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을 품고 기차로 버펄로를 향해 달렸다.
도시 근처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철골 구조물의 아찔한 가장자리에 매달려 일하는 노동자가 보였다. 그 광경이 갑자기 정신을 차리게 했다.
번쩍이는 깨달음과 함께, 내가 조상에게 물려받은 순전한 눈멂에 빠져 먼 관찰자의 눈으로 삶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영웅성과 고문대에 놓인 인간 본성의 광경을 원하면서도 주변에 펼쳐진 거대한 영웅의 들판을 보지 못했다. 지금 이곳에 살아 있는 영웅성을 놓쳤다.
영웅은 소설 속에서처럼 죽어 방부 처리되고, 이름표와 의상을 갖춘 모습으로만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눈앞, 노동하는 사람의 일상에 영웅성이 있었다.
용기는 전쟁터에만 있지 않다
영웅성을 찾아야 할 곳은 쇠붙이 부딪는 전투와 절망적인 행군만이 아니다. 오늘 올라가는 모든 철교와 내화 건물에도 있다.
화물열차, 배의 갑판, 가축 시장과 광산, 뗏목, 소방관과 경찰의 현장에서 용기는 끊임없이 요구되며 공급은 한 번도 끊기지 않는다.
일 년 내내 어디에선가 인간 본성이 극한에 놓인다.
낫과 도끼, 곡괭이와 삽을 쓰는 곳마다 땀 흘리고 아파하며 오래 계속되는 긴장 속에서 참는 힘을 끝까지 끌어내는 인간이 있다.
이상화되지 않은 영웅적 삶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뜨자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듯했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삶을 향해 전에는 느껴 보지 못한 거대한 공감의 물결이 영혼을 채웠다.
굳은살 박인 손과 때 묻은 피부를 가진 미덕만이 고려할 만큼 진짜이고 생생한 미덕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미덕은 모두 자세를 잡는다. 장식이나 인정을 바라지 않고 완전히 무의식적이고 단순한 미덕은 이것뿐이었다.
이들이 우리의 병사이고, 우리를 떠받치는 사람이며, 우리 삶의 부모라고 생각했다.
도시의 화려함을 등에 진 사람들
여러 해 전 빈에서도 비슷한 경외와 존경을 느낀 적이 있다.
시골에서 하루 장사를 하러 시장에 온 농촌 여성들을 보았다. 많은 이가 나이 들고, 햇볕에 마르고 갈색으로 그을리고 주름졌다. 머릿수건과 짧은 치마를 두르고 앙상한 다리에 두꺼운 양모 양말을 신었다.
반짝이는 큰길을 무겁게 걸으며 좌우를 보지 않았다. 해야 할 일에 몰두했고, 아무것도 부러워하지 않았으며, 겸손하고 멀게 느껴졌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들은 노동으로 지친 등에 도시의 찬란함과 타락을 이루는 구조 전체를 지고 있었다.
들판에서 끊임없이 일하고도 보상받지 못한 그들의 노동이 없었다면 그 화려함 가운데 무엇이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도 같다. 보스턴 같은 도시가 감사와 존경의 기념비를 세워야 할 대상은 장군과 시인이 아니라 지하철을 만든 이탈리아와 헝가리 노동자라고 생각했다.
나는 톨스토이와 비슷한 감정 속으로 들어갔다. 관습적으로 고상하다고 통하는 모든 것을 혐오하고, 꾸미지 않은 인간의 용기와 인내와 친절과 말없는 성실함을 유일하게 신성한 것으로 받드는 감정이었다.
우리의 톨스토이는 어디 있는가.
이 진실을 미국인의 가슴에 와닿게 하고, 더 나은 통찰로 채우고, 스스로 문화라고 부르는 비참한 교양이 먹고사는 가짜 문학적 낭만주의에서 떼어 놓을 사람은 어디 있는가.
신성함은 사방에 있지만 문화는 너무 굳어 그것을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하월스나 키플링을 이 사명에 동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들도 조상의 눈멂에 너무 깊이 빠져, 노동자의 삶이 품은 내적 기쁨과 의미를 드러낼 만큼 인간적이지 못한가.
노동자로 태어나고 자라 노동자로 살면서 하늘의 은총으로 문학적 목소리까지 얻은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가.
지위 아래에 있는 공통의 미덕
그날 나는 시야가 넓어졌고, 삶을 향한 종교적 통찰이 커졌다고 불러도 좋을 감각을 얻었다.
신의 눈에는 사람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사회적 지위와 지성, 교양, 청결함, 옷차림의 차이, 그 밖의 온갖 희귀함과 예외가 사실상 사라질 만큼 작을 것이다.
남는 것은 공통의 사실이다.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의 그릇으로 이곳에 있다. 저마다 고유한 어려움에 갇혀 있고, 끌어낼 수 있는 용기와 선함을 써서 각자 그것과 싸워야 한다.
용기와 인내와 친절을 발휘하는 일이 전체에서 의미 있는 부분이다. 지위의 차이는 땅속에 있는 미덕이 효과를 드러낼 표면의 모양을 다양하게 만드는 방식일 뿐이다.
그렇다면 가장 깊은 인간의 삶은 어디에나 있고 영원하다. 특정한 개인에게만 있는 특성이 있다면 표면의 구경거리에 달린 장신구와 장식에 불과하다.
스타트업 적용 노트 — 2026
조직은 발표하고 결정하는 사람을 쉽게 기억하지만, 서비스를 실제로 버티게 하는 반복 노동은 배경으로 밀어낸다. 장애를 막은 점검, 고객의 분노를 받아 낸 응대, 새벽에 끝난 배포는 결과가 정상일수록 보이지 않는다.
‘영웅’이라는 말로 위험한 노동을 낭만화하고 정당한 보상과 안전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제임스의 발견은 고통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불되고 있는 용기와 인내를 보지 못한 관찰자의 시선을 고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