양기의 손잡이를 돌려 짐을 드는 사람, 또는 걷고 달리고 여러 방식으로 짐을 드는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하지만 기록이 너무 빈약해서 쓸 만한 법칙을 끌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일련의 실험을 시작했다.
체력이 강하고 꾸준히 일한다고 증명된 일류 노동자 두 명을 골랐다. 실험 중에는 두 배의 임금을 지급했다. 언제나 능력을 다해 일해야 하고, 태업하는지 알아보려고 때때로 검사를 하며, 우리를 속이려는 순간 해고한다고 알렸다. 관찰하는 내내 이들은 능력을 다해 일했다.
실험의 목적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짧은 순간이나 며칠 동안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 작업량을 찾으려던 게 아니다. 일류 노동자가 해마다 꾸준히 제대로 해내면서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하루치 일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했다.
두 사람에게 온갖 과업을 줬다. 실험을 진행한 젊은 대졸자가 날마다 가까이서 관찰하며 초시계로 모든 동작에 걸리는 적정 시간을 기록했다.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 작업 요소를 모두 세심히 조사하고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알아내려던 것은 한 사람이 낼 수 있는 마력의 비율, 곧 하루에 몇 피트파운드의 일을 할 수 있는가였다.
첫 실험을 마친 뒤 각자의 하루 작업을 피트파운드 에너지로 환산했다. 놀랍게도 사람이 하루 동안 낸 에너지와 작업으로 느낀 피로 사이에는 일정하거나 일관된 관계가 없었다. 어떤 작업에서는 8분의 1마력도 채 내지 않았는데 녹초가 됐고, 다른 작업에서는 2분의 1마력을 내도 그보다 더 지치지 않았다.
그래서 일류 노동자의 최대 하루 작업량을 정확히 알려 주는 법칙을 찾지 못했다.
여러 노동에서 적절한 하루치 일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는 많이 얻었다. 하지만 찾던 정확한 법칙을 알아내려고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은 당시로서는 현명해 보이지 않았다. 몇 년 뒤 비용을 더 쓸 수 있게 되자 첫 실험과 비슷하지만 더 철저한 두 번째 실험을 했다.
이번에도 귀중한 정보는 얻었지만 법칙을 만들지는 못했다. 다시 몇 년 뒤 세 번째 실험을 했다. 이번에는 철저히 해내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문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아주 작은 요소까지 세심히 기록하고 연구했고, 대졸자 두 명이 약 석 달을 실험에 썼다.
자료를 다시 각자의 하루 피트파운드 에너지로 바꾸자 한 사람이 낸 마력과 그가 느끼는 피로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점이 아주 분명해졌다. 그래도 나는 일류 노동자의 온전한 하루치 일을 규정하는 명확한 법칙이 있다고 전처럼 굳게 믿었다. 자료를 세심히 수집하고 기록했으므로 필요한 정보가 기록 어딘가에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모인 사실에서 법칙을 찾아내는 문제를 칼 G. 바스에게 맡겼다. 그는 우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수학자였다. 작업 요소를 곡선으로 그려 한눈에 내려다보듯 보는 새 방식으로 조사하기로 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바스는 무거운 노동이 일류 노동자에게 주는 피로를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했다. 너무 단순해서 여러 해 전에 발견되고 분명히 이해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다.
발견한 법칙은 다음과 같다.
이 법칙은 피로 때문에 능력의 한계에 이르는 종류의 작업에만 적용된다. 속보마보다 짐수레를 끄는 말의 일에 해당하는 무거운 노동의 법칙이다. 이런 작업은 사실상 모두 팔로 무거운 것을 당기거나 미는 일이다. 손에 잡은 물체를 들거나 밀며 힘을 쓴다.
각각의 당기기나 밀기에서 노동자가 하루 중 짐을 받쳐도 되는 비율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 법칙이다. 예를 들어 92파운드짜리 선철을 나를 때 일류 노동자가 짐을 받쳐도 되는 시간은 하루의 43퍼센트뿐이다. 나머지 57퍼센트에는 짐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짐이 가벼워지면 하루 중 짐을 받쳐도 되는 비율은 올라간다. 46파운드짜리 반쪽 선철을 나르면 하루의 58퍼센트 동안 짐을 받고 42퍼센트만 쉬어도 된다. 무게가 더 가벼워질수록 짐을 받칠 수 있는 시간의 비율은 계속 높아진다. 마침내 지치지 않고 하루 종일 손에 들 수 있는 무게에 이르면 이 법칙은 지구력의 기준으로 쓸모가 없어진다. 그때부터는 작업 능력을 알려 줄 다른 법칙을 찾아야 한다.
노동자가 92파운드짜리 선철을 손에 들고 있으면, 걸을 때나 가만히 서 있을 때나 비슷하게 지친다. 움직이는지와 상관없이 팔 근육에 같은 강한 긴장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짐을 들고 가만히 선 사람은 어떤 마력도 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여러 무거운 노동에서 낸 피트파운드 에너지와 피로 사이에 일정한 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작업에서는 노동자의 팔이 자주 짐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곧 자주 쉬도록 해야 한다. 무거운 짐을 받치는 동안 팔의 근육 조직은 계속 소모된다. 혈액이 조직을 정상 상태로 회복시킬 기회를 얻으려면 잦은 휴식이 필요하다.
베들레헴 제철회사의 선철 운반 노동자로 돌아가자. 선철 운반의 기술 또는 과학을 이해한 사람이 안내하지 않고 슈미트 혼자 47톤 더미에 달려들게 했다면, 높은 임금을 벌고 싶은 마음에 오전 11시나 정오쯤 완전히 지쳤을 것이다. 근육의 회복에 꼭 필요한 휴식을 얻지 못할 만큼 쉬지 않고 일해 이른 시간에 탈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법칙을 이해한 사람이 옆에서 일을 지휘하고, 알맞은 간격으로 쉬는 습관을 익힐 때까지 날마다 가르치자 무리하게 지치지 않고 온종일 고른 속도로 일할 수 있었다.
선철 나르기를 정규 직업으로 삼기에 적합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조건 하나는 소를 닮았다고 할 만큼 둔하고 침착한 정신이다. 정신이 기민하고 영리한 사람에게 이런 일의 지독한 단조로움은 견디기 어려워 오히려 전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선철 운반에 가장 적합한 노동자는 이 일을 하는 진짜 과학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 ‘퍼센트’라는 말도 뜻을 알아듣지 못할 만큼 우둔하므로, 성공하려면 더 영리한 사람이 과학의 법칙대로 일하는 습관을 훈련시켜야 한다.
이제 알려진 가장 단순한 노동에도 과학이 있다는 점이 분명하기를 바란다. 이 일에 가장 맞는 사람을 세심히 고르고, 일하는 과학을 개발하고, 선발한 사람이 그 과학에 맞게 일하도록 훈련하면 ‘주도성과 유인의 관리’에서 가능한 것보다 압도적으로 큰 결과가 필연적으로 나온다.
47.5톤은 가능한 수치였는가
다시 선철 운반 사례로 돌아가 보자. 보통 관리 방식으로도 사실상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훌륭한 관리자 여러 명에게 문제를 내고, 할증제나 성과급제 또는 보통 관리법으로 한 사람당 하루 47톤*에 근접할 수 있는지 물었다. 어느 누구도 통상적인 방법으로 18~25톤을 넘길 수 있다고 하지 않았다. 베들레헴 노동자는 당시 12.5톤만 싣고 있었다.
주: 일류 노동자가 땅에 놓인 선철 47.5톤을 하루에 화차에 실을 수 있다는 말의 정확성을 의심한 사람이 많았다. 회의적인 독자를 위해 작업 자료를 제시한다.
첫째, 실험에서 다음 법칙이 나타났다. 선철 운반에 적합한 일류 노동자는 하루의 42퍼센트 동안만 짐을 받칠 수 있고, 58퍼센트 동안 짐에서 벗어나야 한다.
둘째, 야외의 땅 위 더미에서 바로 옆 선로의 화차로 선철을 싣는 노동자는 하루에 47.5롱톤, 1롱톤당 2,240파운드를 나를 수 있으며 실제로 날마다 그만큼 날랐다.
선철 운반 단가는 톤당 3.9센트였고 노동자는 하루 평균 1.85달러를 벌었다. 전에는 하루 1.15달러만 받았다.
여기에 다음 수치를 덧붙인다.
47.5롱톤은 하루 선철 106,400파운드와 같다. 덩어리 하나가 92파운드이므로 하루 1,156개다. 하루 600분 가운데 짐을 받치는 시간 42퍼센트는 252분이다. 252분을 선철 1,156개로 나누면 하나당 짐을 받치는 시간은 0.22분이다.
선철 운반 노동자는 평지에서 0.006분에 1피트를 걷는다. 선철 더미와 화차 사이 평균 거리는 36피트였다. 그러나 많은 노동자는 경사 널빤지에 이르면 선철을 들고 뛰었다. 화차에 실은 뒤 경사로를 뛰어 내려오는 사람도 많았다. 실제 적재 중에는 위 수치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 사람이 많았다.
보통 선철 10~20개를 실으면 앉아서 쉬게 했다. 이 휴식은 화차에서 선철 더미로 돌아오는 시간과 별도였다. 이 양을 실을 수 없다고 의심하는 사람 상당수는 노동자가 돌아올 때 짐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근육이 회복할 기회를 얻었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더미와 화차의 평균 거리가 36피트일 때 이들은 날마다 짐을 들고 약 8마일, 짐 없이 약 8마일을 걸었다.
이 수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 여러 방식으로 곱하고 나누어 보면 모든 사실이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어가자. 노동자를 과학적으로 선발한 결과 75명 가운데 하루 47.5톤을 나를 신체 능력이 있는 사람은 여덟 명에 한 명꼴이었다. 나머지 여덟 명 중 일곱 명은 아무리 의지가 좋아도 이 속도로 일할 신체 능력이 없었다.
일할 수 있는 여덟 명 중 한 명이 같은 작업반의 다른 사람보다 우월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소와 같은 유형에 우연히 속했을 뿐이다. 찾기 어렵고 값비싼 희귀 인재가 아니라 대부분의 다른 육체노동에도 맞지 않을 만큼 우둔한 사람이었다. 특별한 개인을 찾는 게 아니라 아주 평범한 사람 가운데 이 작업에 유난히 맞는 소수를 고르는 일이다. 이 작업반에서는 여덟 명에 한 명만 맞았지만 필요한 사람을 모두 구하는 데 조금도 어려움이 없었다. 일부는 공장 안에서, 나머지는 주변 지역에서 정확히 맞는 사람을 찾았다.
‘주도성과 유인의 관리’에서 경영진의 태도는 ‘노동자가 알아서 하게 두는 것’이다. 낡은 관리 아래에서 이들이 선철 나르기에 맞는 사람을 스스로 제대로 선발할 가능성이 있을까? 작업반의 여덟 명 중 일곱 명을 내보내고 한 명만 남기겠는가? 그렇지 않다. 스스로 알맞게 선별하게 만들 수단은 없다. 높은 임금을 받으려면 필요하다는 점을 온전히 이해해도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이를 제대로 파악할 만큼 영리하지 않다. 더구나 바로 옆에서 일하는 친구나 형제가 이 일에 맞지 않아 일시적으로 직업을 잃는다면, 작업반의 여덟 명 가운데 맞지 않는 일곱 명을 스스로 제외하지 못한다.
적합한 사람을 고른 뒤 보통 관리 아래에서 무거운 노동의 과학, 곧 과학적으로 정한 휴식과 작업을 촘촘히 번갈아 가며 일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
보통 관리의 핵심 발상은 각 노동자가 자기 직종에 관해서는 경영진의 누구보다 숙련됐으므로 일을 가장 잘하는 세부 방법을 본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유능한 교사가 한 명씩 맡아 다른 누군가가 개발한 과학 법칙에 늘 맞춰 일할 때까지 새 작업 습관을 훈련하는 발상은 노동자가 자기 방법을 가장 잘 조절할 수 있다는 낡은 생각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게다가 선철 운반에 맞는 사람은 스스로를 제대로 훈련하기에 너무 우둔하다.
따라서 보통 관리 방식에서는 경험칙을 대신할 과학 지식의 개발, 노동자의 과학적 선발, 그 원리에 따라 일하도록 유도하는 일이 모두 불가능하다. 낡은 관리 철학은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두지만 새 철학은 상당 부분을 경영진에게 두기 때문이다.
독자 대부분은 선철 운반 노동자 여덟 명 가운데 일곱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데 크게 연민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거의 모두 즉시 베들레헴 제철회사에서 다른 일을 받았으므로 그 연민은 낭비다. 이들에게 맞지 않는 선철 운반에서 내보낸 것은 사실 친절한 일이었다. 자신에게 특별히 맞는 일을 찾고, 적절한 훈련을 받은 뒤에는 계속 정당하게 더 높은 임금을 벌게 하는 첫 단계였기 때문이다.
선철 운반 뒤에 과학이 있다는 점은 납득했더라도 다른 육체노동에도 과학이 있는지는 여전히 의심할 것이다. 이 글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모든 노동자의 모든 동작을 하나의 과학으로 만들 수 있음을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일이다. 이를 충분히 설득하기 위해 수천 건의 자료 가운데 단순한 사례 몇 가지를 더 들겠다.
스타트업 적용 노트 — 2026
슈미트 이야기는 성공담이 아니라 경고문이기도 하다
작업과 휴식의 비율을 함께 설계하고, 지속 가능한 속도를 찾으며, 생산성 향상분을 임금으로 나눈 대목은 중요하다. 그러나 테일러는 당사자와 과업을 공동 설계하지 않았다. 명령에 토 달지 않는 사람을 선발하고, 관리자가 지시한 순간에 들고 걷고 쉬게 했다. 노동자의 지성을 깎아내린 뒤 의사결정권을 가져오는 논리도 반복한다.
현대 팀의 시간 연구는 관리자 혼자 초시계를 들고 해서는 안 된다. 실제 작업자가 다음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 병목과 피로가 생기는 지점을 직접 표시한다.
- 더 나은 방법을 함께 가설로 세운다.
- 실험을 중단할 안전 조건을 정한다.
- 결과를 해석하고 새 표준을 승인한다.
- 절약된 시간과 비용을 어떻게 쓸지 합의한다.
그리고 가장 빠른 사람의 기록을 곧바로 모두의 기준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테일러 자신도 순간 최대치와 해마다 지속할 하루치 일을 구분했다. 지식노동의 표준은 사람을 같은 속도에 맞추는 선이 아니라, 좋은 결과를 반복할 수 있도록 준비와 휴식과 협업을 보장하는 약속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