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옛것을 흔들지 않으려는 이런 경제적 성향이 우리가 ‘완고한 구식 태도’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어진다.
기존 믿음의 체계를 크게 재배열해야 하는 새 아이디어나 사실은 무시되거나 마음에서 밀려난다. 궤변을 써서라도 기존 체계와 조화롭게 맞도록 다시 해석할 수 없을 때 특히 그렇다.
중년의 사람과 토론해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논리로 상대를 압도하고 주장을 인정하게 만든다. 그런데 일주일 뒤 만나 보면 대화를 한 적조차 없는 것처럼 옛 의견을 굳건하고 한결같이 지키고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구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젊은 구식도 있다. 완고함은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시작된다. 말하기가 조금 두렵지만, 대다수 사람에게서는 스물다섯 살쯤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살아 있는 마음을 열여섯 칸에 넣을 수는 없다
몇몇 책은 통각의 여러 형태를 성문화하고, 교육자가 좋아할 만한 표 형식으로 세부 항목에 번호와 꼬리표를 붙인다.
내가 읽은 어느 책은 서로 다른 통각 유형을 열여섯 가지로 나눴다. 연상적 통각, 포섭적 통각, 동화적 통각을 비롯해 열여섯 가지가 이어졌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것은 심리학을 줄곧 따라다닌 노골적인 인위성을 보여 줄 뿐이다. 특히 ‘교사용’이라고 광고하는 책에서 오래 살아남은 인위성이다.
흐르는 마음의 삶을 암송 수업에서 발표하기 좋은 꾸러미로 나누고, 실제 삶에서는 별개의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과정’으로 잘게 썬 뒤 긴 그리스어와 라틴어 이름을 붙인다.
통각의 여러 유형을 분류한다면 열여섯에서 멈추고 천육백까지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들어오는 경험에 한 개인의 마음이 반응할 수 있는 방식만큼 통각의 유형도 많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코 스프레이로 보는 아이
얼마 전 버펄로에서 어떤 부인의 손님으로 머물렀다. 그 부인은 2주 전 일곱 살 난 아들을 처음 나이아가라 폭포에 데려갔다.
아이는 말없이 광경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장엄함에 압도되어 말을 잃었다고 생각한 어머니가 물었다.
“얘야, 어때?”
아이가 한 대답은 이것뿐이었다.
“저게 제가 코에 뿌리는 스프레이랑 같은 종류예요?”
그것이 아이가 그 장관을 통각한 방식이었다. 원한다면 이를 하나의 특별한 유형이라고 주장하고 그리스어를 동원해 ‘비강 치료적 통각’이라고 불러도 된다. 그래 봐야 몇몇 책의 저자보다 특별히 더 사소하거나 인위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같은 사건도 가진 분류에 따라 달라진다
아동 연구서를 쓴 페레스는 개인의 경험 단계에 따라 같은 현상을 얼마나 다르게 통각할 수 있는지 좋은 사례를 들었다.
어느 집에 불이 났다. 가족의 갓난아이는 밖에 서 있는 유모의 품에서 불길을 보며 그 눈부심에 가장 활기찬 기쁨만 드러냈다.
그러다 소방차의 종소리가 다가오자 아이는 발작에 가까운 공포에 빠졌다. 알다시피 어린아이에게 낯선 소리는 대단히 무섭다.
아이의 부모는 불타는 집과 소방차를 각각 얼마나 정반대의 방식으로 통각했겠는가.
같은 사람도 이어 오던 생각의 방향이나 감정 상태에 따라 같은 인상을 때마다 아주 다르게 받아들인다. 소송의 한쪽이 고용한 의학 또는 공학 전문가는 반대편이 고용했을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실의 해석을 두고 사람들이 팽팽하게 맞설 때, 그것은 대개 사용할 수 있는 분류 항목이 너무 적다는 뜻이다. 논쟁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양쪽 해석 가운데 어느 것도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경우가 많다.
양쪽 모두 가장 손쉬우면서 기존 생각을 가장 적게 흔드는 개념 아래로 대상을 억지로 밀어 넣는다. 열에 아홉은 개념의 재고를 늘리거나 그 현상을 위한 전혀 새로운 이름을 만드는 편이 낫다.
생물학에서는 특정 단세포 생물이 동물인지 식물인지 끝없이 논쟁하곤 했다. 헤켈이 ‘원생생물’이라는 새로운 통각의 이름을 내놓자 논쟁은 끝났다.
법정은 제정신과 정신 이상 사이의 제3 범주를 인정하지 않는다. 제정신이면 벌하고 정신 이상이면 무죄로 놓아준다. 같은 사건을 놓고 반대 의견을 내놓을 전문가 두 명을 찾는 일은 대개 어렵지 않다.
그동안 자연은 의사들의 구분보다 더 미묘하다. 방 하나가 절대적으로 어둡거나 밝은 것은 아니다. 시계공이 일하기에는 어두우면서도 밥을 먹거나 놀기에는 충분히 밝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어떤 목적에는 온전하고 다른 목적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자유롭게 생활하기에는 충분하지만 재산을 관리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기토 재판 무렵 널리 쓰이게 된 ‘괴짜’라는 말은 이 제3 범주의 필요를 채웠다. 프랑스어권 등에서 쓰이던 ‘불균형자’, ‘유전성 퇴행자’, ‘정신병질적 대상’ 같은 말도 같은 필요에 응해 생겼다.
스타트업 적용 노트 — 2026
“성공이냐 실패냐”, “기능이냐 버그냐”, “직원이냐 프리랜서냐”처럼 둘 중 하나만 고르게 하는 분류가 현실을 잘라낼 때가 있다. 양쪽이 같은 증거를 들고도 결론을 바꾸지 않는다면 증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선택 가능한 이름이 부족해서일 수 있다.
논쟁의 두 입장을 절충하기 전에 어느 쪽에도 들어맞지 않는 제3의 범주가 필요한지 살펴보라. 새 이름 하나가 해결책을 주지는 않아도, 전에는 보이지 않던 문제를 함께 볼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