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클린은 한쪽 다리는 보기 좋고 다른 쪽 다리는 사고로 휘어진 철학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음 만난 사람이 어느 다리에 먼저 시선을 두고 무엇을 입 밖에 내는지 보면 그 사람과 더 가까이 지낼지 판단할 수 있었다는 우화다.
그가 겨냥한 것은 외모가 아니다. 좋은 점과 흠이 함께 있는 상황에서 흠만 찾아 말하는 습관이다. 음식, 날씨, 법, 예술 작품, 얼굴과 성품 어디에나 만족스러운 것과 불만스러운 것이 섞여 있다. 그중 무엇에 주의를 고정하는지가 자기 기분뿐 아니라 주변 사람과 맺을 수 있는 관계도 바꾼다는 주장이다.

비판하지 말라는 글은 아니다
제품의 결함, 잘못된 결정, 불공정한 제도를 보지 않으면 고칠 수도 없다. 불편한 사실을 말하는 사람을 ‘부정적’이라 몰아 침묵시키는 일도 위험하다. 프랭클린이 경계한 것은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이 아니라, 만족할 만한 것은 지우고 흠만으로 사람과 상황 전체를 규정하는 버릇이다.
이 판은 원제의 신체 비유를 숨기지 않았다. 다만 장애나 외모를 사람의 성격을 판별하는 도구처럼 읽어서는 안 된다. ‘흉한 다리’는 18세기 원문의 표현이며, 오늘의 적용 대상은 몸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고정된 주의다.
스타트업에서 왜 읽는가
팀의 리뷰와 회고는 결함을 찾도록 설계돼 있다. 잘 작동한 것은 말하지 않고 실패만 기록하면 구성원은 다음 실험보다 방어에 집중한다. 반대로 좋은 점만 말하면 같은 오류가 반복된다. 이 짧은 글은 긍정과 비판의 비율을 정해주지 않는다. 다만 내가 보고하지 않은 절반이 무엇인지 묻게 한다.