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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ATIONS 003 · 04

3장 대학과 도서관

비판에 답하다

《부의 복음》은 대서양 이쪽에서 따뜻한 반응을 얻었다. 더 오래된 문명을 지닌 영국에서는 훨씬 큰 관심을 끄는 것이 자연스럽다. 영국은 사회주의가 제기한 문제와 지금 더 선명하게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곱마일당 주민이 20명도 안 되고 넓고 비옥하며 발전 중인 미국에서는 계급과 대중,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대조가 빈 땅이 없고 인구밀도가 15배인 작은 영국만큼 날카롭지 않다.

9월 5일자 《폴 몰 가제트》는 영국인이 ‘부의 복음’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주장에 나온 반론을 아마 가장 간결하게 적었다.

“카네기는 큰 재산으로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으니 지역사회에 큰 축복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하지만 큰 재산으로 이런저런 악행도 벌어지므로 큰 저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카네기의 설교는 벤존 씨의 실제 행동으로 완전히 무너진다. 부의 복음은 행동으로 죽는다.”

이에 대한 답은 분명해 보인다. 기독교의 복음도 사람의 행동 탓에 죽는다. 부의 복음을 향한 같은 반론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에도 돌아간다. 사람들이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은 복음에 반대할 근거가 아니다. 오히려 복음은 현재의 기준보다 높아야 하므로 복음을 지지하는 근거다. 법을 어긴다는 사실 역시 법을 반대할 근거가 아니다. 사람들이 어기기 때문에 법을 만들고 지켜야 한다. 누구도 어기지 않을 법이라면 애초에 필요하지 않다.

《부의 복음》과 얽힌 가장 눈에 띄는 사건은 이 글이 윌리엄 글래드스턴의 관심을 끌었다는 점이다. 그는 이런 편지를 보냈다.

“방금 미국에서 발표된 앤드루 카네기의 대단히 흥미로운 글 ‘부’를 영국에서도 다시 실을 수 있도록 《노스 아메리칸 리뷰》의 로이드 브라이스 씨에게 친절히 부탁했습니다.”

그 결과 여러 신문과 정기간행물이 글을 다시 실었고 한 발 빠른 출판사는 글래드스턴의 허락을 받아 그에게 헌정한 소책자로 냈다. 이 모든 일은 고무적이다. 사회가 이 큰 쟁점을 의식하고 있으며 받아들여 검토할 마음도 있다는 증거다.

편집자께서 이 주제를 이어 남는 부를 쓰기에 가장 좋은 분야를 짚어 달라고 요청한 일도 한 가지 증거가 된다. 여기서 내놓은 생각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적어도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게 된다.

첫 글은 거대한 재산을 쓰는 올바른 방법이 하나뿐이라고 주장했다. 재산을 가진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그 부가 생겨난 지역사회에 오래 이로울 방식으로 직접 운용해야 한다. 살아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재산을 쥔 채 죽은 사람을 두고 여론은 머지않아 “그토록 부유하게 죽는 사람은 수치 속에 죽는다”고 말하게 된다.

이번 글의 목적은 남는 부를 사람들의 이익에 맞게 운용하는 최선의 방법 몇 가지를 제시하는 데 있다.

돕는 일이 사람을 낮추지 않으려면

백만장자는 자신에게 들어온 남는 부의 수탁자일 뿐이라는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가 부를 참으로 잘 쓰려면 첫째 조건이 있다. 돈을 쓰는 목적이 받는 사람을 비하하거나 빈곤에 묶어서는 안 된다. 지역에서 가장 뜻이 높고 나아가려는 가난한 사람이 스스로 더 노력하도록 북돋는 방식으로 신탁 재산을 운용해야 한다.

카네기는 개인이 손을 뻗어 개선하려 할 대상이 회복할 길이 없을 만큼 빈곤하며 되는대로 살고 아무 가치도 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에게는 도시나 국가가 마련한 보호시설이 있다. 그곳에서 잠자리와 음식, 옷을 받고 편안하게 살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성실하게 일하는 가난한 사람과 떼어 놓을 수 있다. 성실한 사람이 이 불운한 이들과 접촉하면서 도덕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다.

구걸만으로 편안하게 사는 데 성공한 사람 한 명은 말만 앞세우는 사회주의자 스무 명보다 사회에 더 위험하고 인류의 진보를 더 크게 막는다고까지 말한다. 남는 부를 맡은 개인이 책임질 사람은 부지런하고 야심 있는 이들이다. 모든 것을 대신 해줘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도울 뜻과 능력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기회를 넓히면 실제 혜택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본다.

편집자 주 — 이 대목은 빈곤을 구조보다 개인의 근면과 품성으로 가르는 카네기의 관점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보호시설 격리와 빈자를 향한 모욕적 표현은 오늘날의 복지 권리와 장애·빈곤 인식에 맞지 않는다.

박애 사업가가 세상에 참되고 오래가는 선을 행할 때 부딪히는 주된 장애 가운데 하나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주는 관행이라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한다. 백만장자는 받을 만한 대상임이 스스로 확실히 납득되지 않으면 돈을 주지 않기로 결심해야 한다. 라이스 씨가 이른바 자선에 쓰는 1,000달러 가운데 950달러는 바다에 던지는 편이 낫다고 한 말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부자를 겪어 본 바로는 그들에게 남아도는 돈을 자선에 내놓으라고 재촉할 필요가 없다. 충동적이고 해로운 기부를 멈추게 하는 편이 인류에 더 큰 선을 이룬다. 이 문제에서 백만장자가 흔히 저지르는 죄는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해서 생긴다. 시간을 들여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거절하기보다 주는 일이 훨씬 쉽다.

남는 부를 가진 사람은 해마다 수백만 달러를 내놓지만 선보다 악을 더 많이 만들고 사람들의 발전을 늦춘다. 오늘날 유행하는 구제 방식 대부분이 가난한 사람 사이에 시혜를 의지하는 마음을 퍼뜨리기 때문이다. 발전하려면 자신의 노력에 기대도록 북돋아야 한다. 재산을 쌓아 두는 구두쇠 백만장자가 신성한 자선의 외투를 두르고 돈을 어리석게 낭비하는 부주의한 백만장자보다 사회에 끼치는 해가 적다.

개인 거지에게 돈을 주는 사람은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다. 기부를 청하는 단체와 기관 가운데도 도와주면 지역사회에 똑같이 해로운 곳이 많다. 그런 곳은 개인 거지만큼 사람을 타락시킨다. 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에는 다음과 같은 교훈이 있다.

“거지가 라케다이몬 사람에게 적선을 청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무엇이든 주면 그대는 더 심한 거지가 될 것이오. 처음 돈을 준 사람이 그대를 게으르게 만들어 이 비천하고 불명예스러운 생활로 밀어 넣었소.’”

내가 아는 백만장자 가운데 거지를 만들어 낸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정말 드물다.

이 점을 마음에 두고, 자신을 남는 부의 수탁자로 여기는 백만장자가 돈을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분야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대학과 연구

첫째는 엄청난 부자가 대학을 세우는 일이다. 그런 사람은 어느 나라에나 적을 수밖에 없으므로 다른 분야와 구별된다. 개인이 한 가지 목적에 내놓은 돈 가운데 가장 큰 액수는 아마 릴런드 스탠퍼드 상원의원의 기부로 보인다. 그는 막대한 부를 쌓은 태평양 연안에 완전한 대학을 세우려 한다. 비용은 1,000만 달러로 알려졌고 남는 부에서 2,000만 달러까지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러워할 만한 사람이다.

천 년 뒤, 그때는 사람으로 붐빌 태평양 연안에서 어느 연설가가 스탠퍼드를 기리며 셰익스피어의 《헨리 8세》에서 그리피스가 울지를 찬양한 말을 이렇게 바꿀지 모른다.

베푸는 일에서 그는 참으로 군왕다웠습니다.
이 배움의 자리가 영원히 그를 증언합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도 이미 이름 높고
학문의 솜씨는 훌륭하며 계속 자라나니
온 기독교 세계가 그의 덕을 말할 것입니다.

이것이 부의 고귀한 사용법이다. 존스 홉킨스, 코넬, 패커를 비롯해 이런 기관이 여럿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죽은 뒤 유산으로 세워졌다. 가져갈 수 없는 것을 남겼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크게 칭송할 수는 없다. 쿠퍼와 프랫, 스탠퍼드 같은 사람은 각자의 기념사업에 쓴 돈만큼이나 살아서 들인 시간과 관심으로 존경과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태평양 연안을 떠올리면 성격이 다른 중요한 사업 하나가 생각난다. 최근 세워진 릭 천문대다. 어떤 백만장자가 사람의 정신을 높이는 천문학 연구에 관심이 있다면 이 모범을 따를 만하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그런 사람이 생긴다. 천문 기구와 장비는 꾸준히 크게 발전하므로 몇 년마다 이 대륙의 천문대 한 곳에 새 망원경을 주는 일은 현명한 기부가 된다. 새 기기는 언제나 더 크고 훌륭하며 우주와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관계를 더 멀리 이해하게 한다.

피츠버그의 고 윌리엄 소가 한 여러 선행 가운데 현지 천문대를 꾸준히 후원한 일도 들 수 있다. 이 천문대에서 새뮤얼 랭글리 교수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지금 그는 스미스소니언 협회를 이끌며 조지프 헨리 교수의 훌륭한 후계자가 됐다.

랭글리와 함께 일한 피츠버그의 존 브래셔가 만든 기구는 세계 주요 천문대 대부분에 들어가 있다. 그는 평범한 기계공이었지만 소는 그 재능을 알아보고 어려운 시절 가장 든든하게 도왔다. 이제 이 노동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단체 한 곳에서 교수로 임명됐다. 백만장자 소는 남는 부의 일부로 훗날 유명해진 두 사람을 도와 고귀한 일을 했다.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은 모든 과학 중심지에서 조국에 큰 명예를 안겼으며 앞으로 그 명예를 키운다.

대학을 세울 기회는 극소수에게만 온다. 사실 새 대학이 많이 필요하거나 아예 하나라도 더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이제는 기존 대학에 시설과 자원을 보태고 범위를 넓히는 편이 더 큰 선을 이룬다. 그래도 백만장자 중의 크로이소스가 아닌 보통 백만장자에게도 이 분야에는 넓은 자리가 남아 있다.

예일대는 많은 기부를 받았지만 더 받을 곳이 충분하다. 스트리트 씨가 세운 미술학교, 셰필드 씨가 기금을 댄 셰필드 과학학교, 루미스 교수의 천문대 기금은 좋은 사례다. C. J. 오즈번 부인이 독서와 강의를 위해 지은 건물은 한 여성이 내놓은 현명한 선물이어서 더욱 기쁘게 봐야 한다.

하버드대도 잊히지 않았다. 피버디 박물관과 웰스·매슈스·세이어 홀을 들 수 있다. 세버 홀은 리처드슨 같은 천재가 10만 달러라는 적은 돈으로 무엇을 했는지 보여줘 특히 언급할 만하다.

테네시주 내슈빌의 밴더빌트대는 부의 복음을 실제로 따른 사례다. 밴더빌트 가족은 살아 있는 동안 대학을 세웠다. 이 결정적인 특징을 기억해야 한다. 살아 있는 동안이었다. 죽을 때 남긴 돈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런 돈은 그가 준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떼어 낸 돈이다. 어느 백만장자가 남는 부로 크고 의심할 수 없는 선을 이루는 방법을 찾지 못해 고민한다면 대학이 답이 될 수 있다. 나라가 발전할수록 대학에 필요한 것은 늘어나므로 이 분야는 결코 다 채워지지 않는다.

둘째, 무료 도서관

지역사회에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무엇인가. 내가 연구한 결론으로는 무료 도서관이 첫째다. 단 지역사회가 이를 공립학교와 마찬가지로 도시의 공공재산이자 학교를 돕는 기관으로 받아들이고 유지해야 한다.

내 경험 때문에 다른 모든 선행보다 무료 도서관을 높게 평가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피츠버그에서 일하던 소년이었을 때 앨러게니의 제임스 앤더슨 대령은 소년들에게 400권짜리 작은 도서관을 열어 줬다. 그의 이름은 경건한 감사 없이 입에 올릴 수 없다. 그는 토요일 오후마다 자기 집에서 책을 바꿔 주었다. 토요일이 오면 새 책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는지는 직접 겪은 사람만 안다.

평생 나의 주된 사업 동료였던 동생과 헨리 핍스도 앤더슨 대령의 귀중한 호의를 나와 함께 누렸다. 그가 열어 준 보물 속에서 즐거워하던 때 나는 결심했다. 언젠가 부가 생기면 무료 도서관을 세우는 데 쓰겠다. 다른 가난한 소년도 우리가 이 고귀한 사람에게 빚진 것과 같은 기회를 받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언덕 위에 세워진 펜실베이니아 홈스테드 카네기 도서관의 1900년대 초 사진
펜실베이니아 홈스테드의 카네기 도서관. 카네기는 건물을 기부하되 지역사회가 운영비를 맡는 방식을 강조했다.Library of Congress · No known restrictions on publication

영국은 무료 도서관의 가치를 가장 앞서 알아보았다. 의회는 도시가 도서관을 공공기관으로 세우고 유지하게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어느 도시의 주민이 법을 받아들이기로 투표하면 지방정부는 평가액 1파운드마다 1페니까지 세금을 걷게 됐다. 이미 대부분의 도시에 이 법에 따른 무료 도서관이 있다.

그 가운데 많은 곳은 부자가 준 선물이다. 기부금은 건물을 짓고 때로 책을 사는 데도 쓰였다. 대신 지역사회는 도서관을 유지하고 키울 의무를 졌다. 나는 이 조건에서 도서관의 쓸모 대부분이 나온다고 본다.

운영비까지 기금으로 보장된 기관은 소수 집단의 먹이가 되기 쉽다. 대중은 관심을 잃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처음부터 관심을 갖지 않는다. 받는 사람이 스스로를 돕게 해야 한다는 원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지역사회가 스스로 돕도록 거드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것을 대신 해주면 좀처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도 무료 도서관이 많이 생겼지만 내가 아는 곳 가운데 볼티모어의 프랫 도서관만큼 현명하게 세운 곳은 없다. 이넉 프랫은 건물을 지어 볼티모어시에 주고 남은 현금도 넘겼다. 총비용은 100만 달러였다. 그 대신 시가 해마다 5퍼센트인 5만 달러를 이사회에 내 도서관과 분관을 유지하고 키우게 했다.

1888년에는 책 430,217권이 대출됐고 볼티모어 주민 37,196명이 독자로 등록했다. 프랫 도서관을 드나드는 3만7천 명이 이 나라의 무기력하고 게으르며 희망 없이 가난한 사람 전부보다 볼티모어와 주와 국가에 더 가치 있다고 카네기는 말한다.

편집자 주 — 독서하는 시민의 가치를 높이려고 빈곤한 사람의 인간적 가치를 깎아내리는 비교는 받아들일 수 없다. 다른 집단을 무가치하다고 판정하지 않아도 도서관의 성과는 충분히 드러난다.

프랫은 책을 애타게 원하던 3만7천 명 가까운 사람의 손이 닿는 곳에 두었다. 이 일은 스스로를 도울 수 없거나 돕지 않으려는 사람을 위해 모든 백만장자와 부자가 내놓은 돈을 합친 것보다 사람들의 참된 진보에 더 크게 기여했다고 카네기는 이어 말한다.

남는 부를 현명하게 운용한 한 사람은 물을 받아 백 배로 돌려줄 준비가 된 땅에 비옥한 물줄기를 부었다. 돈을 낭비한 많은 사람은 채울 수 없는 체에 물을 부은 데서 그치지 않았다. 정치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고인 하수구에 돈을 부어 더 나쁜 일을 했다는 비유다.

프랫이 훌륭하게 쓴 100만 달러도 대단하지만 더 큰 일이 있다. 볼티모어의 다섯 번째 분관이 문을 열었을 때 연설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4년 동안 이룬 일이 무엇이든 그 가운데 많고도 많은 부분이 프랫 씨의 진지한 관심과 현명한 조언, 실용적인 제안 덕분임을 기쁘게 인정합니다. 그는 시민의 이익을 위해 큰 재산을 내놓는 것만으로 자기 몫이 끝났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돈이 가능한 한 넓고 알맞게 쓰이도록 현명하게 애썼습니다. 때로 매우 무거웠던 짐을 계속 덜어 주었고 하늘에 구름이 지나갈 때는 밝은 기운과 햇빛을 가져왔습니다. 모든 임직원은 좋은 일이 인정받고 의무에 충실한 헌신이 따뜻한 칭찬을 받으리라고 느꼈습니다.”

이것이 내가 본 백만장자 계급의 모습 가운데 가장 훌륭한 그림이다. 여기 묘사된 프랫은 부의 복음을 따르는 이상적인 사람이다. 수많은 노동자가 그 같은 사람을 가장 좋은 지도자이자 더없이 귀한 동맹으로 인정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소수가 시간과 부를 살아서 내놓고, 부를 소유하는 책임을 지지 않은 지역 구성원에게 가장 이로운 방식으로 운용한다면 빈곤과 부, 고용주와 노동자의 문제는 사실상 풀린다고 카네기는 믿는다. 그런 날이 오면 계급 간 적대는 사라지고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참으로 형제가 된다.

남는 부를 가장 좋게 쓸 방법을 찾는 백만장자가 도서관을 유지하고 키울 뜻이 있는 지역에 무료 도서관을 세운다면 크게 잘못될 일이 없다. 존 브라이트의 말이 귓가에 울려야 한다.

“청년에게 무료 도서관의 책을 접할 길을 열어 주는 것보다 더 큰 혜택을 베풀 방법은 없다.”

도서관 가까이, 가능하면 같은 건물 안에 미술관과 박물관을 둘 방이 있어야 한다. 쿠퍼 유니언처럼 강연과 교육을 열 공간도 마련해야 한다. 유럽 대륙을 여행한 사람은 중요한 도시마다 크든 작든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어느 곳이든 지역의 보물을 담는 그릇이 있고 귀중한 기증품과 유산이 계속 들어온다.

버밍엄 무료 도서관과 미술관은 이런 기관 가운데 돋보인다. 때때로 부자가 책과 훌륭한 그림, 다른 예술 작품을 내놓아 가치를 더한다. 우리 도시에 우선 필요한 것은 제대로 내화 설계를 한 건물뿐이다. 여행하는 시민은 세계 곳곳에서 희귀하고 값비싼 물건을 보내 올 것이며, 집에 머문 시민도 자신의 보물을 기증하거나 유산으로 남긴다.

수집품은 이렇게 자란다. 마침내 도시는 시민이 헤아릴 수 없는 혜택을 누리고 방문객에게 자랑스럽게 보여 줄 상설 전시를 갖게 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우리는 훌륭한 출발을 했다. 남는 부를 올바르게 쓰는 길이 하나 더 열린 셈이다.


스타트업 적용 노트 — 2026

카네기는 건물을 지어 주는 것보다 지역사회가 운영비를 맡는 구조를 더 높게 평가했다. 오늘의 공익 프로젝트에도 그대로 던질 만한 질문이다. 출시 비용만 내고 유지보수 주체를 정하지 않은 오픈소스 도구, 장비는 기부했지만 교육 인력이 없는 학교, 무료 기간이 끝나면 감당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는 오래가는 선물이 아니다.

회사가 공공재를 만들려면 세 가지를 먼저 적어야 한다. 누가 계속 운영하는가. 해마다 얼마가 드는가. 이용자는 결정에 어떤 목소리를 내는가. 카네기는 앞의 두 질문은 정확히 봤지만 세 번째에는 약했다. 오래가는 기관은 돈을 받은 사람이 함께 다스릴 때 더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