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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ATIONS 011 · 04

3장 사무실에서 벌어진 시험

엉성한 도움, 어리석은 부주의, 꾀죄죄한 무관심, 건성으로 하는 일이 세상의 규칙처럼 보인다. 남에게 협력을 얻으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요하거나 위협하거나 매수해야 한다. 아니면 선한 신이 기적을 베풀어 빛의 천사를 조수로 보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누구도 성공하지 못하는 듯하다.

독자여, 직접 시험해보라.

당신은 지금 사무실에 앉아 있고 부르면 올 수 있는 직원이 여섯 명 있다. 그중 아무나 한 명을 불러 이렇게 부탁해보라.

“백과사전에서 코레조의 생애를 찾아 짧게 메모해주게.”

그 직원이 조용히 “네” 하고 일을 하러 갈까?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며 다음 질문 가운데 하나 이상을 던질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굽니까?”

“어느 백과사전 말씀이죠?”

“백과사전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그 일을 하라고 채용됐습니까?”

“비스마르크를 잘못 말씀하신 것 아닙니까?”

“찰리에게 시키면 안 됩니까?”

“그 사람은 죽었습니까?”

“급한 일인가요?”

“책을 가져올 테니 직접 찾아보시겠습니까?”

“그건 왜 알고 싶으신데요?”

“애초에 저는 그 일을 하라고 채용된 게 아닙니다!”

당신이 질문에 전부 답하고, 정보를 어떻게 찾는지와 왜 필요한지까지 설명한다고 해보자. 직원은 다른 직원을 데리고 가르시아를 찾아보려 할 것이다. 그러고는 그런 사람은 없다고 돌아와 보고할 것이다. 열에 아홉은 그렇게 된다는 데 돈을 걸 수 있다. 물론 내가 질 수도 있지만 평균의 법칙대로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코레조’가 K가 아니라 C 항목에 실려 있다고 조수에게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아주 다정하게 웃으며 “됐네”라고 말한 뒤 자기가 직접 찾아본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무능력, 도덕적인 둔감함, 약한 의지, 기꺼이 손을 보태려 하지 않는 태도. 이런 것들이 순수한 사회주의의 실현을 아득한 미래로 밀어낸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모두를 위한 노력에는 어떻게 나서겠는가.

매듭진 곤봉을 든 일등 항해사가 필요한 듯하다. 토요일 밤에 “해고 통보”를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많은 노동자를 일터에 붙들어둔다.

속기사를 구한다는 광고를 내보라. 지원자 열 명 중 아홉은 철자법도 문장부호도 제대로 쓰지 못하며, 그것이 필요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이 가르시아에게 편지를 쓸 수 있을까?

큰 공장의 한 감독이 내게 말했다.

“저기 경리 보이시죠?”

“보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회계 실력은 훌륭합니다. 하지만 시내에 심부름을 보내면 일을 제대로 마칠 때도 있고, 가는 길에 술집 네 곳을 들른 다음 중심가에 도착해서는 무엇을 하러 왔는지 잊어버릴 때도 있지요.”

그런 사람에게 가르시아행 편지를 맡길 수 있을까?


2026년 스타트업에서 읽기

코레조를 찾으라는 장면에는 지금도 알아볼 수 있는 조직 문제가 있다. 담당자가 목표보다 책임 회피에 몰두하고, 리더는 매번 일을 회수해 직접 처리한다. 이 습관이 쌓이면 사람은 성장하지 않고 리더는 병목이 된다.

하지만 허버드는 필요한 질문과 책임 회피를 구분하지 않는다. “어느 백과사전인가”, “무엇을 알고 싶은가”, “언제까지 필요한가”는 결과의 품질을 바꿀 수 있는 질문이다. 해결책은 질문 금지가 아니라 질문에 판단을 붙이는 것이다. 먼저 찾아본 것, 자기가 세운 가정, 추천하는 다음 행동을 함께 가져오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