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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ATIONS 024 · 05

4부 살아 있는 의심이 탐구를 시작한다

의심의 자극은 믿음의 상태에 이르려는 투쟁을 일으킨다. 때로 썩 알맞은 이름은 아니지만, 나는 이 투쟁을 탐구라고 부르겠다.

믿음에 도달하려는 투쟁의 직접적인 동기는 오직 의심의 자극이다.

우리의 믿음이 욕구를 만족시키도록 행동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다면 분명 좋다. 이 생각은 그런 결과를 보장할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듯한 믿음을 버리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믿음 자리에 의심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따라서 투쟁은 의심과 함께 시작하고 의심이 멎으면 끝난다. 탐구의 유일한 목적은 의견을 정착시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참된 의견을 찾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생각을 시험하면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단단한 믿음에 도달하는 순간 우리는 그 믿음이 거짓이든 참이든 완전히 만족하기 때문이다.

지식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은 정신에 영향을 줄 수 없고, 정신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정신 활동의 동기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찾는 것은 참이라고 생각할 믿음이라는 주장까지는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가진 믿음 하나하나를 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의견을 정착시키는 일이 탐구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명제는 매우 중요하다. 증명에 관한 흐릿하고 잘못된 생각을 단번에 쓸어 낸다. 몇 가지를 보자.

첫째, 어떤 철학자들은 질문을 입 밖에 내거나 종이에 적기만 하면 탐구가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의심하며 공부를 시작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명제를 의문문으로 바꾸는 것만으로 정신이 믿음을 향한 투쟁을 시작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살아 있는 의심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모든 논의는 헛일이다.

둘째, 증명은 궁극적이고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명제에 기대야 한다는 생각이 아주 흔하다. 한 학파는 일반적인 제1원리를, 다른 학파는 최초의 감각을 그런 토대로 삼는다.

그러나 탐구가 증명이라고 부르는 완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으려면, 실제로 전혀 의심하지 않는 명제에서 출발하면 된다. 그 전제를 사실상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 만족스러워질 수는 없다.

셋째, 온 세상이 이미 완전히 납득한 문제를 계속 논증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거기서는 더 나아갈 수 없다. 의심이 사라지면 그 주제에 관한 정신 활동은 끝난다. 계속 움직인다 해도 목적이 없다.

스타트업 적용 노트 — 2026

“제로베이스에서 전부 의심하자”는 구호는 탐구를 보장하지 않는다. 실제 예산, 배포, 채용 결정을 흔드는 의심이 아니라면 질문 목록만 길어진다.

반대로 이미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전제를 매 회의에서 다시 증명하느라 시간을 쓰는 일도 탐구가 아니다. 팀이 정말 망설이는 지점을 찾고, 무엇이 그 의심을 끝낼지 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