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열기

FOUNDATIONS 013 · 09

8부 재산과 평화

4. 사회와 재산

종교와 교육과 예술이 바깥을 바라보듯 우리의 사회 정신도 바깥을 바라본다. 모든 사람이 사회의 발전을 자랑하지만 정작 자신을 발전시키는 사람은 없다.

사회는 결코 전진하지 않는다. 한쪽에서 얻는 만큼 다른 쪽에서 물러난다. 끊임없이 바뀐다. 야만 상태였다가 문명화되고, 그리스도교화되고, 부유해지고, 과학을 갖춘다. 그러나 변화가 곧 개선은 아니다. 무언가를 얻을 때마다 무언가를 잃는다.

사회는 새로운 기술을 얻고 오래된 본능을 잃는다. 주머니에 시계와 연필과 환어음을 넣고 좋은 옷을 입은 채 읽고 쓰고 생각하는 미국인과, 몽둥이와 창과 돗자리, 스무 명이 함께 쓰는 오두막의 잠자리 한 칸만 가진 벌거벗은 뉴질랜드 원주민을 대비해보라.

그러나 두 사람의 건강을 비교하면 백인이 원래의 힘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여행자의 말이 맞는다면, 야만인은 큰 도끼에 맞아도 하루 이틀 뒤면 연한 송진에 칼을 댄 듯 살이 붙고 아문다. 같은 상처를 입은 백인은 무덤으로 간다.

문명인은 마차를 만들었지만 두 발을 쓰는 법을 잃었다. 목발의 도움을 받는 만큼 근육의 도움을 잃었다. 정교한 제네바 시계는 가졌지만 태양을 보고 시간을 알아내는 능력은 없다.

그리니치 항해력도 지녔다. 필요하면 정보를 틀림없이 찾을 수 있으므로 거리의 사람은 하늘의 별 하나도 알지 못한다. 하지와 동지를 살피지 않고 춘분과 추분도 모른다. 한 해의 밝은 달력은 마음에 아무 눈금도 남기지 않는다.

수첩은 기억을 약하게 하고 도서관은 기지를 짓누른다. 보험회사는 사고의 수를 늘린다. 기계가 우리를 돕기보다 짐이 되는 것은 아닌지, 세련됨을 얻으며 어떤 활력을 잃은 것은 아닌지 물어볼 수 있다. 제도와 형식에 참호를 판 그리스도교 때문에 거친 미덕의 활력을 잃은 것은 아닌지도 물어야 한다.

스토아 철학자는 누구나 실제로 스토아 철학자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디 있는가?

키와 몸집의 기준이 달라지지 않듯 도덕의 기준도 달라지지 않는다. 지금 사람이 과거 사람보다 더 위대하지 않다. 최초의 시대와 최근 시대의 위인 사이에는 기묘한 평등이 있다.

19세기의 모든 과학과 예술, 종교와 철학도 2천3백 년이나 2천4백 년 전 플루타르코스의 영웅보다 더 위대한 사람을 길러낼 수 없다. 인류는 시간 속에서 진보하지 않는다.

포키온과 소크라테스, 아낙사고라스와 디오게네스는 위대한 사람이지만 같은 부류를 남기지 않는다. 진정으로 그들과 같은 부류인 사람은 그들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불리고 차례가 오면 새로운 학파를 세울 것이다.

각 시대의 기술과 발명은 그 시대가 입은 의상일 뿐 사람을 강하게 만들지 않는다. 개선된 기계가 끼친 해로움이 이로움을 상쇄할 수도 있다.

허드슨과 베링은 작은 어선으로 엄청난 일을 해냈고, 과학과 기술의 자원을 모두 동원한 장비를 갖춘 패리와 프랭클린을 놀라게 했다. 갈릴레오는 오페라글라스 같은 망원경으로 그 뒤 누구보다 찬란한 천체 현상의 연속을 발견했다. 콜럼버스는 갑판도 없는 배로 신대륙을 찾았다.

몇 년이나 몇 세기 전 요란한 찬사를 받으며 등장했던 수단과 기계가 주기적으로 버려지고 사라지는 광경은 흥미롭다. 위대한 천재는 본질적인 인간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전쟁 기술의 발전을 과학의 승리로 꼽았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야영으로 유럽을 정복했다. 모든 보조 장비를 벗어던지고 맨몸의 용기로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라스 카즈의 기록에 따르면 황제는 완벽한 군대를 만들려면 무기고와 보급창, 군수대와 수레를 없애야 한다고 보았다. 로마 관습을 따라 병사가 곡물을 배급받아 손맷돌로 갈고 자기 빵을 직접 구울 때까지 말이다.

사회는 파도다. 파도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파도를 이루는 물은 앞으로 가지 않는다. 골짜기에 있던 같은 물방울이 꼭대기까지 오르는 것은 아니다. 파도의 통일성은 현상일 뿐이다. 오늘 한 나라를 이루는 사람들은 다음 해에 죽고 그들의 경험도 함께 사라진다.

재산에 기대는 태도, 재산을 지켜주는 정부에 기대는 태도는 자기 신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너무 오랫동안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물건만 보았다. 종교와 학문과 국가 제도를 재산의 경비병이라고 여기게 되었고, 그 제도를 공격하면 자기 재산을 공격한다고 느껴 반대한다.

서로를 그 사람이 무엇을 가졌는지로 평가하고 무엇인지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양 있는 사람은 자기 본성을 새롭게 존중하게 되면서 재산을 부끄러워한다.

특히 우연히 얻은 재산은 싫어한다. 상속이나 선물, 범죄로 왔다는 사실을 알면 그것은 진정으로 가진 것이 아니라고 느낀다. 자기에게 속하지 않고 뿌리도 없으며, 혁명이나 도둑이 가져가지 않아 그 자리에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실제로 된 것은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얻는다. 그렇게 얻은 것은 살아 있는 재산이다. 통치자나 폭도나 혁명, 화재나 폭풍이나 파산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그 사람이 숨 쉬는 곳마다 끊임없이 새로 생겨난다.

칼리프 알리는 말했다. “삶에서 네 몫은 너를 찾아오고 있으니, 그것을 쫓는 일을 멈추고 편히 있으라.”

외부의 재화에 의존하면 숫자를 노예처럼 숭배하게 된다. 정당은 거대한 대회를 연다.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새로운 대표단이 소리 높여 발표될 때마다 젊은 애국자는 눈과 팔이 천 개씩 늘어나 전보다 강해졌다고 느낀다.

“에식스 대표단이 왔습니다! 뉴햄프셔의 민주당원들! 메인의 휘그당원들!”

개혁가들도 마찬가지로 대회를 소집해 무리 지어 표결하고 결의한다.

친구들이여, 아니다! 신이 당신에게 들어와 머무는 방식은 정확히 그 반대다. 모든 외부의 지지대를 벗어버리고 홀로 설 때만 그가 강해져 이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깃발 아래 새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그는 더 약해진다. 한 사람이 마을보다 낫지 않은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구하지 마라. 변화가 끝없이 이어질 때 홀로 굳건한 기둥이 되어 곧 주위를 떠받치게 될 것이다.

힘이 타고났다는 것을 아는 사람, 좋은 것을 바깥과 다른 곳에서 찾았기에 자기가 약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자기 생각 위에 몸을 던진다. 그러면 곧 몸을 바로잡고 똑바로 서며 팔다리를 지휘하고 기적을 행한다. 두 발로 선 사람이 머리로 선 사람보다 강한 것과 같다.

운명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을 그렇게 사용하라. 대부분 사람은 운명과 도박을 벌이고 그 수레바퀴가 도는 대로 전부 얻거나 전부 잃는다. 그러나 그런 승리를 부당한 것으로 보고 떠나라. 신을 보좌하는 원인과 결과를 상대하라.

의지 안에서 일하고 얻어라. 그러면 우연의 수레바퀴를 사슬로 묶고, 언젠가 그 회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앉아 있게 될 것이다.

정치적 승리, 임대료 상승, 아픈 사람의 회복, 떠났던 친구의 귀환, 그 밖의 유리한 사건이 기분을 북돋우면 좋은 날이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믿지 마라.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원칙의 승리 말고는 아무것도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2026년 스타트업에서 읽기

이 부의 기술 비판은 편리함이 능력을 빼앗을 수 있다는 점을 정확히 찌른다. 검색과 AI에 맡긴 기능은 금세 퇴화한다. 무엇을 자동화하고 무엇을 직접 이해할지 정해야 한다.

동시에 에머슨은 마오리족을 ‘벌거벗은 야만인’으로 부르고 상처가 비현실적으로 빨리 낫는다고 쓴다. 식민지 시대 여행담의 편견과 근거 없는 건강 비교다. 기술의 대가를 묻는 논지와 별개로 받아들일 수 없다. 또 집단의 수가 개인을 자동으로 옳게 만들지는 않지만, 혼자서는 바꾸지 못할 제도에 맞서는 힘도 연대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