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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ATIONS 017 · 02

1부 당신이 정말 생각하는 것을 말하라

짙은 재킷과 수염 차림으로 오른쪽을 바라보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흑백 초상
헨리 데이비드 소로. 그는 강연을 요청받으면 청중이 동의할 말보다 자기 생각을 온전히 주겠다고 했다.Library of Congress · c. 1879 reproduction · No known restrictions

얼마 전 강연장에서 나는 강연자가 자기 자신과 너무 먼 주제를 골랐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었던 만큼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는 마음속이나 마음 가까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의 끝과 표면에 있는 것을 설명했다. 그런 뜻에서 그 강연에는 진정으로 중심이 되는 생각, 다른 생각을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생각이 없었다.

나는 시인이 그러듯 그가 가장 사적인 경험을 다루기를 바랐다. 누군가 내게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묻고 그 답에 귀를 기울였을 때, 나는 생애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고 느꼈다. 그런 일이 생기면 놀랍고도 기쁘다. 사람들이 나라는 도구의 쓰임을 아는 경우가 그토록 드물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것은 측량사인 내가 그들의 땅을 몇 에이커로 계산했는지 알려 주는 일이다. 기껏해야 내가 짊어진 사소한 소식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들은 내 속살을 얻으려고 법정에 가지 않는다. 껍데기를 더 좋아한다.

한 남자가 먼 길을 와서 내게 노예제에 관해 강연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그와 그 일행은 강연의 8분의 7이 자기들 것이고, 내 것은 8분의 1뿐이어야 한다고 기대했다. 그래서 거절했다.

나는 어디든 강연 요청을 받으면, 비록 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사람들이 어떤 주제에 관한 내 생각을 듣고 싶어 한다고 여긴다. 그저 듣기 좋은 말이나 청중이 동의할 말을 해 달라는 뜻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강한 한 회분의 나 자신을 주기로 결심한다. 그들이 나를 불렀고 내게 돈을 내기로 했으니, 전례 없이 지루하게 만들더라도 나를 온전히 갖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독자인 당신에게도 비슷한 말을 하려 한다. 당신은 내 독자이고, 나는 여행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천 마일 밖의 사람들을 말하지 않고 가능한 한 집 가까운 곳으로 오겠다. 시간은 짧으니 아첨은 모두 빼고 비판만 남기겠다.

우리가 삶을 어떻게 쓰는지 생각해 보자.

이 세계는 사업의 장소다. 얼마나 끝없는 소란인가. 거의 매일 밤 나는 헐떡이는 기관차 소리에 잠을 깬다. 그것이 내 꿈을 끊는다. 안식일이 없다. 인류가 단 한 번이라도 한가하게 쉬는 모습을 본다면 장엄할 것이다. 오직 일, 일, 일뿐이다.

생각을 적을 빈 공책 한 권도 쉽게 살 수 없다. 대개 달러와 센트를 기록하는 줄이 그어져 있다. 들판에서 내가 메모하는 모습을 본 아일랜드인은 당연히 일당을 계산한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이 갓난아이 때 창밖으로 던져져 평생 장애를 얻거나, 원주민을 보고 너무 겁먹은 나머지 정신을 잃었다고 해 보자.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그가 사업을 할 수 없게 된 것을 안타까워한다. 나는 범죄조차 이 끝없는 사업만큼 시와 철학, 아니 삶 그 자체에 반대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타트업 적용 노트 — 2026

목소리는 개인 경험에서 시작하되 사실 앞에서 멈춰야 한다

소로의 첫 요구는 강하다. 남이 듣기 좋아할 말을 조립하지 말고, 자신이 실제로 보고 생각한 것을 말하라는 것이다. 창업자의 글과 발표가 제품 소개서의 문구를 반복할 때보다 고객과 실패, 결정의 구체적 경험에서 시작할 때 힘을 얻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이 곧 진실은 아니다. 경험은 출발점이고, 데이터와 반론, 영향을 받는 사람의 목소리로 검증해야 한다. 원문에서 아일랜드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은 개인으로 보이지 않고 당시의 고정관념을 설명하는 도구로만 쓰인다. 자기 목소리를 지키는 일은 타인의 삶을 납작하게 만들 권리를 주지 않는다.

회의와 콘텐츠에서 물을 질문은 간단하다. “이 말은 우리가 직접 배운 것인가, 남의 문장을 빌린 것인가?”, “반대 증거를 함께 보여 주는가?”, “누구의 경험이 빠졌는가?” 중심이 있는 말은 강한 자아를 과시하는 말이 아니라, 책임질 수 있는 관찰을 자기 이름으로 내놓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