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병원과 의학 연구
큰돈을 값지게 쓸 또 하나의 분야가 있다. 병원, 의과대학, 연구실을 세우거나 넓히는 일과 인간의 고통을 덜어 주는 여러 기관이다. 병을 치료하는 일보다 예방하는 기관이면 더욱 좋다. 이런 목적에 기부한다고 지역사회가 시혜에 의존할 위험은 없다. 이 기관은 일시적인 질병을 치료하거나 회복할 희망이 없는 환자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병원이 없는 지역에 병원보다 나은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지역사회가 공동의 책임으로 제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야 한다. 이미 병상이 있다면 시설을 늘리는 일보다 남는 부를 더 잘 쓸 방법을 찾기 어렵다.
고 코닐리어스 밴더빌트가 컬럼비아대 의학부의 화학 연구실을 위해 내놓은 50만 달러는 부를 가장 현명하게 쓴 사례 가운데 하나다. 병의 원인을 파고들어 예방을 겨냥한다. 다른 사람도 이런 연구실을 세웠지만 여전히 많이 필요하다.
수탁자로 맡은 남는 부를 어디에 쓸지 몰라 고민하는 백만장자가 있다면 화학 연구실에서 어떤 선이 흘러나오는지 살펴보라. 연구실 없는 의과대학은 완전하지 않다. 일반 대학과 마찬가지로 새 의과대학을 만드는 일보다 기존 학교를 더 충실하게 갖출 재원이 필요하다.
현명하게 기부할 방법은 많다. 그중에서도 오즈번 씨가 벨뷰 병원 의과대학에 간호사를 양성할 학교를 지은 일보다 더 쓸모 있는 사례는 드물다. 모든 기부에서 백만장자의 남는 부를 이렇게 썼을 때 생기는 선의 절반만 나와도 가장 까다로운 사람까지 만족한다.
오래 앓으며 생명이 위태로운 병을 겪은 사람만 훈련받은 간호사의 보살핌과 기술, 곁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값진지 제대로 안다. 여성이 간호사로 일하면서 여성의 활동 영역과 영향력도 넓어졌다. 최근 미국 상원의원 한 명과 외국에서 가장 높은 명예를 받아 이 나라에서 이름난 의사 한 명이 이 직업군에서 아내를 만난 일도 놀랍지 않다고 카네기는 덧붙인다.
편집자 주 — 전문직 간호의 가치를 여성의 결혼 상대가 된 사실로 확인하려는 마지막 문장은 당시의 성 역할을 드러낸다. 간호의 사회적 가치는 전문 지식과 돌봄 노동 자체에 있다.
넷째, 공원과 도시의 아름다움
공공 공원은 자선사업의 맨 앞줄에 놓아야 한다. 단 지역사회가 공원을 유지하고 아름답게 가꾸며 훼손되지 않게 지켜야 한다. 사람이 태어났거나 오래 살아온 도시에 공원을 주는 것보다 쓸모 있고 아름다운 기념물은 없다. 선물을 준 시민의 이름을 공원에 붙이는 것보다 지역사회가 더 품위 있게 감사를 나타낼 방법도 없다.
지난달 메리 솅리 부인이 피츠버그시에 큰 공원을 준 일을 기록할 만하다.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그는 십 대에 영국 신사와 결혼했다. 작위를 지닌 사람과 부자가 모인 세계의 수도 런던에서 산 지도 40년이 넘었다. 그래도 어린 시절의 고향을 돌아보았고 솅리 공원으로 자기 이름을 그곳에 영원히 이었다. 직접 자기 부를 운용한 사람이 큰 재산을 고귀하게 쓴 사례다.
이미 공원이 있어도 현명한 선물을 보탤 자리는 많다. 앨러게니의 헨리 핍스는 공원에 온실을 지어 주었다. 평일에도 많은 사람이 찾고 일요일이면 노동자 수천 명으로 붐빈다. 그는 드물 만큼 현명하게도 일요일에 문을 열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실험의 결과가 매우 만족스러워 올해는 남는 부에서 큰돈을 더 보태고 있다.
꽃을 사랑하는 부자에게 핍스의 사례에서 자신이 할 일을 살펴보라고 권한다. 핍스는 넉넉히 줄 뿐 아니라 현명하게 주는 사람이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시가 온실을 유지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에 공공 소유와 시민의 관심, 운영을 향한 공개적인 비판이 계속 보장된다. 자신이 온실을 운영하고 유지하려 했다면 대중은 그 선물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유럽 소도시의 공원과 유원지는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못지않게 놀랍다. 최근 여행에서 본 것 가운데 노르웨이 베르겐의 언덕보다 기분 좋은 곳은 없었다. 메마른 산비탈이 그림 같은 유원지로 바뀌었다. 분수와 급류, 폭포, 아늑한 정자, 훌륭한 테라스와 조각상이 곳곳을 꾸민다. 동료에게 오래가는 혜택을 주고 싶은 백만장자가 연구할 만한 분야다.
도시를 갈수록 아름답게 만드는 데 부를 올바르게 쓴 사례는 드레스덴에도 있다. 그곳의 유력 신문 소유주는 신문 수입을 영원히 도시에 귀속시켜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는 데 쓰도록 유증했다. 예술위원회는 때에 따라 어떤 예술 요소를 새로 넣고 어느 흉한 모습을 바꿀지 결정한다. 수입이 들어오면 이 목적에 쓴다.
애국심 있는 신문 소유주의 선물 덕분에 고향 드레스덴은 세계에서 가장 예술적인 주거 도시 가운데 하나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사업 하나가 끝나면 시가 영원히 유지할 책임을 맡는다. 우리 백만장자 신문 소유주에게 작센 수도에서 활동한 동료의 모범을 권해도 괜찮으리라.
역사가 오래된 나라에는 규모 있는 도시마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공간이 여럿 있다. 장식과 건축의 인상을 위해 많은 돈을 썼다. 대서양 이쪽의 우리는 아직 크게 뒤처졌다. 우리 공화국은 몇몇 분야에서 위대하며 물질 발전에서는 상대가 없다. 그러나 예술과 섬세한 감각에서는 아직 자리를 잡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한다.
최근 뉴욕에 임시로 세운 아름다운 기념문이 드레스덴에 있었다면 예술위원회가 신문 수입을 써서 영구 건축물로 다시 세우라고 결정했을 터다. 바로 이런 목적에 쓰라고 소유주가 남긴 돈이다. 그러면 기념문은 도시를 영원히 아름답게 했을 터다.
원전 편집자 주 — 시민 모금으로 이 목표를 이뤘고 두 개의 기념문도 더 설계돼 뉴욕에 세워질 예정이다.
지역사회에 공원을 주는 일이 남는 부의 가장 좋은 사용법이라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나 공원에 온실을 보태고 기념문과 장식물을 세우자고 하면 내가 너무 나아갔으며 다소 공상적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수 있다. 물질적인 혜택이 곧바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질적인 이익만 보는 실용적 정신이라도 대중의 필요와 무관한 쓸모없는 지출이라며 미적 목적의 기부를 낮춰서는 안 된다. 도서관과 박물관처럼 예술 작품도 대중 가운데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닿을 때 가장 큰 일을 한다. 아름다움에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의 취향에 영합하기보다, 가난하지만 타고난 총명함을 지닌 이들의 미감을 건드리는 편이 낫다는 것이 카네기의 생각이다. 인류를 더 낫게 만들려는 사람은 신성한 불꽃이 아무리 희미해도 그 불꽃을 지닌 사람에게 다가가 불씨가 커지게 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핍스가 남는 돈으로 앨러게니 노동자에게 빵을 주는 것보다 아름다운 꽃과 난초, 수생식물이 가득한 온실을 준 편이 더 잘한 일이다. 노동자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쉬는 시간에 온실을 즐기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다. 건강하면서 자기 빵을 벌지 못하는 사람은 개인 기부자가 고려할 대상이 거의 아니다. 그런 사람을 돌보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도시에 온실이나 참으로 예술적인 기념문, 조각상, 분수를 세우는 사람은 남는 부를 현명하게 쓴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다.”
다섯째, 시민을 위한 집회장
남는 부를 잘 쓸 다른 길은 도시에 온갖 모임과 정신을 높이는 음악회를 열 만한 회관을 마련하는 일이다. 우리 도시에는 이런 공간이 드물다. 이 점에서도 유럽 도시에 크게 뒤진다.
신시내티에 큰 가치를 더한 스프링어 홀은 루번 스프링어의 기부로 대부분 지었다. 그는 죽을 때 유산에서 돈을 남기는 데 만족하지 않고 살아서 주었다. 그에 못지않게 시간과 사업 능력을 보태 지금의 성공을 굳혔다.
회관이 없는 도시에 회관을 주는 일은 지역사회를 위해 남는 부를 훌륭하게 쓰는 방법이다.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정신을 높이는 공연, 심지어 즐거운 공연이 열두 번은 있어도 좋을 때 겨우 한 번만 열리는 까닭이 있다. 알맞은 회관 자체가 드문 데다, 있더라도 임대료가 너무 비싸 기획자가 손실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도시에 공공 회관이 있고 위원회나 시장이 유익하다고 판단한 모임에 무료나 적은 돈으로 빌려준다면 시민은 아주 낮은 비용으로 좋은 강연과 오락, 음악회를 누린다. 유럽 도시의 시청 회관은 오르간을 갖춘 곳도 많고 이런 방식으로 쓰여 시민에게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준다.
정신을 높이거나 그저 즐거움을 주는 공연의 영향을 낮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런 자리는 사람들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하고 성품을 더 낫게 만든다.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그 마을이 이제 큰 도시가 된 백만장자가 성공한 뒤 남는 부의 일부로 고향에 무언가 하려 한다면, 오르간을 갖춘 공공 회관보다 감사의 기억을 더 쓸모 있게 나타낼 방법은 없다. 물론 시가 회관을 유지하고 쓰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여섯째, 공공 수영장과 목욕시설
유럽에 크게 뒤진 분야가 또 있다. 그곳에서는 시민에게 수영장과 목욕시설을 마련해 주는 자선이 드물지 않다. 기부자는 혜택을 받는 도시가 자기 비용으로 시설을 유지하도록 요구할 만큼 현명했다.
개인이나 지역사회를 위해 모든 것을 대신 해줘서는 안 되며 받는 쪽이 언제나 일부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은 여기서도 증명된다. 건강에 이로운 시설이 시민의 사랑을 받으려면 아주 적은 액수라도 이용료를 받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여러 도시는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학생을 무료로 들인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큰 수영장을 쓰는 시간을 달리 정하며 여성에게 따로 시간이나 요일을 배정하기도 한다. 바다에서 먼 도시의 공중보건에 큰 이익을 줄 뿐 아니라 남녀 청소년 모두 수영을 배운다. 수영 동호회가 생기고 대회가 자주 열리며 메달과 상품도 준다.
영국 각지 수영시설이 펴낸 보고서에는 배운 수영 덕분에 난파에서 살아남은 사례가 가득하다. 수영장 수강생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 일도 적지 않다. 부의 복음을 따르는 사람이 자신이 아끼는 도시에 큰 수영장과 개인 목욕시설을 주고 시가 공공시설로 운영하게 한다면 맡은 돈을 잘못 썼다는 비난을 받을 까닭이 없다.
일곱째, 교회
교회는 남는 부를 쓸 분야 가운데 일부러 마지막에 두었다. 종파에 속한 시설이므로 누구나 자기 신앙과 인연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이런 뜻에서 교회에 주는 돈은 지역사회 전체가 아니라 특정 집단에 주는 선물이라고 보아도 된다.
그래도 백만장자라면 어느 지역의 교차로에 값싸고 불편하며 초라하기 짝이 없는 작은 목조 건물이 서 있는 모습을 알 만하다. 일요일이면 온 동네 사람이 그곳에 모인다. 어떤 교리를 가르치는지와 별개로 사회생활의 중심이며 이웃다운 감정이 솟는 곳이다.
부를 맡은 사람은 남는 부의 일부로 그 건물을 벽돌이나 돌, 화강암으로 지은 오래가는 건물로 바꾸면 돈을 잘 쓰는 셈이다. 벽에는 인동덩굴과 매발톱꽃이 타고 오르고 탑에서는 맑은 종소리가 울린다. 백만장자는 건물을 얼마나 싸게 지을지만 계산해서는 안 된다. 얼마나 완전하게 만들 수 있는지 따져야 한다.
돈이 있다면 보석 같은 건물을 지어야 한다. 피라미드처럼 오랜 세월 서 있도록 지은 순수하고 고귀한 건축의 교육적 영향은 달러로 잴 수 없다. 교회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은 지역 농부의 집과 마음과 생각에 영향을 준다.
총명한 소년은 빛깔 고운 스테인드글라스를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오르간의 천상 같은 소리에 사로잡힌다. 일에 매인 세계의 물질적이고 무미건조한 조건에서 멀리 떨어진 아름답고 매혹적인 영역이 보내는 첫 소식을 그곳에서 듣는다. 그 정신은 새로운 영역으로 실려 간다. 경계가 흐릿하고 분명히 정의되지 않아도 그곳은 실제 세계다.
마법의 원 안에 들어선 사람은 바깥 삶보다 더 귀한 내면의 삶을 산다. 날마다 걷는 모든 길과 승리와 시련, 보고 듣고 생각하고 하는 모든 일이 멀리서 내면을 비추는 빛으로 성스러워진다. 그 빛이 모든 것을 빛내고 마음을 바르게 지킨다.
다만 건물을 준 사람은 거기서 멈춰야 한다. 교회 운영은 그곳의 신자가 책임져야 한다. 지역 신자가 떠받치지 않는 교회에는 참된 종교가 많지 않고 그곳에서 나올 선도 크지 않다.
하나의 정답은 없다
남는 부를 현명하게 쓸 길은 그 밖에도 많다. 내가 든 것은 열려 있는 수많은 분야 가운데 극히 일부이며, 큰돈이나 상당한 액수를 슬기롭게 쓸 수 있는 곳만 골랐다.
지역사회에 분명히 이로운 사업을 하거나 돕는 일은 백만장자만의 특권이 아니다. 적당한 생활비를 넘겨 조금이라도 남는 사람은 더 부유한 형제와 이 특권을 나눌 수 있다. 남는 돈이 없는 사람도 시간의 일부는 내놓을 수 있다. 시간은 보통 돈만큼 값지고 때로 그보다 더 큰 몫을 한다.
남는 부의 가장 좋은 사용법에 모두가 동의하리라 기대할 수 없으며 동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사람과 지역에 따라 필요한 곳이 다르다. 부를 맡은 사람의 판단에 가장 옳다고 여겨지는 일이 그에게 가장 알맞다. 마음이 그 일 안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부를 운용할 때도 고른 분야에 열정적으로 헌신하고 그곳이 자신의 일터라고 느껴야 한다.
공동의 선을 위한 온갖 현명한 기부가 들어설 자리와 필요가 있다. 대학, 도서관, 연구실을 짓는 사람이 공원을 아름답게 꾸미고 시민을 위한 그림을 모으며 기념문을 세우는 사람보다 더 쓸모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 포도밭에서 일하는 참된 일꾼이다.
부의 복음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사람의 손에 때때로 쌓이는 남는 부를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직접 운용해야 한다. 수탁자의 눈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이롭다고 판단한 목적에 써야 한다. 가져갈 수 없는 돈을 죽을 때 남기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남에게 짐으로 넘기는 행위에는 가치가 없다. 희생도, 동료를 향한 의무감도 필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낙타와 바늘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을 말한 성경 구절을 어려운 말씀으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모든 문제를 밑바닥까지 파고들며 신앙의 기준도 가장 너그럽게 해석한다. 그래서 그 놀라운 구절은 뒤로 밀렸다. 뜻을 완전히 알기 어려우며, 그동안은 글자 그대로 이해하지 말아야 할 말씀으로 분류돼 다음의 친절한 개정을 기다린다.
그러나 생각의 다음 단계에서 이 가르침을 처음의 순수함과 힘으로 되돌리는 일이 정말 그토록 불가능한가? 부와 빈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어디서나 보이고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대조를 올바르게 보는 생각과 완전히 어울리지 않는가?
그리스도 시대의 개혁자는 부자에 반대했다. 오늘날 우리도 그 자리로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사회가 곧 오랫동안 사람을 불안하게 한 말씀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사회 발전을 연구한 사람은 놀라지 않는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
바늘귀가 성문의 작은 쪽문을 가리킨다 해도 이 말씀은 부자 앞에 심각한 어려움이 있음을 뜻한다. “부자로 죽는 사람은 수치 속에 죽는다”는 가르침에서 한 걸음만 더 가면 신학자는 그런 사람에게 내세의 벌이나 박탈이 따른다고 말하게 된다.
부의 복음은 그리스도의 말을 되풀이한다. 백만장자에게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장 훌륭한 형태로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요구한다. 대지의 품에 누워 쉬라는 부름을 받기 전에 자신의 재산을 동료의 선을 위해 직접 운용하라는 요구다.
그렇게 한 사람은 쓸모없는 수백만 달러를 비천하게 쌓아 둔 자로 생을 마치지 않는다. 돈으로는 가난하고 참으로 가난해도 동료의 애정과 감사와 존경에서는 부유하다. 여전히 스무 배의 백만장자다. 그보다 달콤하게도 고요하고 작은 내면의 목소리가 그를 달래고 받쳐 준다. 그가 살았기 때문에 이 거대한 세계의 작은 한 부분이라도 조금 더 나아졌다고 속삭인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런 부를 지닌 사람 앞에서는 천국의 문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찾지 못한다.
스타트업 적용 노트 — 2026
카네기의 목록은 지금 말로 바꾸면 공공재 포트폴리오다. 지식, 의료, 녹지, 문화, 체육, 공동체 공간을 두루 담았다. 물건을 한번 주는 것보다 운영 주체와 유지비를 함께 설계하라는 요구도 거듭 나온다.
회사가 공익 예산을 정할 때는 브랜드 노출보다 유지 기간을 먼저 볼 수 있다. 지원이 끊긴 뒤 3년 후에도 남는가. 기존 공공기관과 중복되지 않는가. 이용자가 운영을 비판하고 바꿀 길이 있는가. 실패하면 무엇을 공개할 것인가. 카네기의 목록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지만 돈을 건네는 순간보다 그 뒤의 제도를 설계하라는 원칙은 여전히 쓸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