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열기

FOUNDATIONS 015 · 02

1부 법보다 먼저 양심

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라는 제목과 첫 문단이 인쇄된 1849년 미학 논문집 189쪽
1849년 《미학 논문집》에 실린 초출 첫 면. 당시 제목은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이었다.Æsthetic Papers, 1849 · Internet Archive · Public domain

나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다”라는 격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말이 지금보다 훨씬 빠르고 체계적으로 실행되기를 바란다. 끝까지 밀고 나가면 마침내 내가 또한 믿는 이런 말에 이른다. “전혀 다스리지 않는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다.” 사람들이 그럴 준비가 되었을 때, 그들은 그런 정부를 갖게 될 것이다.

정부는 기껏해야 하나의 방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부는 대체로 쓸모가 없고, 모든 정부가 때로는 쓸모가 없다. 상비군을 두고 제기된 수많고 중대한 반론은 마땅히 받아들여져야 하며, 결국 상설 정부에도 똑같이 제기될 수 있다. 상비군은 상설 정부의 한 팔에 불과하다. 정부는 국민이 자기 뜻을 실행하려고 선택한 방식일 뿐인데도, 국민이 그 정부를 통해 행동하기 전에 얼마든지 악용되고 타락할 수 있다. 지금 벌어지는 멕시코 전쟁을 보라.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이 상설 정부를 도구로 삼아 벌인 전쟁이다. 처음부터 물었다면 국민은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미국 정부란 대체 무엇인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전통이면서, 흠집 하나 없이 후세에 전해지려고 애쓰지만 매 순간 완전성을 조금씩 잃어 가는 것이 아닌가. 정부에는 살아 있는 한 사람의 생명력과 힘도 없다. 한 사람이 정부를 자기 뜻대로 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정부는 나무로 만든 총과 같다. 언젠가 국민이 그것을 진짜 총처럼 서로에게 겨누어 쓴다면 틀림없이 산산조각 날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들은 정부라는 관념을 만족시키려고 어떤 복잡한 기계든 갖춰 놓고 그 요란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정부는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얼마나 성공적으로 남에게 속고, 심지어 스스로를 속이는지를 보여 준다. 그 솜씨만큼은 훌륭하다고 우리 모두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정부가 스스로 어떤 사업을 진전시킨 적은 없다. 정부가 재빨리 길을 비켜 준 덕분에 일이 진전됐을 뿐이다. 정부가 나라를 자유롭게 지키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서부를 개척한 것도 아니고, 사람을 교육한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이룬 것은 미국인에게 고유한 기질이 해낸 일이다. 정부가 때때로 앞길을 가로막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조금 더 해냈을 것이다.

정부란 사람들이 서로를 내버려 두는 데 성공하려고 만든 방편이다. 앞에서 말했듯 정부가 가장 유용할 때, 피치자는 가장 많이 내버려진다. 무역과 상업이 고무처럼 탄력적이지 않았다면 입법자들이 끊임없이 길에 놓는 장애물을 결코 뛰어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을 의도가 아니라 행동의 결과만으로 판단한다면 철로에 장애물을 놓는 악당과 한 부류로 묶어 처벌해도 마땅하다.

그러나 정부가 없어야 한다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시민으로서 실용적으로 말하겠다. 내가 요구하는 것은 당장 정부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당장 더 나은 정부를 만들자는 것이다. 각자 어떤 정부라야 존중할 수 있는지 밝히게 하라. 그것이 그런 정부를 얻는 첫걸음이다.

권력이 국민의 손에 들어간 뒤 다수가 통치하도록 허용되고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실질적인 이유는 다수가 옳을 가능성이 더 커서도, 그것이 소수에게 가장 공정해서도 아니다. 다수가 물리적으로 더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다수결로 정하는 정부는 인간이 이해하는 범위에서조차 정의 위에 설 수 없다.

옳고 그름을 다수가 사실상 결정하지 않고 양심이 결정하는 정부는 불가능한가. 다수는 편의의 원리가 적용되는 문제만 결정할 수 없을까. 시민은 단 한순간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자기 양심을 입법자에게 넘겨야 하는가. 그렇다면 사람마다 양심을 가진 까닭이 무엇인가.

나는 우리가 신민이기 전에 먼저 인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보다 옳음에 대한 존경을 기르는 편이 바람직하다. 내가 정당하게 떠맡을 수 있는 유일한 의무는 언제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기업에는 양심이 없다는 말은 충분히 옳다. 그러나 양심 있는 사람들이 모인 기업은 양심을 가진 기업이다.

법이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롭게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법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선의의 사람들마저 날마다 불의의 대리인이 된다. 법을 지나치게 존중할 때 흔히 생기는 자연스러운 결과를 보라. 대령, 대위, 하사, 사병과 화약 나르는 아이들까지 한 줄로 늘어서 언덕과 골짜기를 질서정연하게 지나 전쟁터로 간다. 그들의 의지와 상식과 양심에 거슬러 행진한다. 그러니 길은 몹시 가파르고 심장은 세차게 뛴다. 그들은 자기가 끼어든 일이 저주받을 짓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모두 평화롭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인가. 과연 인간인가. 아니면 권력을 쥔 비양심적인 누군가에게 봉사하는 작고 이동 가능한 요새와 탄약고인가. 해군 조선소에 가서 해병을 보라. 미국 정부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인간, 그 검은 마술로 인간을 변하게 한 모습을 보라. 인간성의 그림자이자 희미한 기억일 뿐인 사람, 산 채로 똑바로 세워 놓았지만 이미 무기 아래 묻혔고 장례 행렬까지 갖춘 사람이다. 비록,

“북소리도 장송의 곡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그의 시신을 성벽으로 서둘러 옮길 때,
병사 누구도 작별의 총을 쏘지 않았다.
우리 영웅을 묻은 무덤 위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식으로 국가를 섬긴다. 주로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되어 몸으로 복무한다. 이들이 상비군과 민병대, 교도관과 경찰, 치안대다. 대개는 판단력이나 도덕 감각을 자유롭게 전혀 쓰지 않는다. 스스로를 나무와 흙과 돌의 수준에 놓는다. 같은 목적이라면 나무로 된 인간을 만들어도 충분히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허수아비나 흙덩이보다 더 존경받을 까닭이 없다. 말이나 개와 같은 종류의 가치만 지닌다. 그런데도 보통은 이들을 훌륭한 시민이라 부른다.

입법자, 정치가, 변호사, 목사, 공무원 같은 사람들은 주로 머리로 국가를 섬긴다. 이들은 도덕적인 구분을 좀처럼 하지 않으므로 자기도 모르게 신을 섬길 때만큼이나 악마를 섬길 가능성이 있다. 영웅, 애국자, 순교자, 진정한 의미의 개혁가와 인간 같은 아주 소수만이 양심으로도 국가를 섬긴다. 그래서 이들은 대부분 국가에 저항할 수밖에 없고, 국가는 보통 그들을 적으로 다룬다.

현명한 사람은 한 인간으로서만 쓸모 있기를 원한다. 자신이 “진흙”이 되어 “바람 드는 구멍을 막는” 데 쓰이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은 적어도 죽은 뒤의 먼지에 맡겨 둘 것이다.

“나는 소유물이 되기에는 너무 고귀하게 태어났다.
명령 아래 부림 받는 종속물이 되거나,
이 세상 어떤 주권국가에도
쓸모 있는 하인과 도구가 되지 않으리라.”

자기 전부를 이웃에게 내어 주는 사람은 쓸모없고 이기적으로 보인다. 반면 일부만 내어 주는 사람은 은인이자 자선가라는 말을 듣는다.


스타트업 적용 노트 — 2026

복종은 업무가 아니다

소로의 질문은 회사 안에서도 날카롭다. 직함과 절차는 판단을 대신하지 못한다. “결재가 났다”, “대표가 지시했다”, “업계가 다 한다”는 말은 행동의 원인을 설명할 뿐 옳음을 증명하지 않는다. 개인정보를 속여 모으거나, 위험을 감추거나, 현장의 나쁜 소식을 위로 올리지 않는 순간 구성원은 시스템의 부품이 된다.

다만 개인 양심만으로 조직의 모든 충돌을 해결할 수도 없다. 서로 다른 양심이 부딪힐 때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공개된 원칙, 증거, 이의 제기 통로, 보복 방지 장치다. “양심 있는 사람들의 기업”은 좋은 사람을 채용했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사람이 거절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 때 비로소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