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학을 공부하려는 사람은 드물다. 누구나 자신은 이미 추론이라는 기술에 충분히 능숙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보기에 이런 만족감은 자기 추론에만 한정되고, 다른 사람의 추론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추론 능력을 온전히 갖는 것은 우리의 여러 능력 가운데 가장 늦은 일이다. 그것은 타고난 재능이라기보다 오래 배우기 어려운 기술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 기술을 실제로 써 온 역사는 한 권의 훌륭한 책이 될 만하다.
로마인을 따른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은 논리가 아주 쉽다고 보았다. 그래서 소년이 문법 다음으로 가장 먼저 배우는 과목으로 삼았다. 그들이 이해한 논리라면 실제로 쉬웠다.
그들에게 모든 지식은 권위 또는 이성에 기대며, 이성으로 이끌어 낸 것은 결국 권위에서 얻은 전제에 기대고 있었다. 따라서 소년이 삼단논법의 절차에 능숙해지면 지적 연장통이 완성됐다고 여겼다.
13세기 중반에 거의 과학자에 가까웠던 놀라운 정신 로저 베이컨에게, 스콜라 철학자의 추론 개념은 진리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보였다. 그는 경험만이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말은 경험에 대한 판명한 개념을 앞선 세대에게서 물려받은 우리에게 이해하기 쉽다. 어려움이 아직 펼쳐지지 않았던 그에게도 완전히 명료해 보였다.
로저 베이컨은 모든 경험 가운데 내면의 빛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외부 감각으로는 결코 알아낼 수 없는 자연의 일, 가령 빵의 실체가 바뀐다는 교리까지 가르쳐 준다고 보았다.
네 세기 뒤 더 유명한 베이컨, 곧 프랜시스 베이컨은 《신기관》 제1권에서 경험을 검증과 재검토에 열려 있어야 하는 것으로 명료하게 설명했다. 그의 생각은 이전 개념보다 뛰어났다. 하지만 장중한 문체에 주눅 들지 않는 현대 독자는 그가 과학 절차를 얼마나 불충분하게 이해했는지에 먼저 놀란다.
거친 실험을 몇 개 하고, 결과를 정해진 빈 서식에 요약하고, 규칙에 따라 그것들을 검토하면서 반증된 것을 지우고 대안을 적으면 몇 년 안에 물리학 전체가 완성되리라니, 얼마나 대단한 생각인가. “그는 과학을 대법관처럼 썼다”는 말이 맞다.
초기의 과학자 코페르니쿠스, 티코 브라헤, 케플러, 갈릴레이, 길버트의 방법은 현대 과학자의 방법과 더 닮았다.
케플러는 화성의 관측 위치를 통과하는 곡선을 그리는 일을 떠맡았다. 그가 과학에 남긴 가장 큰 공헌은 천문학을 개선하려면 바로 그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새긴 것이다. 어느 주전원 체계가 다른 체계보다 나은지 따지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숫자 앞에 앉아 실제 곡선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했다.
그는 비할 데 없는 활력과 용기로 그 일을 해냈다. 현대 논리의 눈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이치에 맞지 않는 가설 하나에서 다른 가설로 비틀거리며 갔다. 스물두 개를 시험하고 발명할 가설이 다 떨어진 끝에야, 현대 논리의 무기를 제대로 갖춘 정신이라면 거의 처음부터 시험했을 궤도에 도달했다.
몇 세대 동안 기억될 만큼 위대한 모든 과학 저작은 그 저작이 쓰일 당시 추론 기술이 얼마나 불완전했는지를 어떤 식으로든 보여 준다. 과학의 중요한 한 걸음 한 걸음은 논리의 수업이었다.
라부아지에와 동료들이 화학을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옛 화학자의 격언은 “읽고, 읽고, 읽고, 일하고, 기도하고, 다시 읽어라”였다.
라부아지에의 방법은 읽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었다. 길고 복잡한 화학 과정이 어떤 효과를 낼 것이라고 꿈꾼 다음 묵묵히 실행하고, 당연히 실패하면 조금 고쳤을 때 다른 결과가 나오리라고 다시 꿈꾸고, 마지막 꿈을 사실인 양 발표하는 방식도 아니었다.
그는 정신을 실험실 안으로 가져갔다. 증류기와 플라스크를 생각의 도구로 만들었다. 눈을 뜨고 추론한다는 새로운 개념, 단어와 공상을 만지는 대신 실제 사물을 조작하며 하는 추론을 제시했다.
다윈을 둘러싼 논쟁도 상당 부분 논리의 문제다. 다윈은 통계적 방법을 생물학에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전혀 다른 과학 분야인 기체 이론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클라우지우스와 맥스웰은 기체의 구성에 관한 어떤 가설 아래서 특정 분자 하나가 어떻게 움직일지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확률론을 적용해 충분히 긴 시간 동안 주어진 조건에서 일정 비율의 분자가 어느 속도를 얻고, 매초 몇 번의 충돌이 일어나는지를 예측할 수 있었다. 그 명제들로부터 기체의 여러 성질, 특히 열과의 관계를 이끌어 냈다.
마찬가지로 다윈도 변이와 자연선택이 개별 사례 하나하나에서 어떻게 작용할지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 그것들이 동물을 환경에 적응시킨다는 점을 보였다.
현존하는 동물의 형태가 정말 그 작용에서 나왔는지, 이 이론이 어떤 지위를 가져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에서는 사실의 문제와 논리의 문제가 기묘하게 얽혀 있다.
스타트업 적용 노트 — 2026
좋은 방법론은 일을 대신해 주는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서식처럼 실험 칸을 채운다고 탐구가 자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반대로 케플러와 라부아지에의 사례는 모델보다 관측값을 오래 붙들고, 실제 사물을 생각의 도구로 써야 한다고 말한다.
AI가 실험안과 분석을 빠르게 만들어 주는 시대에는 절차가 있다는 사실보다 결과가 현실의 곡선을 따라가는지가 중요하다. 프롬프트와 대시보드가 지적 연장통의 전부라고 여기는 순간, 중세의 삼단논법과 같은 착각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