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오래 관찰하면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게 될까.
윌리엄 제임스의 대답은 냉정하다. 관찰자는 당사자가 아는 현실의 일부를 보지 못한다. 밖에서 보이는 조건이 초라하고 행동이 비합리적이어도, 그 삶을 안에서 움직이는 기쁨과 안전과 승리의 기억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왜 타인의 삶을 보지 못하는가》는 1899년 《Talks to Teachers on Psychology; and to Students on Some of Life’s Ideals》에 실린 〈On a Certain Blindness in Human Beings〉의 전문 번역이다. 같은 책의 습관론은 FOUNDATIONS 025 《습관의 법칙》으로 먼저 출간했다.

왜 지금 이 책인가
오늘의 조직은 이전보다 사람을 더 많이 관찰한다. 클릭, 체류 시간, 업무 기록, 회의 녹취, 고객 인터뷰가 데이터가 된다. 생성형 AI는 수천 건의 행동을 요약하고 사용자의 의도를 그럴듯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더 많은 기록이 관찰자의 한계를 없애지는 않는다. 제임스가 말한 눈멂은 정보 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에 에너지를 쓰려면 다른 종류의 기쁨에 마음을 닫게 되는, 실천적 존재의 구조적인 한계다.

이 책이 요구하는 것
타인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을 때 함부로 무의미하다고 판정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해를 끼치지 않는 낯선 행복을 관용하고, 누구에게도 진실 전체와 선 전체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원문에는 19세기 미국 지식인이 아프리카와 원주민·전통 사회를 부른 차별적 명칭과 문명 발전을 일직선으로 놓은 표현이 있다. 이 판본은 인용과 논증을 삭제하지 않되 현대 명칭으로 바꾸고, 그 시선의 한계를 본문과 판본 해설에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