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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ATIONS 020 · 10

읽고 나서 — AI에게 사실을 맡기고 무엇을 상상할 것인가

와일드의 역설은 읽는 동안은 우아하고, 책을 덮은 뒤에는 불편하다.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면 만드는 사람은 단지 세상을 기록하는 관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얼굴을 성공한 창업자의 얼굴로 그리는지, 어떤 노동을 효율적이라고 부르는지, 어떤 미래를 정상으로 보여 주는지가 실제 사람의 욕망과 행동을 바꾼다.

AI가 이 책임을 없애 주지는 않는다. 모델은 수많은 과거의 형식을 압축해 다음 결과를 제안한다. 결과가 매끈하다고 해서 판단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무엇을 반복할지, 무엇을 버릴지, 누구의 경험이 빠졌는지, 이 형식이 현실에 어떤 행동을 불러올지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만드는 사람에게 남는다.

사실의 기계와 상상의 기계

생성형 AI를 사실의 기계로 착각하면 문제가 생긴다. 문장 형태의 답을 잘 만든다는 능력과 사실을 검증하는 능력은 같지 않다. 이름, 날짜, 수치, 인용, 법률, 출처는 원자료로 되돌아가 확인해야 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표시하고, 추정은 추정이라고 밝혀야 한다.

반대로 AI를 상상의 기계로만 쓰면 결과가 쉽게 평균으로 돌아간다. “세련된 스타트업 사이트”, “감성적인 책 표지”, “전문가다운 글” 같은 지시는 이미 너무 많이 반복된 양식을 불러온다. 모델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거절할지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은 작업은 두 기계를 분리한다. 사실은 증거와 연결하고, 상상은 목적과 취향에 연결한다. 출처가 붙은 원자료와 발명한 비전을 같은 문단에 넣더라도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 독자가 알 수 있게 한다.

모방에서 양식으로

와일드는 위대한 화가가 실제 사람을 베끼지 않고 하나의 유형을 발명한다고 했다. 오늘의 제품에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새로운 기능 하나보다 사용자가 자기 일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제품이 오래 남는다. 스프레드시트를 더 빠르게 만든 것이 아니라 ‘데이터베이스처럼 일하는 팀’을 만들고, 메신저를 편하게 한 것이 아니라 ‘채널에서 공개적으로 일하는 조직’을 만든다.

그런 형식은 경쟁사 화면을 모아 평균을 내서는 나오기 어렵다. 먼저 어떤 행동을 가능하게 하고 싶은지, 사용자가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보게 하고 싶은지 정해야 한다. 그 뒤에야 인터페이스와 문장, 가격과 운영 방식이 한 방향으로 모인다.

아름다운 거짓말의 책임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말하는 것은 창업과 예술의 공통된 일이다. 그러나 미래를 그리는 능력이 크수록 사실을 다루는 규율도 단단해야 한다. 허구를 사실처럼 파는 순간 비전은 기만이 된다. 사실만 늘어놓고 아무런 방향도 제시하지 않으면 정보는 되지만 창작은 되지 못한다.

와일드의 ‘거짓말’을 오늘 되살리는 방법은 사실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에는 집요하게 정직하고, 아직 없는 것에는 놀랄 만큼 대담해지는 것이다. AI가 과거의 형식을 끝없이 복제하는 시대에 인간이 맡아야 할 일은 어쩌면 그 두 태도를 한 작업 안에 함께 붙들어 두는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