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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ATIONS 013 · 06

5부 홀로 서는 용기

그러나 지금 우리는 군중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경외심을 품지 않는다. 자기 재능에게 집에 머물며 내면의 바다와 만나라고 타이르지도 않는다. 밖으로 나가 남의 항아리에서 물 한 잔을 구걸한다.

우리는 홀로 가야 한다. 나는 어떤 설교보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 고요한 교회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얼마나 멀리 떨어지고 서늘하고 정갈해 보이는가. 저마다 자기 경계와 성소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도 언제나 그렇게 앉자.

친구나 아내, 아버지나 아이가 같은 난롯가에 앉았거나 같은 피를 나눴다는 이유로 왜 그들의 결점까지 떠맡아야 하는가? 모든 사람에게 내 피가 있고 내게도 모든 사람의 피가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조급함과 어리석음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대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다만 고립은 기계적으로 떨어지는 일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높아지는 일이어야 한다. 때로 온 세상이 힘주어 말하는 하찮은 일로 당신을 성가시게 하려고 공모한 듯 보인다. 친구와 고객, 아이와 질병, 두려움과 궁핍과 자선이 한꺼번에 방문을 두드리며 말한다. “우리에게 나오라.”

그러나 자기 자리를 지켜라. 그들의 혼란 속으로 들어가지 마라. 사람들이 나를 성가시게 할 힘은 나의 나약한 호기심이 내어준 것이다. 나의 행동을 거치지 않고는 아무도 내게 가까이 올 수 없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다.
욕망하는 순간 그 사랑을 스스로 빼앗긴다.

순종과 신앙의 성스러운 경지까지 당장 오르지 못한다면, 적어도 유혹에 맞서자. 전쟁 상태로 들어가자. 매끈하게 다듬어진 이 시대에는 진실을 말함으로써 색슨인의 가슴속 토르와 보탄, 곧 용기와 끈기를 깨워야 한다.

거짓 환대와 거짓 애정을 멈춰라. 함께 대화하는, 속고 또 속이는 사람들의 기대에 더는 맞춰 살지 마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라.

“아버지, 어머니, 아내, 형제, 친구여. 지금까지 나는 겉모습에 맞춰 당신들과 살았습니다. 이제부터 진실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제 영원한 법보다 낮은 법에는 따르지 않겠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가까이 있다는 사실 말고는 어떤 계약에도 묶이지 않겠습니다.

부모를 모시고 가족을 부양하며 한 아내에게 정절을 지키려고 애쓰겠습니다. 그러나 이 관계들을 새롭고 전례 없는 방식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당신들의 관습에 항소합니다. 나는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 당신을 위해 더는 나를 부술 수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행복할 것입니다. 그럴 수 없더라도, 나는 당신이 나를 사랑할 만한 사람이 되려고 계속 애쓰겠습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숨기지 않겠습니다.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은 거룩하다고 믿겠습니다. 내 안에서 기뻐하고 마음이 명하는 것을 해와 달 앞에서 힘껏 행하겠습니다.

당신이 고결하면 사랑하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위선적인 관심으로 당신과 나를 해치지 않겠습니다. 당신도 진실하지만 나와 같은 진실을 따르지 않는다면 당신의 동료들과 함께 가십시오. 나는 나의 동료를 찾겠습니다.

이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겸손과 진실에서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거짓 속에 살았더라도 진실 속에서 사는 것은 당신과 나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이롭습니다. 오늘은 이 말이 거칠게 들립니까? 머지않아 당신도 나처럼 자기 본성이 명하는 것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을 따르면 마지막에는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친구들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다. 그렇다. 하지만 그들의 기분을 지켜주려고 내 자유와 힘을 팔 수는 없다. 게다가 누구에게나 이성을 되찾는 순간이 있다. 그때 사람들은 절대적 진실의 영역을 바라본다. 그러면 나를 옳다고 인정하고 자신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대중은 유행하는 기준을 거부하면 모든 기준을 거부하고 법도 없이 산다고 생각한다. 대담한 쾌락주의자는 자기 범죄에 철학이라는 금칠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의식의 법은 남는다.

우리가 용서를 구할 고해실은 둘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의무를 다했는지 돌아볼 수도 있고, 자기 마음에 비친 모습으로 스스로를 씻을 수도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촌과 이웃, 마을과 고양이와 개에게 해야 할 일을 다했는지, 그중 누가 나를 나무랄 수 있는지 살펴보라. 아니면 이렇게 바깥에 비친 기준을 무시하고 자기 앞에서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 내게는 나만의 엄격한 요구와 완전한 원이 있다.

세상이 의무라고 부르는 많은 일을 그 원은 의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원에 진 빚을 다 갚을 수 있다면 유행하는 규범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이 법이 느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 하루만 그 명령을 지켜보라.

인간이 흔히 따르는 동기를 떨쳐버리고 자기 자신을 감독자로 믿은 사람에게 이 법은 실로 신적인 무언가를 요구한다. 마음은 높고 의지는 충실하며 시야는 맑아야 한다. 진정으로 자기 자신에게 교리와 사회와 법이 되어야 한다. 단순한 목적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철의 필연이 미치는 것만큼 강하게 그를 붙들어야 한다.

사람들이 특별히 ‘사회’라고 부르는 것의 현재 모습을 살펴보면 이런 윤리가 왜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사람의 힘줄과 심장이 빠져나간 듯하고, 우리는 겁 많고 낙담해 훌쩍거리는 사람이 되었다. 진실과 운명과 죽음과 서로를 두려워한다.

우리 시대에는 위대하고 온전한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삶과 사회를 새롭게 할 남녀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기 필요조차 채우지 못한 채 파산해 있다. 실천할 힘에 비해 지나치게 큰 야심을 품고 밤낮으로 기대고 구걸한다.

우리 살림은 구걸이고, 예술과 직업과 결혼과 종교도 우리가 고른 것이 아니다. 사회가 대신 골랐다. 우리는 응접실의 군인이다. 힘이 태어나는 거친 운명의 전투를 피한다.

젊은이가 첫 사업에서 실패하면 용기를 모두 잃는다. 젊은 상인이 실패하면 사람들은 그가 망했다고 말한다.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대학에서 공부하고도 1년 안에 보스턴이나 뉴욕과 그 근교에서 자리를 얻지 못하면, 친구들과 본인은 낙담해 평생 불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반면 뉴햄프셔나 버몬트에서 온 건장한 젊은이는 여러 일을 차례로 해본다. 짐수레를 몰고 농사를 짓고 행상하며, 학교를 운영하고 설교하고 신문을 편집하고 의회에 가고 마을 하나를 사들인다. 해마다 다른 일을 해도 고양이처럼 언제나 발로 착지한다. 그는 이런 도시의 인형 백 명보다 값지다.

자기 시대와 나란히 걷고, ‘전문직을 공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삶을 미루지 않고 이미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기회가 하나가 아니라 백 개다.

한 스토아 철학자가 인간의 자원을 열어 보이며 말하게 하라. 사람은 기대어 흔들리는 버드나무가 아니고, 홀로 떨어져 나올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자기를 믿어보면 새로운 힘이 나타난다고. 인간은 말씀이 몸이 된 존재이고 여러 나라를 치유하려고 태어났다고. 우리가 그를 불쌍히 여긴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자기 자신에게서 행동하는 순간 법과 책과 우상과 관습을 창밖으로 던지면, 우리는 더는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감사하며 존경하게 된다. 이런 가르침을 주는 이는 인간의 삶을 다시 빛나게 하고 그 이름을 모든 역사에 사랑스럽게 남길 것이다.


2026년 스타트업에서 읽기

혼자 선다는 것은 관계를 끊는 일이 아니라 판단을 외주 주지 않는 일이다. 에머슨도 고립은 물리적 단절이 아니라 ‘정신적 상승’이어야 한다고 쓴다. 그가 가족의 기분보다 자유를 앞세운 문장은 학대적 관계를 벗어날 힘을 주지만,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는 면허가 될 수도 있다. 상대의 승인을 구하지 않아도 결과에 대한 책임과 돌봄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매사추세츠 콩코드의 에머슨 자택을 그린 19세기 판화
매사추세츠 콩코드의 에머슨 자택. 그는 이 집과 마을에 뿌리내린 채 독립과 고독을 썼다.C. H. Copeland, 1875 · Library of Congress · No known restrictions on public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