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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ATIONS 021 · 03

2부 학교 밖에서 배우는 것

사람은 젊을 때 상당히 게을러야 한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말이다. 가끔 매콜리 경 같은 이는 학교에서 받은 명예를 품고도 온전한 정신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년은 훈장을 얻느라 너무 비싼 값을 치러, 나중에는 쓸 탄약 하나 남지 않은 파산 상태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다.

소년이 스스로를 교육하는 동안이든 남이 자신을 교육하도록 견디는 동안이든 마찬가지다. 옥스퍼드에서 존슨에게 이렇게 말한 노신사는 틀림없이 아주 어리석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젊은이, 지금 책에 열심히 매달려 지식을 쌓게. 나이가 들면 책을 파고드는 일이 고역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

그 노신사는 안경을 써야 하고 지팡이 없이는 걷지 못할 나이가 되면 독서 말고도 수많은 일이 고역으로 변하고, 적지 않은 일은 아예 불가능해진다는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다.

책은 책대로 훌륭하다. 그러나 삶을 대신하기에는 너무나 핏기 없는 물건이다. 현실의 온갖 소란과 매력에 등을 돌린 채 샬롯의 아가씨처럼 거울만 들여다보며 앉아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래된 일화가 일러 주듯, 너무 열심히 읽는 사람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거의 남지 않는다.

자신의 교육을 돌아보라. 생생하고 충만하며 많은 것을 가르쳐 준 무단결석의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교실에서 잠과 깨어 있음 사이를 오갔던 흐릿한 수업 몇 시간을 지우고 싶을 것이다.

나도 살면서 꽤 많은 강의를 들었다. 팽이가 도는 것은 ‘운동 안정성’의 사례라는 사실을 아직 기억한다. 영구소작권은 질병이 아니고, 낙수로 인한 재산권은 범죄가 아니라는 것도 기억한다. 이런 과학의 부스러기와 기꺼이 헤어지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업을 빼먹고 거리에서 주운 다른 잡동사니만큼 귀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디킨스와 발자크가 가장 사랑한 학교이자, 해마다 ‘삶의 겉모습을 읽는 학문’의 이름 없는 대가를 수없이 길러 내는 위대한 교육 장소에 관해 길게 말할 때는 아니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소년이 거리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그에게 배울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무단결석한 소년이 언제나 거리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정원이 늘어선 교외를 지나 들판으로 갈 수 있다. 시냇물 위 라일락 덤불 한 곳을 골라 앉아, 물이 돌을 두드리는 리듬에 맞춰 파이프를 끝없이 피울 수도 있다. 덤불에서는 새가 노래할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다정한 사색에 잠기고 사물을 새로운 각도에서 보게 될지 모른다. 이것이 교육이 아니라면 무엇이 교육인가?

분류표 밖의 교육

‘세속의 현자’ 씨가 그런 소년에게 말을 건다고 상상해 보자. 대화는 아마 이럴 것이다.

“이보게 젊은이,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그저 편히 쉬고 있습니다, 어르신.”

“지금은 수업 시간이 아닌가? 지식을 얻으려면 책에 열심히 매달려야 하지 않겠나?”

“아닙니다. 외람되지만 저도 이런 방식으로 배움을 좇고 있습니다.”

“배움이라고! 대체 어떤 방식으로? 수학인가?”

“아닙니다.”

“형이상학인가?”

“그것도 아닙니다.”

“어떤 언어인가?”

“언어도 아닙니다.”

“기술을 배우는가?”

“기술도 아닙니다.”

“그럼 대체 무엇인가?”

“실은 제가 곧 순례를 떠날 때가 올지도 몰라서, 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보통 무엇을 하는지 알아 두려 합니다. 길에서 가장 험한 늪과 덤불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지팡이가 가장 쓸모 있는지도요. 게다가 이 물가에 누워 제 스승이 ‘평화’ 또는 ‘만족’이라고 부르라고 가르친 교훈을 가슴 깊이 배우는 중입니다.”

그러자 세속의 현자 씨는 격분했다. 험악한 얼굴로 지팡이를 흔들며 소리쳤다.

“배움이라고! 그런 악당은 모조리 교수형 집행인에게 맡겨 채찍질해야 해!”

그리고는 칠면조가 깃털을 펼치듯 풀 먹인 넥타이를 바스락거리며 길을 떠났을 것이다.

이 현자의 견해가 바로 세상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어떤 사실이 학문의 분류표에 들어맞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것을 사실이 아니라 한낱 잡담이라 부른다. 탐구라면 인정받는 방향과 그럴듯한 이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탐구가 아니라 빈둥거림이며, 구빈원도 아까운 인간이 된다. 모든 지식이 우물 밑바닥이나 망원경의 먼 끝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생트뵈브는 나이가 들면서 모든 경험을 하나의 거대한 책으로 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기 전 몇 년 동안 읽어야 할 책 말이다. 그에게는 제20장인 미분학을 읽든, 제39장인 정원에서 악단의 연주를 듣든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눈을 뜨고 보고 귀를 기울여 들으며 내내 얼굴에 미소를 품는 영리한 사람은 영웅적으로 밤을 새우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참된 교육을 얻는다. 형식적이고 고된 학문의 정상에도 차갑고 메마른 지식은 분명 있다. 하지만 따뜻하게 고동치는 삶의 사실은 우리 사방에 널려 있고, 수고라고는 바라보는 일뿐이다.

다른 사람이 일주일이 가기 전에 절반은 잊어버릴 단어 더미로 기억을 채우는 동안, 무단결석한 소년은 정말 쓸모 있는 기술을 배울 수도 있다. 바이올린을 켜고, 좋은 시가를 알아보고, 온갖 사람과 때에 맞게 편안히 이야기하는 법 같은 것 말이다.

“책에 열심히 매달려” 정식 학문의 한 분야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 가운데 적지 않은 이가 서재를 나올 때는 늙은 올빼미 같은 얼굴을 한다. 삶의 더 좋고 밝은 부분에서는 메마르고, 굳어 있고, 소화불량에 시달린다. 큰돈을 벌고도 끝까지 교양 없고 딱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도 많다.

그사이 그들과 함께 삶을 시작했던 게으른 사람이 걸어간다. 실례지만 그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자기 몸과 기분을 돌볼 시간이 있었고, 몸과 마음 모두에 가장 좋은 바깥 공기 속에서 오래 지냈다. 위대한 책의 심오한 대목까지 읽지는 못했어도 여기저기 펼쳐 훑으며 훌륭하게 써먹었다.

학생은 히브리어 어근 몇 개를, 사업가는 동전 몇 닢을 내어놓고 이 게으른 사람이 지닌 넓은 삶의 지식과 ‘사는 기술’을 조금 나눠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게으른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중요한 자질도 있다. 바로 지혜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취미에서 어린아이 같은 만족을 얻는 모습을 많이 지켜본 사람은 자신의 취미도 서늘한 아이러니를 담아 너그럽게 바라본다. 독단론자 사이에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온갖 사람과 견해에 넉넉하고 침착한 여지를 준다.

그가 기이한 진리를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불타는 거짓에 몸을 맡길 일은 없다. 그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지만 평탄하고 즐거운 샛길을 걷는다. 그 길의 이름은 ‘평범한 골목’이고, ‘상식의 전망대’로 이어진다.

그곳에서 보는 풍경은 숭고하지는 않아도 즐겁다. 다른 이들이 동과 서, 악마와 일출을 바라보는 동안 그는 달 아래 모든 것에 아침이 찾아왔음을 만족스럽게 알아차린다. 수많은 그림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가 영원의 거대한 햇빛 속으로 들어간다.

그림자와 세대, 날카롭게 외치는 박사와 구슬프게 울리는 전쟁은 마침내 침묵과 공허 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전망대 창 아래로는 푸르고 평화로운 풍경이 넓게 펼쳐진다. 불을 밝힌 수많은 거실에서는 대홍수나 프랑스혁명 전부터 그랬듯 좋은 사람들이 웃고 마시고 사랑한다. 산사나무 아래에서는 늙은 목동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1941년 시카고의 공원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두 남성
시카고 공원 벤치에서 시간을 보내는 두 남성, 1941년 4월. 러셀 리 촬영. 이 사진은 글의 시대나 인물을 재현하지 않고 공공장소의 여유를 보여 주는 후대 자료다.Russell Lee · 1941 · Library of Congress FSA/OWI Collection · No known restrictions

스타트업 적용 노트 — 2026

교육의 반대말이 휴식은 아니다. 스티븐슨에게 진짜 반대말은 세상을 보지 못하게 하는 바쁨이다. 시장 조사표를 채우는 일과 고객이 실제로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경영서를 읽는 일과 동료가 막히는 순간 옆에 앉아 듣는 일은 서로 다른 종류의 배움이다.

업무와 무관해 보이는 경험을 모두 낭비로 분류하면 팀의 재료가 가난해진다. 정해진 산출물 없이 돌아다니고, 다른 업계의 사람을 만나고,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관찰하는 시간은 당장 측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전에 없던 문제를 알아보는 감각은 분류표 밖에서 자라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