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의 글은 완전한 공감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타인의 ‘황금 방’에 들어가는 열쇠가 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관찰자에게 더 현실적인 규율을 준다.
보지 못했다면 가치가 없다고 결론 내리지 말라.
고객과 동료를 바라볼 때 다음 질문을 남겨 보자.
밖에서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행동, 산출물, 시간, 비용처럼 기록할 수 있는 흔적을 먼저 분리한다. 그것은 사실일 수 있지만 삶의 의미 전체는 아니다.
당사자가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그 행동이 지키는 기쁨, 안전, 자부심, 기억은 무엇인가.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스티븐슨의 소년에게 랜턴은 쓸모없지만 그 쓸모없음 속에 기쁨의 전부가 있었다.
누구의 척도로 무의미하다고 했는가
효율, 성장, 세련됨, 생산성 가운데 어느 기준을 절대적인 것으로 사용했는가. 그 기준이 유용한 상황과 보지 못하게 만드는 가치를 함께 적어 보라.
실제로 해를 주는가, 그저 낯선가
제임스의 관용은 피해를 방치하라는 말이 아니다. 해를 끼치지 않는 다른 방식에 손을 대지 말라는 절제다. 위험과 낯섦을 구분하지 못하면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기 취향으로 다른 삶을 고친다.
당사자도 자기 삶의 모든 진실을 아는 것은 아니고, 관찰자도 고유한 위치에서 더 잘 보는 것이 있다.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절대적 우위가 아니다. 각자가 보는 부분을 들고 만나되, 자신의 시야를 세계 전체로 착각하지 않는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