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말하는 게으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학교와 시장, 직업의 규정표가 가치 있다고 인정하지 않는 일을 하는 시간이다. 걷고,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구경하고, 자기 생각이 생길 때까지 가만히 있는 일도 그 안에 들어간다.
《게으름을 변호하며》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스물여섯 살이던 1877년 7월 《Cornhill Magazine》에 처음 발표했다. 1881년 평론집 《Virginibus Puerisque and Other Papers》에 수록됐고, 이 판본은 1916년 토머스 B. 모셔 판을 바탕으로 만든 Project Gutenberg 대본을 사용했다.

왜 지금 이 책인가
성과를 측정하는 도구가 촘촘해질수록 측정되지 않는 시간은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메신저 상태가 오프라인이면 이유가 필요하고, 빈 일정에는 회의가 들어가며, 산책과 대화와 생각은 산출물이 나온 뒤에야 가치가 있었다고 인정받는다.
스티븐슨은 이런 세계가 낯설지 않았다. 돈을 향한 경주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은 달리는 사람의 성취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비난받는다. 학교 밖에서 배우는 사람은 빈둥거린다고 불리고, 직업에서 손을 떼는 순간 할 일을 잃는 사람은 근면하다는 칭찬을 받는다.
그의 반론은 휴가를 더 주자는 복지 제안보다 넓다.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성공이라고 부를지 스스로 결정할 능력, 우연한 경험을 배움으로 받아들이는 능력,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무급의 역할을 가치로 인정하는 능력을 회복하자는 주장이다.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
스티븐슨에게 게으름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의 특권이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 장시간 노동해야 했던 노동자와 여성의 가사·돌봄 노동은 글의 중심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굶주림과 구빈원이 게으름의 남용을 막아 준다는 농담은 빈곤을 안전장치처럼 취급한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일하기 싫으면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개인의 처세로만 읽으면 부족하다. 누가 여백을 선택할 수 있고, 누가 다른 사람의 여백을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일을 하는지 함께 물어야 한다.
원문은 장 구분이 없는 한 편의 에세이다. 모바일 독서를 위해 논지에 따라 네 부로 나눴지만 문단의 순서나 사례를 바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